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턴> NJ Transit 165 - 열아홉번째

by Jony

뉴욕과 스태튼 아일랜드를 이어주는 페리를 타러 선착장에 왔다. 뉴욕 다른 지역에도 많은 페리들이 있지만, 이 페리의 장점은 무료라는 것이다. 단순한 관광용 페리가 아니라 엄연한 대중교통인 페리는 맨해튼 남부와 스태튼 아일랜드를 직선항로로 이어주어 출퇴근용으로 좋고, 자유의 여신상과 맨해튼의 마천루, 입출항하는 대형선박들, 베라자노 네로스 교 등이 보이게 지나가는데다 돈도 안 받기에 관광객에겐 딱이다. 페리는 꽤나 큰데, 4층 정도이며 갑판엔 사진찍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선실 내부. 꽤 넓다.
자유의 여신상
출항하는 배. 다리는 스태튼 아일랜드와 브루클린을 이어주는 베라자노 네로스 교.

약 25분 정도 지나자 배는 부두에 도착했고 나는 기차를 탔다. 스태튼 아일랜드는 뉴욕에 속해 있으면서 가장 뉴욕같지 않은 곳인데, 창 밖을 바라보니 그냥 시골 마을들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뉴욕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마당 널찍한 집들이 많이 보였다. 기차는 절대 지하로 빠지는 일이 없이 나무들 사이를 달렸다.


"이번역은 오크우드 헤이츠입니다."

안내방송을 듣고 내린 역은 너무나 한적했다. 역 바깥으로 빠져나와 내가 향한 곳은 리치먼드 역사마을인데, 이 곳엔 과거 방앗간 등의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해두었다.

하지만 인도 사정은 영 좋지 않았는데, 차들이 쌩쌩 다니는 사이로 걸어야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둘러봤을 때 교회 뒤쪽으로 오솔길을 발견했는데, 왠지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장소였다. 한참을 숲길로 걸어가자 갈대밭, 그 너머 감탄이 절로 나오는 강물에 노을이 깨지고 있었다.

너무 평화로웠다. 분명 뉴욕에 속해 있는 공간인데 완벽한 산길,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갈대밭 안으로 들어가다 노루를 만나기도 했고, 넓은 공터에서 천천히 걷기도 했다.

저기 바다 건너 가까운 섬 맨해튼은, 관광객과 주민들로 미어터져 항상 바쁜데 난 여기서 한가롭게, 조용하게,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이다. 그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만으로 스물 다섯 생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내가 지나온 길은 꽤 그럴싸했다. 영화를 찍고, 호주 사막에서 살고, 방송에 나오고, 미국에서 인턴쉽을 마치고. 난 앞으로 또 어떤 일들 때문에 울고 웃게 될 지 모르지만 가끔은 지금처럼 산길을 걷고, 바다를 보러 가고, 친구들과 술마시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왜 열심히 달려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하냐고, 젊을 때 미친듯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왜 남들보다 늦게 대학 들어온 주제에 조급함 하나 없이 여유부리냐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올라가 정상에 선다면, 정상에 올랐다는 게 전부일지 모른다.

"아들. 멋진 삶이란 노력하는 게 아니라 즐기는거야. 등산할 때 열심히 올라가기만 하면 무슨 재미야. 꽃이 폈으면 꽃구경도 하고, 경치도 보고, 같이 동행하는 사람이랑 얘기도 하고, 혼자 사색에도 빠져 봐야지."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할 줄 아는 분이시고, 나 역시도 그렇게 살 것이다.


갈대밭이 바람에 흔들렸다. 해가 서산으로 기운다. 여기선 뉴욕의 상징인 마천루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너무 좋았다.


정말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