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없다니까?
대화란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려 나의 언어를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 고차원적인 과정이라 생각한다.
지극히 평범한 대화라는 행위가 어떻게 고차원적인 과정이 될 수 있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대화는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 각자의 언어를 상대방의 마음에 새겨넣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대화는 대부분 서로가 아닌 일방통행이다.
대화인 척 하는 전달.
사회를 경험하며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대화를 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단지, 조금은 화가 날 때가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스치듯 부는 바람을 느끼지조차 못한다. 누군가는 스치는 바람에도 마음이 시린다.
나는 지극히 후자이다.
주고받는 대화 속에 자주 안타까움을 느낀다.
'굳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화법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많은 것 같다, , ,)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장난이라며 웃으며 지껄이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로 아무렇지 않게 상대를 폄하한다. 그것이 폄하라는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웃자고 한 소리라는 듯한 태도. 진절머리가 난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
듣는 사람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따위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대들의 언어는 거기까지인가 보다. 아무렇지 않게 무례함을 내뱉으며 웃는 당신. 별볼 일 없는 사람이구나'
웃긴 건 이런 사람들조차 자신은 대단하고, 성공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대단하고 무엇이 성공인가?
어떤 성취를 그들이 거두고 있던, 부러움의 시선보단 연민과 동정의 시선이 앞선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고 있는 그대. 그 눈을 떠라.
아무리 자신의 지식과 성취로 포장을 해봐도 당신은 그저 숨쉬듯 무례한 사람일 뿐이다.
이보다 더욱 최악이 있다.
바로 선택적 무례함이다.
이것을 뭐라 설명해야할까. 저 단어만 봐도 마음이 답답하다.
언제부터 사회가 성공한 사람, 돈 잘버는 사람들에게 특권을 준 것인가.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함부로 무례할 권리를.
안타까운 마음에 한 없이 무력해진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