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nx Zoo
2월 3일 토요일
"브라더! 헤헤. 처음 보는 얼굴이네. 이 동네는 왠일이야. 햄버거 먹으려구?주디. 새로운 손님이네? 감자튀김 하나만 줘."
"알. 손님 괴롭히지 말아요. 감자튀김만?포장이에요 아님 먹고 갈 거에요?"
"여기서 먹고 가야지. 자기 얼굴도 보고말이야."
주디라는 이름을 가진듯한 점원은 그를 보며 고개를 젓더니 주방 안으로 들어가 감자튀김을 내왔다. 알이라 불리는 누추한 백인 사내는 가게 구석에 앉아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노래인지, 무슨 언어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뉴욕 지하철을 타고 거리를 걸으며 그동안 느껴온 것 중 하나는, 이 도시엔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더블 치즈 햄버거 세트 나왔어요"
주디는 다 쓰지도 못할 것 같아보이는 많은 양의 냅킨을 종이백에 담았다. 감자튀김 맨은 아주 열창을 하고 있었다.
"이 동네는 말 많은 사람들이 많네요."
내가 말했다.
"특히 그렇죠. 브롱스는."
브롱스(Bronx)에 대해선 많이 아는 바가 없다. 기껏해야 알 파치노가 나고 자란 곳이며 그리 잘 사는 동네는 아니라는 것 정도다. <대부 1> 에서 마이클 꼴레오네 역의 알 파치노는 브롱스의 루이스 레스토랑에서 첫 살인을 하고 시실리로 도망친다. 후에 숙청되는 살 테시오는 마이클과의 식사에서 루이스 레스토랑에 대해 "음식도 맛있고, 모두가 남의 일에 관심 없어하는 곳" 이라 평했다. 그러나 처음 브롱스에서 마주친 생면부지의 사람은 남의 일에 참 관심 많은 사람이었다.
오늘 난 동물원을 가기 위해 브롱스로 왔다. 브롱스 동물원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동물원이다. 주로 멸종위기의 동물들에 많은 애정을 가지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입구를 찾지 못해 한참을 걸어 정문을 발견했다. 겨울의 동물원 정문은 사람도 없어서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성인 한 명이요. 자유이용권으로 주세요."
"학생증 있어요?"
"음. . . 학생이긴 한데 없네요."
"그럼 29불이에요."
"학생이면 얼만데요?"
"학생이면 자유이용권은 6불이에요. 수요일은 학생이든 아니든 무료에요."
난 어쩔 수 없이 맛있는 점심값을 포기하고 동물원으로 들어섰다. 수요일은 직장에 가야 되니 올 수도 없었다.
워낙 넒어서 어디부터 가야될지 몰랐으므로,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기로 했다. 한참을 걸으며 난 자유이용권 산 것이 배아플 정도로 후회되는 일이란 걸 깨달았는데, 대부분의 동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물들이 있어야 할 곳엔 서리 내린 넒은 공터만 덜렁 있었다. 안내판엔 나같은 사람을 위해 친절하게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동물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따뜻한 곳에 사는 어떤 동물들은 추위에 매우 약해요. 이 동물들은 봄이 될 때까진 실내 우리에서 쉬고 있지요. 우리 봄에 다시 만나요!"
즉, 날씨가 따뜻해지는 4월까진 동물들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동물원의 황제인 사자도, 코끼리도 볼 수 없었다.
줄 선 사람들로 가득해야 할 4D영화관에는 아무도 대기하고 있지 않았는데, 흑인 남성 직원 한 명만 심심했는지 어딘가로 통화중이었다. 내가 줄을 서자 그는 전화를 끊었다.
"오 분만 기다리세요."
나는 삼 분 가량을 그와 어색하게 서 있었다.
"사람이 없네요. 동물도 없고."
내가 물었다.
"겨울이니까요. 봄이 되면 많이 와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길도 못 걸어다녀요."
"그러니까, 직원들한테는 이 시즌이 휴가철이네요."
"그렇죠. 맨날 이렇게 서 있죠. 지루하고."
나는 그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 혼자 극장을 차지하고 야생의 미어캣이 코브라에게서 도망치는 내용의 짦은 영화를 관람했다. 그 이후 다시 "동물이 없는" 동물원을 한참 걸었다. 한 인도인 가족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여기로 가면 동물이 있나요?"
"아빠! 동물들 어디갔어?"
딸 아이는 매우 실망한 듯 보였다.
"음. . . 없더라구요. 저기 4D영화관은 운영하더라구요."
그들은 감사를 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다행히 자유이용권을 산 게 후회스럽기만한 일은 아니었는데, 안 샀으면 입장권을 따로 샀어야 하는 곳 몇몇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실내 시설들인 이 곳에서나마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고릴라를 보기 위해 들어갔다. 실내 강화유리 안 우리에선 고릴라들이 살고 있었는데, 새끼들은 서로 장난친다고 바빴고, 엄마고릴라는 나무 위에서 점심식사 중이었으며(입에서 샌 풀이 바닥으로 비오듯 떨어졌다), 아빠고릴라는 구석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난 아빠고릴라가 가장이라는 중압감과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진 않을까 생각했다.
그 외에도 실내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몇몇 있었다. 기린 우리에선 우리를 위해서인지 기린을 위해서인지 벽에 초원을 그려놓았고, 기린은 관광객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걸으니 겨울 온도에 민감하지 않은 동물들도 볼 수 있었다.
그나마 가장 볼 만 했던 건 3시에 열린 바다사자 쇼였다. 이들은 훈련이 아주 잘 되어 있었는데, 사육사들의 손짓에 맞추어 춤을 추거나, 꼬리를 흔들거나, 점프하기도 했다.
난 쇼를 보며, 동물이나 인간이나 먹고 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