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턴> NJ Transit 165 - 열한번째

Freddie and Mei

by Jony

2월 4일 일요일.

항만청(Port Authority) 버스터미널은 한국의 고속버스터미널에 비할 수 있는 공간이다. 4불 50센트를 내고 NJ Transit 165번 버스를 탄 후 짧으면 20분, 길면 50분이 지나면 뉴저지와 뉴욕을 이어주는 링컨터널을 통과해 뉴욕 항만청으로 오게 된다.

<어디야.>

유성이의 카톡이 왔다. 항만청 스타벅스에서 여자친구와 기다리는 중이란다. 그날따라 버스는 만석이었고, 기사는 매 정류장마다 다음 차를 이용하라고 안내하였다. 나는 무려 50분이나 지각했는데, 사실 버스가 정차하는 건 핑계였고 발이 너무 아파 발마사지를 받고 왔기 때문이었다.

유성(Freddie)의 여자친구 메이(Mei)는 저번 금요일에 만난 적이 있었다. 메이는 아주 매력넘치는 사람이었는데, 연애가 처음이라는 유성이 대체 뭘 했길래 이런 좋은 사람을 만났나 싶을 정도였다. 둘은 같은 주립대를 나왔고,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잘 지내고 있었다.

"야 오랜만이다!"

유성이 인사했다.

"금요일에 봤잖아. 메이, 잘 지냈어?"

"잘 지냈지!"

우린 지하철을 타고 퀸즈에 위치한 영화박물관(Museum of Moving Image)으로 향했다.

퀸즈의 날씨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비는 아주 약하게 내리고 있었다. 우린 역에서 좀 걸어 영화박물관에 도착했는데, 하얀 외벽에 간판도 마땅히 없어서 그냥 지나칠 뻔한 건물이었다.

박물관 입구.

메이가 가져온 학생증으로 같은 대학 친구들이라고 뻥을 친 후 할인된 입장권을 받아 들어갔다. 이 박물관은 단순히 영화 박물관이라기보단 "활동사진"의 역사가 담긴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라고 정의되기 훨씬 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고안한 움직이는 그림부터 텔레비전 방송용 카메라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찾아볼 수 있는 극장용 영화는 90년대까지인 듯 했는데, 옛날 영화를 꽤 안다고 자부하고 영화를 학문적으로 공부한 나도 모르는 작품들이 꽤 많았다.

"그러니깐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하기 이전부터 있어왔다고 할 수 있지. 움직이는 사물을 표현하려는 노력은 고대 알타미라 동굴 벽화때부터 있어왔어. 자세히 보면 소의 다리가 여러개거든. 와 이건 스타트렉이네. 스타워즈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야."

나는 일일 큐레이터가 되어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쏟아부었다.

유성과 메이.

우린 작은 모니터에서 택시 드라이버 시절의 로버트 드 니로를 보게 되자 약속이나 한 듯 총을 드는 시늉을 하고 대사를 읆었다.

"You talkin' me?"

또는 로빈 윌리엄스가 맷 데이먼과 열연한 굿 윌 헌팅의 명장면을 따라하기도 했다.

"My son, It's not your fault."

"Don't fuck with me!"

메이는 우리 둘을 보며 고개를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와 유성



박물관을 나온 우린 플러싱으로 향했다. 종점이라서 가는 길이 멀었는데, 둘은 그동안 버스 뒷좌석에서 낄낄대며 장난을 쳐댔다. 창밖은 분명 뉴욕이지만 퀸스는 세계 어디에나 흔히 볼 수 있는 동네였는데, 내가 상상한, 빌딩으로 가득한 맨해튼은 뉴욕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플러싱(Flushing) 은 동부 최대의 한인타운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인들에게 밀려나고 있는 곳이다. 촌스런 간판은 80년대 시내를 생각나게 했는데, 중국인들이 세운 거대한 쇼핑센터들도 보였다.

"야. 너 발 괜찮냐?"

유성이 물었다. 나는 박물관에 들어설 때부터 계속 절뚝거리며 다녔는데, 지팡이가 필요할 정도였다. 우린 동네 중국인 상점으로 들어섰다.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모자와 털장갑이 절실했고, 무려 하나당 1달러에 팔고 있었다.

"지팡이가 분명 있을텐데. . . 찾았다."

그러나 그 지팡이는 못 쓸 물건이었는데, 손잡이는 용으로 장식되어 있는데다가 여의주를 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규모의 푸드코트

푸드코트에서 가성비가 꽤 좋은 음식들을 배터지게 먹은 후, 우린 맨해튼 첼시마켓으로 향했다. 사실 저번에 B와 와봤지만 자세히 둘러보진 못했다. 우린 꽤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마켓의 상점을 하나하나 구경했다.

"보통 치즈 하면 꽤 맛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치즈 자체의 향이 너무 강해서 입문하려면 힘들어. 그래서 일반인 입맛에 맞추다 보니깐 체다치즈가 탄생한거거든. 이건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인데 보통사람들한텐 생소하지. 이걸 좀 싸게 다운그레이드 시킨 게 파마산이야. 저긴 파스타가 있네. 보통 스파게티만 생각하는데. . ."

나는 로컬 상점에서 또 일일 큐레이터가 되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요리지식을 늘어놓았다.

첼시마켓은 나에게 있어 놀이공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각종 희귀한 식재료들을 저렴하게 파는데다 수많은 레스토랑이 있었다. 한 가게는 주방용품 전문점이었는데, 냄비들만 봐도 가슴이 설렐 정도였다. 난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길을 그만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나 그냥 다 포기하고 다시 주방에서 일하면, 진짜 미친놈이겠지?"

유성에게 물었다.

"그렇지. 그냥 사이드로 할 순 없는거야?"

"할 수 있지. 근데 한국에서 양식하려면 되게 식재료도 비싸고, 큰 마트까지 와야되니깐."

주방에서 채 1년을 못 지낸 나였지만, 그땐 정말 행복했었는데.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미국 오는 걸 포기하고 계속 호주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첼시마켓을 나와 비가 주룩주룩 오는 거리를 걸었다.

"야 이거 사진찍기 딱 좋은데? 너희 둘 서봐."

그렇게 해서 이 커플의 인생샷이 탄생했다.

프레디와 메이. 비오는 맨해튼.

초등학교 친구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맨해튼을 걷고 있었고, 나는 친구의 행복한 뒷모습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