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원과 서태후

중국의 3대 악녀 서태후

by 바른

이화원과 서태후

그동안 내리던 비도 그치고, 오늘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이화원을 보러 가는 날이다.

북경 북서쪽에 위치한 이화원은 넓이가 매우 크고 아름다운 인공호수이다.

이화원의 기원은 약 1100년경 금나라 시대에 조그만 천연호수에서 시작되어, 그 후에 여러 차례 넓히고 넓히면서 대략 현제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왔다고 한다.

청나라 시대의 마지막 황후인 서태후가 아편전쟁으로 파괴된 건물들을 재건하고 아름답게 치장하면서, 현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고,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이화원은 이미 명나라시대부터 황실의 별장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유독 서태후의 별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태후의 손이 가장 많이 간 건축물이라고 평가되기 때문일까.

아마도 서태후는 이화원을 가장 사랑하였던 인물로 생각되나, 후대의 평가는 세기말의 악녀로, 그녀의 사치가 극에 달해 청나라를 망하게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다시는 나처럼 여인이 정사에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이는 서태후가 사망 직전 남긴 마지막 유언으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솔직한 말이다.


이화원 입구 인수전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서태후의 입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구에는 청동으로 제작된 용 과 봉황이 있었다. 용은 제왕을 상징하므로 정 중앙에 놓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황후를 상징하는 봉황이 용을 옆으로 밀어내고 중앙을 차지하고 있으니, 서태후 본인이 최고 권력임을 암시하는 모습이다.

건물을 몇 개 지나고, 광서제를 연금해 놓았었다는 건물을 지나면, 눈앞이 확 트이는 넓은 호수를 만나게 된다. 호수 옆에는 길이 약 730m 정도가 된다는 장량(긴 복도)이 있다. 지붕이 있고 지붕 약간 아래쪽의 좌우에는 온갖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중국 최대의 야외 미술관으로 불린다. 바닥 아래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 불을 지필 수 있게 해 놓았다.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갔다가 오면 많은 운동이 되리라 생각된다. 아마도 체력 단련장 역할도 하였으리라 추측된다.


당시 청나라는 서구열강과의 전쟁으로 인해 민생의 삶은 피폐한 가운데, 서태후는 나라의 힘을 이화원 복구에만 전념했다. 해군 국방비를 도용하여 무너진 이화원 건축물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함풍제의 후궁으로 궁에 들어와서 함풍제가 병으로 일찍 죽게 되었다.

그의 아들 동치제가 6세의 어린 나이에 왕에 오르자 이때부터 섭정통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동치제가 성장하여 세상을 조금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을 때 동치제는 주색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를 알면서도 오히려 모르는 척 허용을 하여 준다. 동치제는 기생집을 돌아다니다가 성병을 얻어 죽게 되었다고 한다.

서태후의 권력에 대한 욕심은, 본인 아들의 권력마저 빼앗기 위해 아들의 목숨을 방기 하는 대단한 악녀라는 호칭이 맞을 것 같다.

동치제가 임종에 들 때 이미 서태후의 마음속에는 조카 광서제를 왕위에 앉힐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광서제의 나이 4세이니 서태후의 섭정은 계속되었다.

왕의 권력을 두고 형제끼리의 싸움은 보아 왔어도, 어머니와 아들의 싸움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아들이 빨리 죽도록 방치하는 그 마음은 어디로부터 오는지 신기하다.


광서제를 돌보는 패륜모의 극악은 절정에 달하였다.

식사 시에 한 끼에 128가지나 되는 음식을 먹었고, 절대 같은 음식을 3번 이상 먹지 않고, 지방으로 출장을 갈 때에는 열차 16칸 중 4칸이 주방이었고, 그녀를 위한 수행 요리사가 50-100명 정도는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한 끼 식사비는 당시 돈으로 환산하면 100냥이었으며, 이는 당시 중국 농민의 약 1년 치 식비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농민 천여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수준이며, 이를 현대의 물가로 환산하면 2000년 전후의 한국을 기준으로 약 8천만 원 정도다.


옷이 무려 3천여 벌이나 되었고 옷을 담는 상자가 700개를 넘는 수준이었다. 옷은 물론 버선과 신발에도 굉장히 신경을 써서 서태후의 옷, 버선과 신발을 만드는 데만 매년 3천 명가량이 동원되었고, 그 비용은 매년 1만 냥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새똥으로 만든 옥용산 이란 화장품으로 늘 세안을 하고 꽃과 약재로 목욕을 했으며, 심지어 피부 미용을 위해 진주를 갈아먹고 건강하고 젊은 산모를 불러다가 모유를 먹었다고 한다. 또한 환관을 거리에 보내 가장 인기 있는 헤어스타일을 보게 한 후 매일 색다른 헤어스타일로 치장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제 이화원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며 중국의 재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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