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
2016년 4월.
독립영화를 찍어보겠다고 공대를 자퇴한 후 몇몇 작품을 냈지만 신통치 않았다. 군대에 갔다 오고 나에게 남은 건 고졸 학력 뿐이었고,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보증금 이백만 원이 없어 고시원에 살았고 갑자기 아플 때 쓸 비상금조차 계좌에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 주위에선 공단이나 전문대학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거나 영업직이라도 시작해보라고 부추겼지만 그러기 싫었다. 평생 내가 사랑하는 일을 찾고 싶었고, 사람들이 말하는 인기직종은 나라는 인간의 흥미, 적성과 동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려면 배우기 위한 자본이 필요했다. 불안정한 길을 택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께 감히 지원해달라고 할 수 없었다. 기술도 없는 이십 대 청춘이 가장 빨리 자본을 모을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공단에 들어가 야간전담을 뛰는 것, 거제도 내려가 조선소에 들어가는 것 등등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즈음했을 때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영어가 안 된다면 시드니 한인식당에서 시급 10불을 받고 일하겠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 최저임금의 못 해도 두 배는 준다는 호주. 난 테마파크에서 영어 가이드 알바를 했고, 인터넷 영업사원시절 외국인 고객들을 개통시켰다. 리조트 하우스키핑 경력, 레스토랑 키친핸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싶었다. 외국에 나가 처음 “사는” 것이며 그건 외국을 “여행” 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니까.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쳤다. 가기 전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준비하고, 정보란 정보는 구글을 파헤쳐서 탐색했다. 주 5일 화상영어를 등록했고, <Grammar in use>를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출국날짜가 다가왔다. 나에게 호주는 기회의 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