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Go Jony

<호주생활> Go, Jony - 스물다섯번째

Sometimes

by Jony

“내가 뭐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청소 마무리하고 전화기 들어 보고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요? 내가 오늘 로켈에게 몇 번을 전화했는 줄 알기나 해요? 예약손님은 청소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 연락은 안 오지, 막상 전화해보면 청소 끝났다고 하지, 내가 화가 안 나게 생겼어요?”

머리 끝까지 화가 난 투아가 언성을 높였다. 데스크 하나를 두고 하우스키핑 부서 총원 다섯 명은 투아의 말을 잠잠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투아. 우리가 보고를 할 때면 리셉션에서 통화 중이거나 아예 연락이 안 될 때도 있다구요.”

데비가 말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잖아요. 다음 방에 가서 전화했을 때도 그래요?”

데비는 입을 다물었다.

“오늘 방이 많았던 건 이해해요. 각 사람 당 종이 여백이 없을 정도로 꽉꽉 채워서 적어 줬으니까요. 바쁜 건 알겠어도 할 건 해야 되지 않겠어요? 내일도 퇴실 어마어마하게 나오는데 두고 볼 거에요.”

“내일도 바쁘다구? 그럼 휴무나 내야지.”

엘리시아가 중얼거리며 웃었다.

“엘리시아. 그냥 앞으로 출근 안 하는 게 어때요? 당신 아니더라도 하우스키핑 할 사람 많아요.”

투아가 엘리시아를 비꼬았다. 엘리시아의 표정이 싸늘해지며 투아를 향해 소리쳤다.

“뭐라고요!”

“엘리시아, 진정해. 투아, 아무리 우리가 잘못했다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네요.”

내가 말했다.

“아무튼 보고들 똑바로 해줘요, 알겠어요?”

엘리시아를 제외하고 모두가 투아의 말에 대답했다.

“알겠어요, 엘리시아?”

투아가 엘리시아를 향해 말했다.

“그래요, 알았어요! All good!”

엘리시아가 빽 소리쳤다.

“엄마, 그만하고 퇴근하자. 고마워요 투아.”

내가 말했다.

“고마워요 조니. 아, 그리고 조니는 잠깐 사무실로 들어와요.”

나를 제외한 모두가 린넨실로 복귀하고, 난 사무실에 들어와 서 있었다. 투아는 엑셀을 켜고 뭔가를 수정하며 나에게 말했다.

“조니……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블록(Block. 시간 내에 방을 못 끝내 내일로 미룸.)이 6개가 나오는 건 이해할 수 없는데요.

“투아, 어제는 비가 오기도 왔고, 레스토랑 치울 때 전등 스위치를 못 찾아서 시간도 더 걸렸어요.”

“어제뿐만 아니라 요즘 들어 블록 많이 보고하는 거 본인도 알고 있죠?”

“네.”

“저녁에 주방일하는거 피곤해서 그래요? 이런 식이면 회사 입장에서도 주방 근무 더 이상 줄 수 없어요.”

“진심이에요?”

“네.”

“투아, 오해가 있는 듯 한데 난 전혀 피곤하지 않아요. 난 아침 출근할 때 항상 최고의 컨디션이라고요. 그냥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거에요.”

투아는 문서작성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조니. 회사는 돈과 시간이 넘쳐나지 않아요. 일 열심히 하는 건 나도 알아요. 열심히 말고 잘해요. 알겠죠?”

“네.”

“수고했어요, 내일 봐요.”

나는 뭔가 찝찝한 마음을 안고 린넨실로 돌아왔다. 나의 직장 엄마들은 따갈로그어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이럴 땐 로즈가 필요하다.

“통역. 삑.”

나는 로즈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엘리시아가 말하길, 투아 그 년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지? 오피스에 앉아 있으니 자기가 무슨 사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군. 로켈이 말하길, 일단 진정하고 원래 투아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화가 나서 그런 것 같다 라고 달래고 있어.”

“굿 잡.”

나는 로즈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조금 기다리니 린넨실로 투아가 들어왔다.

“모두들, 아까 내가 심하게 말한 건 정말 미안해요. 나도 오늘 위에서 쪼으고 고객들이 난리치고 해서 화가 많이 났었어요. 엘리시아, 미안해요.”

투아가 사과 한 지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분위기는 급 화기애애해졌다. 화끈하게 싸우고 뒤끝 없이 푸는 게 오지인의 마인드일까?

투아가 돌아가고 나서 나는 아까 근무 문제에 관해 모두에게 털어놓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로켈이 말했다.

“조니, 요새 블록 느는 건 너뿐만이 아니야. 엘리시아도 마찬가지라구. 사무실에서는 방이 더럽던 말던 시간 안에 치우길 바라는 거고. 그냥 투아는 니가 더 잘하라고 그런 말 한 걸 거야. 긴장하라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일 가지고 날 들었다 놨다 해. 난 그게 기분 나쁘다고. 난 돈 벌려고 이 나라에 왔는데 하루 네 시간 하우스키핑만 해서는 생활비밖에 못 버는 거 알잖아.”

“걱정 마라 조니. 내가 사무실 가서 말해 볼게. 그리고 쉐프 알란도 너 없이는 주방 안 돌아가는 거 잘 아는데 뭐. 오피스에서 자른다 해도 쉐프가 먼저 막을 걸.”

“그래. 진정해 아들아.”

로즈가 내 등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래도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아들아! 너 손이 왜 그래?”

엘리시아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난 내 손을 펴서 모두에게 보여줬다. 거칠거칠한데다가 뭔가에 감염되었는지 색이 변색되었다. 모두는 깜짝 놀랐다.

“너 요새 장갑 안 끼고 일하지? 일단 약국 가서 약사한테 한 번 물어봐라. 아무래도 화학 독 오른 것 같다.”

로켈이 다그쳤다.


칼굴리 위저드 약국 안.

“저, 약사님.”

“헬로우 메이트. 무슨 일이죠?”

“제 손이…….”

“아이고……. 병원부터 가셔야겠는데? 대체 직업이 뭐요?”

약사는 표정 전체로 매우 심각하다는 걸 표현하고 있었다.

“낮에 호텔청소하고 밤에 접시 닦습니다만…….”

“장갑 안 끼고 하죠? 이거 독 올랐어요. 보아하니 외국인인 것 같은데 메디케어 있어요?”

“아니요. 그래서 병원 안 가고 약국부터 온 거에요.”

“흐음…….”

약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연고 하나를 가지고 왔다.

“하루 두 번 발라요. 이 주가 지나도 호전되지 않으면 병원 가셔야 해요. 그리고 일 할 땐 장갑 꼭 끼고 하세요!”

나는 약사에게 받은 연고를 사서 집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이럴 때 친구라도 있었다면 좋을 텐데. 연락처를 뒤져보았지만 막상 연락할 곳이 없었다. 게다가 그나마 연락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이제 내 곁에 없다.


“넌 열아홉 애기나 꼬시는 성 범죄자야.”

“그만 해.”

“변태. 쓰레기. 메롱 메롱.”

“씨발 농담도 적당히 해! 그만하라고!”

내가 소리쳤을 때 그녀는 잠시 겁에 질렸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나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됐어.”

“화 많이 났지? 미안해……”

사실 이런 적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 살면서 연애가 처음이었던 그녀는 조금 심하다 싶은 말과 행동들을 해댔고 설령 연인간이 아니라 친구간에도 지켜야 할 최소한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나로서는 그 모든 것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웃고 싸우다 화해하고 다시 웃는 날이 반복되었다. 우리의 문제는 거실 천장에 난 구멍처럼 사소해 보였는데 난 그 구멍이 거실 전체를 젖게 할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다음주까지는 우리 못 만난다고? >

<응. >

일은 어제 문자를 주고받다 터졌다. 헝그리잭스에서 일하는 그녀는 오후 네 시에 끝나는 날엔 절대 나를 보지 않았다. 그녀와의 데이트는 항상 그녀가 오후 두 시 혹은 세 시에 끝나는 날에 이루어져 오후 다섯 시에 끝났다. 저번에 집에 와 연어를 구워주기로 한 그날에도 그녀는 아이라인을 그려주고는 연어는 다음에 먹자며 집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버님이 엄한 건 이해하겠으나 나로선 못내 서운했다. 심지어 그녀는 주말에 하루 종일 시간이 비는데도 결코 나를 만나지 않았다.

<-_->

<그딴 이모티콘 쓰지 마 씨발(Fucking) 짜증나네 당분간 연락하지 마라>

나는 답장을 받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넌 왜 항상 날 이 딴 식으로 대하냐? 난 내 감정표현도 못 해? 그냥 이모티콘 하나 보낸 거 가지고 꼭 그딴 식으로 말해야 되니? 난 도저히 너 이해 못하겠다. 씨발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니 맘대로 해라. >

그리고 몇 시간 동안, 퇴근하고 나서도 그녀로부터 답이 없었다. 나는 문자로 이별통보를 보냈고, 그녀는 Okay 라는 말을 남기고 페이스북에서 날 차단했다.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빨리 끝나버린 관계에 허무함이 밀려와 군대 있을 때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연고를 사 들고 어제의 이별을 생각하며 터벅터벅 걸었다. 차가워진 바람이 옷깃 사이로 파고들었다.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웨인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날 보며 말했다.

“조니, 니가 빨래 중앙에다 걸어놨냐?”

“응. 그런데?”

“넌 이게 무슨 표시인지 모르냐?”

웨인은 어제 하루 종일 알록달록한 빨랫줄을 새로 만들어놓았는데, 사람 지나다니는 통로엔 빨간색과 흰색으로 교차된 작업장 테이프를 붙여놓았었다. 난 작업하다 중단한 줄 알고 빨래를 그 테이프 위에 널어두었던 것이다.

“너 같으면 젖은 빨래 사이로 지나다니고 싶겠냐? 대체 머리는 뒀다 뭐하는 거야?”

웨인은 그 테이프를 내가 보는 앞에서 북북 뜯어버렸다.

“웨인, 미안해.”

“이런 씨발!”

그는 Fuck 을 연발해대며 뒷마당으로 사라졌다. 마누라랑 싸웠나 보다. 나는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불 꺼진 방 안 침대 위에 앉아있으니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너무 좋아서 돌아가기 싫었던 호주가 갑자기 낯설어졌다. 가족들이 보고 싶었고, 친구들이 그리웠다. 난 휴대폰을 켜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을 틀었다.

멜로디가 흘러나와 내 맘 언저리를 눌렀고,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샘은 내 눈을 타고 흘렀다.


만약이라는 두 글자가

오늘 내 맘을 무너뜨렸어

어쩜 우린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어

그렇지 않니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우습지만 예전엔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도 많이 하게 돼

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냐

수없이 많은 나날들 속을

반짝이고 있어 항상 고마웠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겠지만

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었어

마음 둘 곳이라곤 없는 이 세상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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