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미술관을 나온 우린 일정에도 없는 저녁을 같이 했다. 첼시마켓 한 레스토랑에서 연어와 닭고기에 맥주까지 먹고, 동전까지 털어가며 15%팁을 맞췄다. 저녁의 맨해튼 거리는 약간 쌀쌀했다.
“뉴욕 거리를 동창이랑 같이 걸으니깐 어때?”
내가 물었다.
“야. 생각도 못 했어. 일은 할 만해?”
“그냥 일이지 뭐. 인턴일이란 게 특별하지도 않고.”
“그래도 특별한 경험 아니야? 남들은 이런 경험 하고 싶어도 못 하지.”
“그렇긴 해.”
우린 지하철 쪽으로 걸었다. B는 엄마에게 메시지 보내는 중이었다.
“엄마한테 너 만났다고 얘기했어. 너 뉴욕에서 일한다고.”
“뭐라셔?”
B는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어머님은 벌써 만나뵌 지 십 년도 더 넘은 나를 기억하시는지
<자룡이가?ㅎㅎ>
라고 답장하셨다.
“아직도 기억해주시네.”
“당연하지. 우리 엄마 머리하러 갈 땐 꼭 너희 미용실 가서 했어.”
“시집가란 말씀 안 하셔?”
“시집? 너한테? 우리 엄마는 서른 전까진 시집가지 말래.”
“흐음 그래? 우리 주위엔 하나 둘 소식 들리지 않나? 일찍 간 애들은 일찍 갔잖아.”
“음… 그렇지. 걔 알아? 초등학교동창 S. 걔도 스물하나에 갔고, 왜 그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반장했던 애 있잖아.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걔도 얼마전에 갔어.”
“걔가?”
“응. 남친하고 연애하다 돈 쓰는게 싫어서 그냥 결혼했대.”
“확실히 돈은 아끼겠네.”
우리 옆 대로로 차들은 바쁘게 어디론가 달려갔고 사람들은 웃으며 거리를 지나갔다. 한쪽에선 흑인 남성이 장미를 바구니에 담아 팔며 소리쳤다.
“장미 한 송이에 2달러입니다. 당신의 로맨스를 보여주세요.”
우린 여러가지 배경이 함께 공존하는 뉴욕의 밤거리를 함께 걸었다. 별로 크지 않은 시골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우린 서너번 같은 반으로 지냈고, 둘 다 주위 아이들보다 조숙했던 탓에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같은 교회를 다녔고, 비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며 집까지 바래주다가 친구들한테 들켜 놀림받았고, 키우던 다람쥐를 뒷산에 풀어주러가는 골목길을 함께 걸었다. 학원 옆 B의 집에 혹시 B가 있을까 싶어 돌담을 폴짝폴짝 뛰었던 기억, 고집 셌던 B가 선생님한테 대들며 펑펑 울던 걸 바라봤던 기억, 내가 인사도 못하고 읍내로 전학가버린 후 고등학교 동창으로 다시 만났던 기억, 고등학교 때 서로의 첫사랑들과 함께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가다 넷이 마주치고 웃으며 인사했던 기억……. 우린 생각보다 많은 서로의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었고 어느새 취직과 결혼을 생각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지하철역이 다가왔다.
“이제 동창회때 보나?”
내가 물었다.
“동창회? 가긴 가야지. 뭐……. 그때 보겠지?”
역으로 들어가는 계단 앞에서 우린 발걸음을 멈췄다. 예쁘장했던 여덟 살 소녀는 갈색 롱코트가 잘 어울리는 숙녀가 되어 있었다.
“오늘 재밌었어?”
난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완전. 최고였어.”
B는 내 손을 살짝 잡았다.
우린 서로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