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턴> NJ Transit 165 - 일곱번째

직장

by Jony

2월 1일 목요일.


아침 일곱시에 대문 밖을 나서니 밤새 눈이 왔었다. 어른이 되면서 아이들과는 다른 눈(eye)으로 눈(snow)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들었던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뉴저지 공무원들이 새벽부터 도로 치우느라 힘들었겠구나.

2. 오늘 차가 많이 밀리진 않을까. 사고가 많이 날 것 같은데.

3. 신발이 젖는 게 너무 싫다.


더이상 눈사람이고 나발이고 그런 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난 나란 사람이 언제부터 이렇게 염세적으로 변해버렸나 생각해보았으나 그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안다는 게 더 이상하다 생각했다. 딱 열여덟이 되는 해 부터였다던가, 대학을 자퇴한 이후라던가 이런 식으로 떠오르는 게 훨씬 비정상적이었다. 그러니까, 난 점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도 난 한 때 산타를 기다리며 조립식 인조 트리에 양말을 걸어놓기도 했었는데. 양말이 너무 작아서 내 선물도 작지 않을까, 우리 집엔 굴뚝이 없는데 산타가 어떻게 들어올까, 산타를 도둑으로 오인한 베테랑 동네 경찰인 아빠가 그를 체포하면 뉴스에 나올까 등등의 상상을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난 염세적인 어른이 되어, 돈을 벌기 위해 출근하고 있었다.



오과장님은 그동안 나에게 여러 가지 숙제를 내주었다. 간단한 엑셀 시험부터 시작해서 아마존에 현재 판매하고 있는 제품 리스트와 유입 키워드를 파악한 파일을 만들라던지, 영어로 제품 홍보 카피를 써보라던지의 일들 말이다. 확실한 건, 내가 영어테스트를 치른 이후에 창고에서 일하는 시간이 훨씬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만."

과장님은 내 카피를 쭉 보더니 중단 지시를 내렸다.

"영 못 쓴 것 같은데요."

"당연히 다시 써야지. 이거 읽어봐."

"예? 아 네. 디스 프로덕트 이스 데피네틀리 왓 츄 원트. 잇츠 쏘 어도러블 앤. . ."

"반기문이세요?"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반기문은 좀 심하다 싶었다.

"자룡아. 영어공부 열심히 하자."

그 사건 이후로 난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매우 줄었다. 사실 나로썬 훨씬 좋은 일이기도 했는데, 웨어하우스에서 땀 뻘뻘 흘리며 큰 박스 50여개에 담을 과자선물세트 300여개를 만드는 건, 어쨌거나 내가 잘하는 일이었다. 난 적성인가 싶을 정도로 일을 빨리 했고, 무거운 팔레트도 번쩍 들고 다닐 체력도 되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의 상황을 일년 반 전에 호주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면, 난 애써 돈 모아 마련한 중고차를 팔지도 않고 호주 어느 주방에서 셰프는 못 되도 쿡 정도는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과자만 파는 게 아니라 별의별걸 다 팔았는데, 심지어 어린이용 자세 교정 의자까지 팔았다. 이건 총 여덟 개의 색깔로 다양하게 제작되었고 웨어하우스 안엔 그 수많은 재고가 분류되지 않고 쌓여있어서 하루는 그것 정리하는데만 여섯시간을 쏟아야 했었다.

"안드레. 한 달에 한 번은 이런 작업 해요?"

내가 물었다.

"그렇진 않지. 원래 오면 색깔별로 정리해야되는데 그냥 내버려두니까 이런 일을 해야 되는거야. 휘유우."

그는 양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며 혀를 내둘렀다.


회사 웨어하우스


물론 이런 작업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며, 신입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굉장히 제한적인것도 사실이다. 나로서는 제품이 어떻게 기획되고, 제작되고, 판매되는지의 전 과정에 일부로 참여하는 것이고, 그런 시스템을 경험해보는 건 매우 큰 경험이다. 모든 회사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니까. 그 세부적인 사항은 각각 차이가 있어도, "제품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번다"라는 대전제에서 벗어나는 회사는 없다. 나도 직급이 어느 정도 되면 영업이라던지, 개발이라던지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책임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턴으로서 그 전 과정을 맛보기로 보게 되자, 평생 이 일을 즐기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퇴근길에 맥주 정도를 사고 싶어 집 앞 델리(Deli. 동네 슈퍼라고 생각하면 편하다.)에 들렀으나, 술은 팔지 않아 걸어 10분 정도 거리의 델리로 갔다. 한국에서 파는 큰 캔보다 더 커보이는 맥주캔들만 낱개로 팔고, 작은 캔은 여섯 개 번들로밖에 팔지 않았다. 두고두고 먹어야겠다고 생각해 여섯 개 번들 버드와이저를 골랐다.

"헤이. 이 동네 처음이죠? 플라스틱백(비닐봉지)?"

"하나 주세요."

주인이 인사했다. 아랍계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요 근처 살아요?"

"저기 다리 건너요. 우리 집 앞 델리엔 술을 안 팔더라구요."

"아, 그럼 자주 보겠네. 우리 배달도 해요. 난 패트릭. 이건 내 명함이고, 7달러 이상 사면 무료로 배달해줍니다."

그는 내게 명함을 건넸다. 델리 안엔 손님이라곤 나밖에 없었다. 나는 건네받아 지갑 안에 넣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소?"

그가 물었다.

"음. . . 힘들었어요. 내 상사가 내 영어실력이 Suck이라고 하더라고."

"아 무슨 말을. 말 잘하는데 뭐. 공부 좀 더 하면 될거요. 이 나라 살려면 공부 많이 해야지."

"그래 그럼 담에 봐요."

"굿나잇 브라더. 내일 봐요."


난 맥주에 감자칩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아직 녹지 않은 보도를 털레털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