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죠니 Jul 22. 2019

5년차 직장인 J의 24시간 근무일지

월화수목금금금, 직장인 일기를 써봅니다.

어엿한 직장인이 된 지 이제 5년이 되어간다. 5년차 직장인, 나는 어느새 회사생활이란게 꽤나 익숙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학생이 학교를 다니듯, 회사원이 회사를 다니는게 익숙한 것처럼.

아침이면 알람에 깨어 후다닥 화장을 하고 출근을 한다. 그리고 9 to 6를 회사에서 보내고 나면, 지친 몸을 지하철에 구겨넣은채 퇴근을 한다.



시간이 흘렀다.

취준생 일기를 쓰던 취준생의 시간이 지나갔고,

야근을 하며 사회의 쓴맛을 보았던 신입사원의 시간도 지나갔다.

나에게 '처음'이었던 그 시간들은 내게 고뇌와 인내를 준 채 지나가 버렸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건 아닐까.



오늘은 평범하고도 평범한 5년차 직장인 J씨의 일상을 담아보려고 한다.   





아침 6시 40분, 알람이 울린다.

회사와 집과의 거리는 정확히 1시간 15분. 버스를 한 대 놓치는 시간에 따라, 플러스 마이너스 5분 차이.

7시 20분이 되면 집을 나선다. 이상하게도, 30분에 나서면 정말 가까스로 회사에 도착하는데 20분에 나서면 출근시간 20분 전에 도착한다.

알람은 5분 단위로 3개를 켜두었는데, 첫번째 알람은 잠깨우기 용도. 두번째 알람은 뒤척이기 용도. 세번째 알람은 나를 진짜 일으켜세우는 용도.

더 이상의 알람이 없기에, 마지막 알람에는 무조건 일어나야 한다.



그 날 그 날, 컨디션에 따라 나는 첫번째 알람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월요일에는 새벽 1시가 넘어서 잠을 드는 경향이 있어 매번 두세번째 알람에 허겁지겁 깨어난다.

후다닥 양치를 하고, 화장을 한다. 



나는 요일마다 다른 색상의 옷을 즐겨입고, 화장도 다른 컬러로 하는걸 좋아한다.

월요일에는 아침부터 팀 주간회의가 있어서 으레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는다. 

보통 흰색과 검정색의 조화인데, 다른 팀원들도 이렇게 생각하는건지 몰라도 월요일에는 이상하게 다들 시밀러룩이 된다.  




아침 7시 20분, 항상 똑같은 출근길


회사에 갈 때는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이유는 단 하나,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지만, 두 번째 버스를 약 50분을 타고 가기 때문에 항상 내가 타는 정류장에서 자리가 있는 편이다.

다행히도 회사로 가는 초록버스가 번호는 다르지만 3대가 다닌다. 그 덕분에, 저 멀리서 사람이 좀 차있다 하면 다른 버스를 타곤 한다.



내가 선호하는 버스의 좌석은 머리를 기댈 수 있는 좌석이다.

모든 버스가 그런건 아니지만, 간혹 머리를 기댈 수 있는 좌석이 있는데 아침에 그 황금좌석에 앉으면 하루가 편해진다.

전에 몇 번 정류장을 지나친 적이 있기 때문에, 카카오버스로 도착하기 전 알람을 해둔 후 그대로 잔다.

실제 출근길은 50분이지만, 잠을 자서 그런가 버스를 타는 그 시간은 마치 5분처럼 짧게 느껴진다.



우리 회사는 사람이 타는 엘레베이터가 총 5대, 화물 엘레베이터가 1대 있는데

출근길만 되면 사람이 붐빈다. 어떤 때는 엘레베이터만 10분 넘게 기다려서 탄 적도 있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다보면, 이번 타이밍에서 나를 태우고 올라갈지 아니면 운이 나쁘게 내가 타는 순간 "삐"소리를 낼지 알 수 있게 된다.

 




아침 9시, 업무의 시작은 아메리카노


자리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건 마치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하나의 의식같은 행동이다.

아메리카노를 먹지 않으면 일을 시작할 수 없는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분탓일까. 



회사에 사내카페가 있어서 종종 사먹곤 하는데, 

사내카페의 장점은 밖에서 사먹는 커피보다 싸다. 단점은, 월급에서 까이기 때문에 월급날이 되기 전까지 내가 얼마나 썻는지 가늠이 안된다.

그래서 가끔은 프리패스처럼 사원증을 쓰지만, 월급날이 되면 몇 잔 차이로 월급의 몇십만원 단위가 바뀌는걸 보고 잠시 충격을 먹곤한다.

뭐, 그때 잠깐뿐이긴 하지만. 여전히 매 달의 커피값을 예상대로 쓰는건 어렵다.



얼마 전부터 9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집중근무시간이라 해서, 

이 시간만큼은 회의 금지, 메신저 금지에 오롯이 업무에만 몰두하는 시간이라고 인사팀에서 공지를 했다.

그래서 최대한 이 시간만큼은 가장 머리를 많이 써야하는 일을 주로 한다.

점심이 시작되기 딱 2시간이라, 약간의 마감기한도 있는듯해서 비교적 속도를 내어 일할수 있다.



오늘은 제휴사에 보낼 프로모션 기획안을 하나 만들었다.

나는 지지리 운이 없어서, 자리도 횡단보도 4차선 정중앙에 있는것 같은 위치에 앉아있다.

내 뒤에는 부문장님 자리라, 언제든지 내 모니터에 뭐가 떠있는지 굳이 의식을 안하고도 슬쩍 볼 수 있으며

사무실 출입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내 자리를 한번씩 힐끔 보기에 좋은 자리이다.



그래서 나는 신경이 쓰이지만,

내가 맡은 제휴사의 프로모션을 제안하기 위해 오늘도 구글 서칭을 한다.

이번에 맡은 제휴사는 백종원 아저씨가 하는 홍콩반점인데, 이미지를 찾기 위해 한쪽 모니터에 짬뽕 이미지를 올려두니까

괜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분명 프로모션을 열심히 짜느라, 이미지를 켜둔것일 뿐인데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애궂은 짬뽕 그릇이 민망해서 모니터 한쪽끝에 최소화시키곤 한다.  




오전 11시 40분, 점심의 심리학


이제 막내 자리는 내줘서, 점심을 내가 매번 고르진 않지만 

가끔 점심메뉴를 고민하는 후임이 안타까워 그동안의 점심메뉴 내공을 바탕으로 가끔 제안을 해본다.

점심메뉴 고르기는 정말 어렵다. 왜 어렵냐면, 미리 짜둘수가 없고 그날 기분에 따라 모두가 만족시킬만한 메뉴가 '딱!'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팀장님은 점심을 편하게 고르라 하시지만. 허허 그게 말처럼 쉽냐구요...

팀장님의 점심 철학은,

1. 점심은 밥과 국이 나오는 한식을 선호한다.

2. 닭갈비, 찜닭 이런 것들은 그저 술안주일 뿐이다.

3. 회사에서 신호등을 두 번 건너가면 안된다. 멀면 아웃!


그래서 대개, 점심메뉴는 한식과 국밥과 가끔 금요일은 중국 음식으로 정해지곤 하는데

누군가는 매일의 메뉴가 겹치지 않게 점심 메뉴 제안을 해야한다.


점심을 먹는 인원이 사실 적어서, 약속을 잡기도 쉽지는 않다.

팀장님. 내근직 3명 + 외근직 2명 인데, 외근직은 영업자들이라 주로 점심시간에 나가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보통 4명이서 먹는데, 간혹 약속이 있으면 팀장님과 독대를 해야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다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미리 약속일자를 공유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점심 그 짧은 시간에 수십개의 선택지가 머릿속을 떠다닌다.  




오후 2시, 거래처 미팅

사실 영업자가 아니면 미팅을 자주 나가진 않지만, 간혹 영업자와 둘이 거래처 미팅을 나가곤 한다.

이번주는 미팅이 몰려 무려 3번이나 나갔다. 미팅이 있는 날이면, 나만의 '미팅 룩'으로 셋팅하고 집을 나선다.

미팅룩이라는게 사실 별거 없지만, 깔끔한 복장에 평소보다 비싼 가방을 들고 평소보다 높은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선다.



미팅이란,

마치 소개팅처럼 모르는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므로 평소보다 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신입때는 미팅이 두려웠다. 말을 꺼내는게 어색했다.

내가 미팅을 주도한다는게 상상되지 않았다. 주섬주섬 명함을 꺼내 건네는 것도, 우리 서비스 좋아요 라고 이야기 하는것들이 익숙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나니,

미팅이란게 익숙해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명함을 건네고, 이야기를 하는 것들. 

때로는 그들이 말하는 것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기도 하고,

모르는 세계를 알아가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거래처로 미팅나가는게 좋다.

내근직이라 사무실에만 있으면 갑갑할 때도 있는데, 외근 나갔다오면 바람 쐬는 기분이랄까.  


오후 4시, 결재가 상신되었습니다.


거래처 외근이 끝나면, 간단히 회의록을 작성하고 팀에 공유한다.

그리고 쌓여있던 품의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프로모션 시행품의부터 경품 지급 요청 품의까지. 결재가 상신되었습니다를 한 세번 정도 누르고 나면 한시간이 금방 순삭된다.

우리 회사의 품의라인은 특히나 긴데, 가끔 내 뒤에 8명이 넘게 붙어있는걸 보면 일이 일을 만드는것 같다는 기분도 든다.



어드민를 로그인해서, 내일 게시될 프로모션을 미리 셋팅해둔다.

그리고 전사마케팅 부서에 요청해야할 내용도 전달해놓고,

제휴사에 보낼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데이터 분석 시스템에도 들어가본다.

내가 만든 프로모션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어떤 경로로 클릭하게 되었는지 

숫자를 보고 있노라면 카피를 바꿔야겠다 싶기도 하고, 좀 더 눈에띄는 구좌에 노출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데이터 공부에 관심이 많아,

관련 강의도 회사의 힘을 빌러 신청했다. 으하하.

사실 될지 반신반의했는데, 마케팅 교육이라고 하니 회사에서 지원해줬다.

물론, 법카찬스를 쓰기 위해서 팀장님과 부문장님께 메일로 내가 왜 이 데이터 마케팅 교육을 들어야하는지 구구절절 써야했지만.



어쨌거나, 내 돈 들이지 않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서 뿌듯하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한, 회사에서 해준다는 것들은 다 찾아서 해야지.

사실 처음 회사를 다녔을 때,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회사랑 학교랑 구분을 못했던 것이다.

교수님과 부장님은 다르다. 학교는 내가 돈내고 공부를 하는 곳이지만, 회사는 내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곳이다.



물론, 내가 성장해서 역량을 더 낼 수 있으면 회사도 좋겠지만.

사실 회사는 나를 성장하게 해줄 의무는 없다. 일을 하면서 부딪히며 배울 수는 있겠지만, 그건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신입 때는 누군가 내게 시키는 일을 위주로 했다.

5년차인 지금은 내가 일을 만들고 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무슨 액션을 취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오후 6시, 야근은 없다

우리 팀의 좋은 점 중 하나는,

퇴근할 때 딱히 눈치를 안 본다는 점이다.

팀장님이 솔선수범해서 6시 언저리에 퇴근해주시기 때문에 정말 내가 자진해서 남는거 아니면 웬만해선 6시에 집에 간다.

워라밸이 지켜지는 이 부분은 너무 좋다.

요즘 52시간제 도입으로 많은 회사가 자동으로 컴퓨터가 꺼진다지만,

아직도. 많은 회사들이 야근을 종용하고 있으니까.



그건 정말 일이 많아서일지도, 혹은 팀 분위기가 그렇게 고착화되어서 그런것일수도.

어떤 이유에서건 야근을 하는 분위기면 아무 이유 없이 야근을 하게 되어 있다.

야근이란 그런 것이다. 



문득 생각 났는데, 예전 회사 다닐때 한 선배는 신입사원인 내게 이런 슬픈 말을 했다.

선배 : 천천히해, 어차피 밤에도 할걸 미리 힘빼지마.

낮에 내 업무를 다 끝내도 갈 수 없다는 분위기인걸 깨닫고, 나는 낮에 1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질질 끌어 3시간 동안 잡고 있었다.

변한 건 없었다. 빨리 끝낼수록 진은 빠지고, 새로운 일들이 계속 주어졌으니까.  



오후 7시 반, 나에게 워라밸이란

평일에는 주로 아래 선택지들 중 하나를 선택한다.

A. 서점에 들렀다가 운동을 간다.

B. 카페를 들렀다가 운동을 간다.

C. 집에 간다.


집 근처에 서점이 생겨서 요즘 종종 다니고 있다. 평일에는 주로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한다.

정말 피곤할 땐 그냥 집에 가서 일일 드라마나 보다가 쉰다.

책을 보거나, 운동을 하면 워라밸을 지키고 있는 직장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녁 시간을 남들보다 좀 더 생산적으로 쓰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오후 12시, 오늘도 안녕


얼마 전에 받은 보너스로 드디어 내 노트북을 샀다.

그동안 오빠 노트북을 빌려 쓰느라 매번 눈치보며 썼는데 이제 내 이부자리에서 뒹굴거리다 노트북을 켜서 유튜브도 보고 글도 쓴다.

나는 내 방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시간들을 사랑한다.

졸리면 뒹굴거리고, 심심하면 책을 보고, 소소한 간식거리를 까먹는 이 순간들이 좋다.

아무래도 나는 집순이가 체질에 맞는것 같다.

사실 돈을 벌어야만 하는 회사원이라서, 매일 졸린 눈을 비비며 회사에 나가고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프리랜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프리랜서가 될 만큼의 능력을 쌓아야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그래서 오늘의 5년차 경력직 J씨는 앞으로 무얼하며 먹고 살지 고민중이다.

그동안 시간이 흐르는대로, 회사를 다니다보니

어느새 5년차가 되었고, 후임이 생겼고, 직급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나는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써 회사라는 존재 없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만의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걸까. 

밤이 깊어간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일보다 더 어려운 그것, 인간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