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불청객
우리 집은 관악산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지하철 역에서 족히 20분은 낑낑대며 올라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이 좋은 건 창문만 열면 사계절 내내 색과 향을 달리하는 숲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숲으로부터 불편한 손님이 찾아왔다.
그것은 추운 어느 겨울날 우리 가족에게 발견되었다. 구구 거리는 소리에 커튼을 젖혀보니, 한 마리의 비둘기였다. 그것은 이미 에어컨 실외기 옆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손을 휘휘 내젓기도 하고, 소리를 내며 쫓아내려고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잠시 날아가는 듯하다 가도 이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파트 5층 베란다 한편에 어울리지 않게도 비둘기가 살게 됐다. 그것은 마치 이에 낀 이물질처럼 그곳에 꽉 끼어서 우리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카페의 불청객
시간이 지나 봄이 되었다. 나는 카페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잘못 날아 들어온 비둘기 한 마리를 보았다. 불룩한 배, 거침없는 발걸음, 오래돼 보이는 중절모를 쓴 한 할아버지가 카페의 문을 벌컥 열었다. 그가 성큼 카페의 문턱을 넘던 그 순간, 잔잔하던 카페에는 전에 없던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거침없는 그의 발걸음은 단번에 픽업대로 향했다. “커피 하나.” 투박하다면 투박했고, 순수하다면 순수했던 그 한 마디는 카페 직원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주문은 계산대에서 하라는 말을 듣고서야 할아버지는 제자리를 찾아갔다. 계산대 앞에 선 그는 마치 취조를 당하는 모양새다. 직원은 무슨 커피를, 어떤 사이즈로, 또 어떤 잔에 먹을 건지 조목조목 할아버지를 추궁했다.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반복하니 할아버지는 좀처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시간 동안 할아버지의 뒤엔 손님들이 줄을 섰다. 커피를 받은 할아버지는 이번엔 설탕을 찾아 헤맸다. 난감한 표정의 그는 직원 쪽을 힐끗 본다. 그녀는 밀린 주문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설탕을 어떻게 넣느냐고 물어봐도 돌아오는 건 “뚜껑을 열고 넣으시라”는 들으나마나 한 대답이었다.
할아버지와 비둘기
직원의 입장에서, 아니 카페의 입장에서 그 할아버지는 불쑥 날아 들어온 비둘기와도 같았다. 프랜차이즈 카페 매뉴얼엔 없던 할아버지의 등장. 그 순간 그곳의 모든 질서가 어그러졌다. 생소한 영어 메뉴, 눈에 띄지 않는 글씨, 불친절하게 진열된 서비스 바, 그 모든 것은 할아버지를 어서 내쫓으려 휘젓는 카페의 손짓처럼 보였다. 할아버지 뒤로 늘어선 손님 행렬을 보며 내쉰 직원의 한숨은 그를 내쫓기 위한 소리처럼 들렸다.
설탕을 찾아 헤매던 할아버지를 보다 못한 청년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나지막히 고맙단 인사를 하고 돌아선 그는 그제서야 카페 한편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의 커피엔 설탕이 잔뜩 들어갔지만, 그 어떤 커피보다 씁쓸했을 듯싶다. 숲을 인간에게 빼앗기고 되려 불청객이 되어버린 비둘기. 그것이 느꼈던 당혹감을, 그 날 카페로 날아 들어온 할아버지도 고스란히 느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