알고 지낸 시간과 친함의 정도가 항상 정비례하는 건 아니다.
30년 남짓 살다 보니 주변에 인간관계 맺는 대상들이 많아졌다.
초중고 학창 시절 친구부터, 대학 시절을 같이 지낸 학번 동기.
교환학생을 가서 만난 다른 학과 친구들.
그리고 첫 회사를 다니며 같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사원 동기.
몇 년간 회사를 다니며 하나의 팀에서 매일 마주 보고 지내는 팀원.
친구도 있었고, 아는 사람도 있는데 그중 작년에 나는 대학시절 친구를 한 명 손절했다.
왜 손절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이 포스팅에 담겨있다.
나는 사람에 대한 정이 많아서 쉽게 누군가 친해지지 못한다.
어느 정도 안면을 트고 인사를 해도 나만의 선이 있어서 정말 일정 시간 지나고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는 시간을 지낸 다음에야 '내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잘 지낼 수 있어도 내 마음을 얼마나 끄집어 보내줄지는
서로 보낸 시간 그리고 대화의 깊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달려있다.
친구 관계는 아무리 친해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기본적인 예의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끄덕일만한 당연한 것을 뜻한다.
근데 손절한 이 친구와는 더 이상 이 친구를 주기적으로 만나며 약속을 잡고 만나서 이야기를 할 만큼의
신념이 사라져 버려서,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다.
친구가 약속 당일 15분 전 약속을 깬 것을 계기로, 우리는 1년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약속을 깬 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이미 전에도 취소한 적이 여러번 있어서 그 모든 것들이 쌓여 한번에 폭발해버렸다.
나는 이미 마음속에서 그 친구를 손절했고, 그 친구도 그날 연락도 받지 않고 잠수 탄 것을 봐서
더 이상 연락할 생각이 없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줄 알았다.
누가 그러던데. 카톡에서 안읽씹보다 더 기분 나쁜 건 읽씹이라고.
그날 약속 장소로 가면서 나는 읽씹을 당했고,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문자와 전화 모두 읽씹을 당한 셈이다.
그날의 기억이 너무 강해서, 1호선을 타고 그 역을 지나갈 때면 찝찝하고 안 좋은 기억이 먼저 든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친구가 인스타를 팔로우하더니,
몇십 개 되는 게시글에 좋아요를 다다다다닥- 누른다.
"음. 이게 무슨 의미일까?"
연락하고 싶다는 뜻인 건지, 굳이 그 의미를 헤아리기조차 싫었다.
그리고 다음날 카톡이 왔다.
"OO야, 요즘 어떻게 지내. 잘 지내?"
카톡이 온 걸 봤지만, 카톡창을 열고 들어가서 보지도 않았고 답장을 하지도 않았다.
안읽씹을 한 셈이다.
그냥 내 마음을 속이고 "잘 지내"라는 안부인사를 건네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신 연락하지 마"라고 메시지를 건네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조용히,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길 바랄 뿐이었다.
더 이상 안 맞는 친구와 지내면서 감정이 상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매번 약속을 미루고, 어기는 친구와 또 다른 약속을 잡고 싶지 않다.
알면서도 연락을 피한 친구와는 더더욱. 다시 그 관계를 억지로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는 다 잊었는지는 몰라도,
내게는 너무 선명했던 그날의 기억이. 아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굳이 모진 소리를 하면서 끊어내기도 싫지만, 다시 연락해서 친구 사이로 남기도 싫은 그 심정.
스쳐 지나간 인연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한정된 시간에 나와 잘 맞는 친구와 마음을 터놓고 가까이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그러고 보면 알고 지낸 시간과 친함의 정도가 완벽히 정비례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알고 지낸 시간이 길수록 친한 친구들이 더 많고,
같이 만든 추억이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의 사는 방식도 달라지고, 가치관도 달라진다.
그래서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친구와는 더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