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이 더 아름답다.
부산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성지곡수원지는 원래 부산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그 후 낙동강 상수도 공사가 완공되어 식수원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하였지만, 현제는 부산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가까이에 위치한 부산 시민공원은 원래는 미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던 공간인데, 지금은 축구장 8배 크기의 공간에 각종 식물과 휴식공간을 만들어 성지곡수원지와 맞물려 도시의 허파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공간에 들어서면 매연가스로 얼룩진 시내에서 녹색공간에 둘러싸여서, 부산이라는 도시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성지곡에 들어서면 주위에 아주 오래된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어, 피톤치드로 가득 찬 숲 속에서 편안한 느낌을 안겨준다. 호수가 보이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마치 깊은 산중에 들어서 있는 느낌을 받게 하여, 이곳이 부산시내 중앙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잊게 만든다.
해발 642m 백양산자락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 건너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있건 말건 이곳은 정말로 고요하다.
둘레길을 계속 걷다 보면, 한 중간쯤에 호국광장이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사명대사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임진왜란시에 조선을 지킨 영웅으로 이순신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사명대사가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는 아마도 모르는 분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임진왜란은 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히데요시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부산에서 시작된 조선의 전쟁이다. 상주 충주를 거쳐서 수도 한성까지 함락하는데 약 20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그냥 올라왔다는 말이 어울릴 법하다.
선조는 북서쪽의 의주로 피난하였다. 전쟁은 속전속결로 끝나는가 하였지만 다행히도 이순신장군이 해전에서 승리하면서,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게 되었다.
또한 조선의 관군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못한 백성들이 의병을 조직하였고, 이때 출가한 스님들도 전쟁에 참여하여 승병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에 승병장으로서 사명대사는 일본군과 싸우는 역할도 하게 된다.
잠깐 물러났던 왜군은 1597년 조선을 재침략하게 되는데(정유재란), 이때에 이순신장군이 다시 울돌묵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전쟁의 종결은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과 함께 정권이 무너지고, 도쿠가와 이에아스로 정권이 넘어가면서 자연히 마무리되는 듯싶다.
일본은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사신파견을 요청하였지만 아무도 가려고 하는 신하가 없었다. 아마도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이에 선조는 강원도에 있던 유정(사명대사)을 불러 일본으로 가게 하였다.
이에 일본으로 건너간 유정은 1604년 도쿠가와 이에아스와 협상을 벌여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된다. 이협상은 후에 조선통신사로 이어지게 되며, 협상을 마치고 돌아올 때 그는 전쟁당시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약 3500명 데리고 돌아왔다.
선조는 감격하여 그에게 매우 큰 상을 내리게 된다.
일본과의 해상전투 영웅으로서 이순신 장군은 누구나 잘 알고 칭송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대 동일한 전투에 참가한 우리의 이름 없는 영웅들, 의병들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또한 신체에 대한 아무런 담보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사명대사의 삶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협상이란 원래 서로 오고 가는 것이 있는데, 빈손으로 건너간 그가 어떻게 아무런 반대급부도 없이 조선인 포로 3500명을 데려 올 수 있었을까. 수많은 그에 관한 설화가 있지만, 어쨌든 그는 보통 사람들의 경계를 뛰어넘는 존경하여야 할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이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