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1월 25일 목요일.
무려 십 년 만에 JFK로 입국했다. 심사장을 통과한 후 나에게 가장 먼저 말 건 사람들은 다름아닌 택시기사들이었다.
“어디까지 가시오? 여봐요. 잠깐만, 어디까지 가냐니깐?”
난 뉴저지까지 택시 탈 정도로 넉넉하지 않았다. 나는 대꾸했다.
“미안합니다. 돈이 없네요.”
“돈이 없다고? 씨발(Fuck) 돈도 없으면서 이 나라는 왜 왔담.”
웰컴 투 디 아메리카. 철저한 자본주의의 원리로 돌아가는 나라. 돈 없으면서 난 이 나라에 대체 왜 온 걸까. 자금이 넉넉치 않았던 나는 공항 문 앞에 셔틀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해 뉴저지로 갈 예정이었다. 오과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왔니? 지금 사장님이랑 밥 먹고 있으니까 이쪽으로 우버 타고 와. 얼마 안 해.”
사실 80불이나 드는 금액이었기에 내 입장에선 얼마 안 하는 금액은 아니었으나, 빙빙 둘러가는 대중교통으로 사장님을 기다리시게 할 수는 없었다.
우버는 30분을 달려 팰리세이즈 파크 양꼬치 집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면도도 못하고 몸에선 냄새나는데다 캐리어까지 끌고 왔다. 게다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자 참석한 회식 장소가 양꼬치 집이다. 장기 팔리러 온 건 아닐까. 가게에 들어서자 한국인 직원이 한국어로 인사했으며, 난 그 안에서 두리번거렸다.
“자룡아!”
“야, 니가 자룡이구나! 반갑다.”
테이블엔 오과장님과 사장님, 그 밖에 직원들이 나를 반겼다. 다행히도 장기 팔릴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인사를 드리고 술잔을 받았고,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갔다.
“그런데 대체 저를 왜 부르신 겁니까?”
무려 1년 반 동안 궁금했었던 질문을 난 꺼냈다.
“아, 내가 TV를 봤는데 너 진짜 열심히 살더라고. 그래서 내가 오과장보고 데려오라 그랬지.”
“하하 그렇습니까.”
글쎄. 열심히 하는 것과 일 잘하는 것 사이엔 엄청난 간극이 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술은 다시 몇 순배를 더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