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턴> NJ Transit 165 - 네번째

With B in Brooklyn

by Jony

1월 27일 토요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 삶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분은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난 그 분을 알기 전까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주님의 품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을 기다리십니다…….”


맨해튼에서 브루클린으로 향하는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한 흑인이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반쯤 흘려 들으며 내 앞의 차창을 바라보았다. 차량 안에서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어딘가로 향하는 뉴요커들은 모두 반쯤 피곤해 보였다.


“이번 역은 14번가입니다.”


역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난 내릴 준비를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차량 문이 열리고 그와 함께 빠져나왔다.






윌리엄스버그는 뉴욕 안에서 가장 힙(Hip)한 동네로 유명하다. 그래피티로 가득한 거리엔 빈티지샵이나 저렴한 옷가게들, 이탈리안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공업의 전성기가 끝난 후에 버려진 폐공장들은 눈길을 끄는 술집, 갤러리들로 개조되었다. 동네 유명세에 뉴욕 생활을 꿈꾸는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가난한 브루클린이라는 옛 말이 무성하게 이 곳의 땅값도 많이 올랐다. 특히 윌리엄스버그는 브루클린 안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임대료가 저렴한 낙후된 지역에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원래 거주하던 주민들을 몰아내는 현상)이 가장 빠르게 진행된 곳이다. 수십년간 이곳에 살아온 이탈리아, 히스패닉, 아시아 이민자들이 또 다른 외부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겨 다른 곳으로 쫓겨난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가려고?”


아파트 앞에 앉아있는 백인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 친구 기다려요.”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데?”


“던킨도넛 앞에 있다는데 어딘지 알아요?”


“알지. 여기서 한 블록 간 다음에 길 건너서 왼쪽에 있어.”


“고맙습니다. 윌리엄스버그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가게 하나만 추천해줘요.”


“피자? 그 던킨도넛 바로 길 건너면 피자가게 두 개 정도 있어. 그 둘 다 괜찮고 거기서 왼쪽으로 두 블록 정도 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하나 있는데 그 집도 괜찮고. 아무데나 들어가도 맛은 꽤 있을 거야.”


“그렇구나. 담에 봐요.”


나는 이 곳에서 초등학교이자 고등학교 동창 B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현재 한국에서 대학원 재학중인데, 우연하게도 같은 시기에 뉴욕으로 왔다. 저녁엔 휘트니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해야 한다기에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던킨도넛 앞에서 서 있는 B를 만났다.


“잘 지냈어?”


내가 물었다.


“야 반가워. 난 잘 지냈지.”


“피자 먹을래?”


“피자? 좋지. 내가 저번에 먹으려다 못 먹은 곳 있는데 거기 갈래? 테라스 있는 곳이야.”



우린 그 피자집을 향해 걸었다. 아니, 사실 B도 위치를 잘 몰라서 우린 윌리엄스버그 구석구석을 헤매며 삼십분을 얘기했다. 난 내가 어쩌다 미국에 있게 되었는지를 걸으며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 회사에 어제 첫 출근했어.”


“와 되게 신기하네. 계속 미국에 있으려고?”


“글쎄. 일단 당장은 못 있지. 비자가 없는데. 일단 학교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


“그렇구나. 야 저긴거 같아. 테라스 있는 집.”


우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웨이터가 우리를 반겼다. 가게는 이태리 사람들이 운영하는 일반적인 피자집보다는 마음 편하게 들릴 수 있는 정돈된 레스토랑에 가까웠다. 식당은 바(Bar)와 함께 운영되고 있었고 가운데엔 벽난로가 타고 있었다. 우린 자리했다.


“가게 되게 좋다.”


“그렇지? 저번에 못 먹었거든.”


“왜?”


“같은 숙소 사는 친구랑 왔었는데 난 이미 점심을 먹었었거든.”


“그랬군. 너 술 못 마시지?”


“어. 내가 지금 감기약 먹고 있는게 있어서.”


우린 마르게리타 피자 하나와 소시지, 맥주와 스프라이트를 시켰다.


“근데 미국엔 왜 온 거야?”


내가 물었다.


“나 졸업논문 준비하고 있어. 근데 주제로 잡은 작가가 지금 휘트니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거든.”


“그거 직접 보러 온 거야?”


“그것도 그렇고… 사실 저번에 한 번 갔는데 거기서 하는 톡(Talk)이 오늘이더라구.”


“그래서 저녁엔 못 만날 것 같다고 했구나.”


“맞아. 그게 꼭 들어야 되는 거라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예전에 피자가게에서 알바할 때, 그 많은 종류 중에서도 마르게리타는 못 먹어봤다. 일반적으로 고기가 들어가지 않고 치즈와 바질로 맛을 내는 마르게리타는 정통 이탈리아 피자인데, 현대 우리가 알고있는 피자는 브루클린으로 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미국인들에게 팔게 되면서 로컬라이징된 것이다. 마르게리타의 맛은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이거 진짜 맛있다.”


“맛있지? 그건 뭐야?”


“소시지.”


같이 나온 소시지는 길게 나오지 않고 썰어서 익혔는데, 약간 짜긴 했지만 간이 잘 배여 있었다. 맥주도 아주 좋았다.








“저거 청설모인가?”


내가 물었다.


“그런 거 같네. 다람쥐는 아니지 않을까?”


청설모로 보이는 꼬리에 털이 많은 짐승은 도로 건너편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우린 차나 한잔 할 겸 적당한 카페를 찾아 윌리엄스버그를 걸었다. 그 적당한 카페라는 것에서 스타벅스나 던킨 같은 프랜차이즈는 제외되었다. 오후 2시의 왠만한 카페들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우린 의도치 않게 윌리엄스버그 이곳 저곳을 둘러보게 되었다. 길 건너편에서 하레디(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이 안식일 예배를 마쳤는지 단체로 지나갔다. 나는 남자 하레디의 가운데가 텅 빈 모자를 보며, 저 안에 계란을 넣어 다녀도 되겠다는 상상을 했다.


“너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안 본지 한 4년 된 거 같은데.”


내가 물었다.


“나는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 얼마전에 남자친구 생겼고.”


“잘 됐네.”


“근데 이번에도 갑자기 유럽 가버려서 두 번 정도밖에 데이트 못 했어.”


“저번에 만나던 남자도 비슷하지 않았나? 말도 없이 해외 가버렸다는.”


“누구? 아…… 헤어진 지 꽤 됐지. 그 이후로 소개팅도 여러 번 받고 그랬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들더라구. 연애는 그 이후로 안했어.”


“껄떡대는 사람은 많지 않았나?”


“어휴 말도 마.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어.”


“적당히 예뻐야지 그러니까.”


“몰라. 넌 어땠는데?”


“나는 뭐 여러 번 바뀌었지. 저번 여름에 17학번이랑 헤어졌고.”


“17? 완전 도둑놈이네.”


“글쎄 걔한텐 다 미안해. 헤어진 계기도 그렇고 내가 잘못한 것도 많고.”


우린 사람들이 여유롭게 지나가는 윌리엄스버그 중심가를 지났다.


“아 저기다. 저기 되게 유명해. 들렸다 가자.”



우린 헌옷가게로 들어갔다. 이 곳은 꽤 넓고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구두부터 셔츠, 치마, 가디건, 자켓 등등 안 파는 게 없었다. 카운터는 파는 곳과 사는 곳 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파는 곳 카운터의 점원들은 손님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가격을 매기는 중이었다. 남자인데도 배꼽을 드러내고 화장을 한 게이 점원들이었다. 나도 구두를 하나 살까 했는데 내 발사이즈보다 모두 컸다. 한국인 성인 남성 중 가장 작은 발사이즈 축에 속하는 나는 이 곳에서 도저히 맞는 구두를 찾을 수 없었다. B는 옅은 갈색 롱 자켓과 검정 숏 코트를 골랐다.


“나 이거 봐줘.”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검정 숏 코트는 예쁘긴 했지만 어깨가 너무 져서 레고처럼 보였다. 내가 솔직하게 말해 줬음에도 B는 살까 말까 고민하는 듯 했다.


“그거 담아갈 캐리어는 있니?”


“없지. 하나만 골라야지. 아 이거 예쁜데.”


“레고같다니깐. 갈색이 훨씬 나아.”


우린 계산 후에 가게를 나왔다. 거리를 좀 더 걷 간신히 사람이 없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3불짜리 커피와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난 카페인이 들어간 모든 음료는 마시지 않는다. 남들보다 반 박자 빨리 뛰는 내 심장은 카페인에 니코틴보다 민감하다.


우린 별의별 얘기를 다 했고, 4시가 다가왔다.


“나도 휘트니 가볼까?”


“너도 가게? 그러자 그럼.”


“그 톡은 일반인도 참석할 수 있는 건가?”


“가능할 걸? 신청해서 참석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주제로 하는데?”


난 마지막 남은 레모네이드를 빨대로 빨았다.


“이 작가가 지미 더햄이라는 백인 작가인데, 수십년동안 인디언 작품을 만들었어. 처음엔 자기가 인디언도 아닌데 인디언인 척 하면서 작품을 낸 거지. 그러다 미국에서 인디언 관련 작품은 인디언인 사람만 만들 수 있다는 법이 제정된 거야. 그런 윤리적 관점에서 과연 이 작가가 인디언도 아니면서 인디언 작품을 만드는 게 옳은가를 논하는 자리? 내 졸업논문 주제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건 표현의 자유 아닌가? 여긴 미국이잖아.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글쎄. 인디언들이 법이 제정되고 나서 이 작가를 고소했거든. 어쨌든 불법이니깐.”


B의 컵 안에 남아있던 커피도 이미 없었다.


“그럼 가보자.”


난 꽤 흥미로운 주제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