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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월리 May 14. 2018

만나면 좋은 친구 MBC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니 좋지 아니한가? - MBC 필기시험 리뷰


 

지난 3월 18일, 나는 MBC 공개채용 필기시험을 치렀다. 그 날 시험장소였던 건대엔 나처럼 긴장감에 경직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넘실댔다. 보통 언론사 필기시험은 대학교에서 치지 않는다. 그런데 대학교 중에서도 건국대를 선택한 MBC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MBC 공채는 무려 2013년 이후 5년 만에 이뤄지는 채용이었다. 5년의 공백은 그동안 MBC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해준다. 나 역시 시청자로서, 미래 언론인으로서 그들을 응원했다. 돌아온 MBC는 우리의 응원에 화답하듯 2018년 신년 간담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5월이면 MBC의 새싹들이 들어오게 될 것.
신년 간담회를 진행하는 최승호 MBC 신임사장  ⓒ매일경제



MBC의 첫 관문, 자소서

MBC의 새싹이 되고 싶은 우리는 5년 만에 돌아온 MBC가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언시생의 입장에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정보력이다. 그도 그럴 것이 5년 전에나 있었던 MBC 공채를 겪어본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정보전에 난항을 겪던 그때, MBC의 채용공고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 블라인드 채용. 채용비리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드러나는 요즘, 면접관의 주관성은 확실히 배제하겠다는 MBC의 뜻이 돋보인 채용방법이었다.

 

당시 MBC의 질문은 아래와 같았고, 언시생들 사이에서 확실히 호불호가 갈렸다. 나는 일단 호.


-해당 분야에 지원 동기 및 MBC에서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MBC 프로그램 중 당신에게 최고의 프로그램과 최악의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당신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는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MBC 콘텐츠 제외)

-3번 답변에서 콘텐츠를 접하는 경로(TV, 스마트폰, PC 등)는 무엇이며, 그 경로를 이용하는 이유는?

-당신이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았거나 타인에게 도움을 준 경험에 대해 기술해 주세요.

-당신이 생각하는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MBC에게 하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을 선정한 이유는?


내가 느끼기엔 MBC와 함께 자라온 20, 30대 청년들이 MBC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무얼 원하는지를 궁금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답변을 모아서 빅데이터 분석이라도 하려는 거 아냐?”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자신들의 회사에 충성할 사람을 가려내는 질문에 지쳐 있던 나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자소서였다.

 


사상 최대 인원, 필기시험

자소서 제출 후 언시생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당연 필기시험이었다. 어떤 주제가 나올지부터 시작해서 객관식이냐 주관식이냐(객관식이라고 물론 알려줬다)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물론 누구 하나 시험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아는 이는 없었다. 할 수 없다, 직접 시험을 쳐보는 수밖에!

 

나는 예능 PD 직군으로 지원했는데, 지원자만 1300여 명이었다. 내가 아는 한 사상 최대다. 400명 정도가 지원했던 KBS 때와 비교해봐도 엄청난 인원이다. 시험은 아침 9시부터 약 12시 30분까지 이어졌다. 나는 공학관에서 시험을 치렀다. 1교시가 작문, 2교시가 시사상식이었다. 각각 70분, 8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작문의 주제는 ‘나만 알고 있는 유일무이한 생각’이었다. 무한도전 <면접의 신> 특집을 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나는 그때 그 질문을 조리 있게 대답하는 양세형의 모습을 보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말도 안 되던 생각이 무엇이 있었나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또 마침 며칠 전 들은 작문 강의에서 나왔던 책의 예시가 적절할 것 같아 그 두 개를 버무려서 썼다. (작문 복기는 따로 올릴 것이다)


언제나 PD 시험에서는 작문이 중요하다지만, 이번 MBC 시험의 하이라이트는 단언컨대 시사상식 시험이었다. 5지선다형 100문제로, 출제 분야는 국어, 역사, 철학, 방송학, 영어, 예술, 스포츠 등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했다. 특히나 국어문제는 수능 문제 같아서 생소하게 느껴졌다. 80분 안에 100문제를 정신없이 풀어 내려갔다. ‘철학 공부 좀 열심히 해둘걸…’과 ‘나 사학과 맞나?’라는 생각이 문제를 푸는 내내 들었다. 결코 후련하지 못한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쾌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나처럼 황폐해진 머릿속을 헤집어 꾸역꾸역 전투를 치르고 나왔을 사람들과의 내적 전우애 때문이다.



반가웠어요, MBC

우리 교실에는 MBC의 PD로 추정되는 두 분의 감독관이 들어왔다. 그분들은 최소 5년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이 MBC에 입사하기 위해 강의실을 꽉꽉 들어 채워 앉아있는 광경을 보지 못 했을 것이다. 오히려 시험에 있어선 우리가 베테랑이었다. 그들은 나의 손 때문에 감독관 사인을 할 타이밍을 못 찾아 옆에서 쭈뼛거리며 서있기도 하고, 앞사람에게만 나눠주면 될 시험지를 한참을 직접 돌아다니며 배부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수험생의 한 마디에 깜짝 놀라 시험지를 놓치기도 했다. 확실히 그들의 몸짓은 어딘가 어색했다.


그런데 감독관들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기뻐 보였다. 그리고 약간은 들떠보였다. 한 장씩 시험지를 세면서, 그걸 일일이 좁은 책상 틈을 비집고 다니며 나눠주면서, 시험을 칠 때 주의사항을 말하면서 행여나 수험생들이 하나의 정보라도 놓칠까 싶어 꼭꼭 되새겨 짚어주었다. 시험지가 걷히길 기다리는 동안 앞사람에게 나지막이 “시험 어땠어요, 어려웠어요?”라고 묻는 말에서도 새로운 MBC의 새싹을, 그들과 함께 시작할 MBC의 봄을 고대하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시험에 붙을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이번 MBC 시험은 참으로 오랜만에 수험생으로서 배려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마침내 “귀하는 좋은 역량을 지니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상투적인 문자를 받더라도, 괜찮다!

대신, 만나면 좋은 친구 MBC! 이렇게라도 만나니 좋잖아요. 좀 자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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