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주
2월 5일 월요일부터 9일 금요일까지.
우리 부서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다. 리치(Rich)는 나보다 한 살 많은 한인 2세 남자인데, 이미 다른 회사에서 오퍼레이팅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성격도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해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곧장 실무에 적응했다. 나 역시 인턴 치고 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아마존에 로그인해 판매 예상치를 파악한 후 출고할 물품 수량을 정리한다거나, 고객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 입고되는 제품의 유통기한 양식을 통일하는 업무 등을 맡게 되어 한 주가 빠르게 흘러갔다. 오피스가 한가할 땐 웨어하우스에 내려가 재고 점검 등을 시행하여 바쁜 시기를 대비하기도 했다.
"안드레. 스몰 라벨 여기 있고, 24×24×24박스 어딨죠? 이거 말고 다른 재고는 없나요?"
"다 썼어 이미. 그게 전부야."
"쓰레기가 찼네요. 업체에 연락해야 되겠어요."
"세 번이나 말했다구. 올 생각을 안 해."
나는 주말에 너무 걸어다녔는지 발에 통증이 여전했다. 일주일 내내 절뚝대다가 금요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괜찮아졌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동네 앞 델리에서 빵과 우유를 사먹으며 저녁을 해결했다. 요리를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회사에서 아침, 점심을 다 챙겨주기에 식재료를 사는 건 더 손해였다. 저녁을 먹고 나면 열한시까지 영화를 보거나,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했고, 가끔 복학 준비를 위해 동네 도서관까지 15분 정도를 걸어가 공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성이도 자주 보았다. 취업 준비에 바쁜 내 친구지만, 둘 다 한가하면 그가 있는 한인타운으로 놀러가 저녁을 같이 했다.
"회사는 다닐 만 하냐."
"응. 재밌어. 여기 짬뽕 양이 많네. 곱빼기 괜히 시켰나."
"다 먹어 새꺄."
도서관에선 가끔 강연 같은 걸 했는데, 참석하면 쿠키와 커피가 마련되어 있었다. 수요일에 연사를 맡은 백인 여성은 경력 20년의 기자였다. 그녀는 <언론이란 무엇인가> 를 주제로 약 1시간동안 질 좋은 강의를 해주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참가자들이 강연 중간중간에 열정적으로 질문했다는 것이다. 그건 고등학생도, 할머니도, 동네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는데, 질문에도 논리와 품격이 있었다. 강연자 역시 몸짓을 크게 하고 어조를 달리 해가며 연설하였는데, 마치 눈가 주름까지 모두 이용해 자기의 의견을 표현하는 듯 보였다.
"한국에서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강연이 끝난 후 그녀가 물었다.
"한 달 정도 인턴으로 왔어요. 대학생이구요."
"그렇구나. 어떤 회사요?"
"주로 건강 관련 제품들 팔고 있어요. 주력은 케어 패키지(Care Package. 선물용으로 보내는 과자 박스)이구요, 의자도 팔고 여드름 패치도 팔아요. 노스 버겐에 있어요. 한국에서 저널리즘 수업을 들었는데 저한테는 단어들이 어려워서 그런지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네요."
"전문적인 분야다 보니깐 좀 그렇게 느끼실수도 있죠. 다른 분들에게도 어려웠을거에요."
그런 일상들이 흘러갔다. 누군가에게 뉴욕이란 타임스퀘어에 가고 스타벅스 커피를 들며 매일 밤마다 파티를 하는 곳이겠지만, 일상으로 다가온 나에겐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삶의 반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