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몰아친 폭우의 영향인지 숲 속의 잔 나뭇가지들이 축 늘어져 있다. 이른 새벽의 물안개가 뿌옇게 피어오르면 숲 속 나뭇잎들은 영롱한 물방울로 휩싸여, 반짝이는 수천 개의 흰 구슬로 변화하며 춤을 추게 된다.
새벽 공양을 위해 사찰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아침 물안개와 어우러져 사찰 전체를 감싸고 오르면, 저곳이 바로 천상의 풍경인 듯하다.
간밤에는 모든 속세의 걱정을 뒤로하고 깊은 휴식 같은 숙면을 이루었다.
어제 말없이 집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왔다. 집으로부터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떠나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여기에서 숨을 쉬고 있으니 자아탈출의 욕구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지금 몸은 탈출하여 있으니 반쯤은 성공하였지만, 집에 두고 온 인연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린다.
문득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의 보호아래 있으면서, 그분의 속을 썩여드렸던 기억들이 지금 바로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런 죄송하였던 기억들은 시간이 흐르면 엷어질 줄 알았건만, 점점 더 뚜렷한 무게감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의식에 자리 잡은 인연의 굴레, 생명의 인연의 끈은 너무도 질기기에 아무도 함부로 잘나 내기 어렵다고 한다.
사람이 목숨이 끝나게 되면 천당이나 지옥으로 가기 전에, 필히 들려야 하는 곳이 있는데 천주교에서는 이를 연옥이라고 부른다.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하지만, 그곳과 이곳의 세상은 시간의 흐름이 다름으로 얼마나 머무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지은 죄의 경중에 따라 머무는 시간이 다르다고 한다. 어쨌든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그를 위하여 기도를 바치면 죄의 무게가 가벼워진다고 한다. 천주교에서는 이를 가뭄 속에서 단비를 만나는 상황이라고 이야기한다. 만약 더욱 열심히 기도해 주면 그 이에게도 천국의 문이 열린다고 한다.
천주교에서는 전대사라고 하여 그동안 살아오면서 이 세상에서 지은 죄를 전대사의 특정 의식을 통하여 면죄하여 주게 된다. 전대사 기간 동안 특별한 절차를 거쳐, 어떤 한 사람을 마음속으로 지정하여 그분을 위하여 기도드리면, 만약 그분이 연옥에 있다면 연옥생활을 면하여 주게 된다고 하였다.
마침 성지순례 도중에 전대사의 은총이 주어지는 기간이라고 하였다.
나는 어머님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먼저 고해소에 들어가 그동안 어머님께 잘못하였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꺼내려고 하니, 과거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눈물은 성당에서 미사를 하는 내내 눈앞을 가려 미사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원래 모진 놈이어서 어머님 장례식 날에도 눈물 없이 지낸 놈이었다.
지금 몇 년 흐른 뒤에, 왜 하필 지금 눈물이 이렇게 많이 흐른단 말인가.
이제야 비로소 인간이 되었나.
어머님을 위한 눈물의 미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마음의 짐을 약간 덜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없다고 한다. 아니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파묻혀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 누구에게나 어머니라는 단어가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무의식 속의 기억이 비로소 외부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