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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월리 May 14. 2018

공무원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 운(?)

공무원 추첨제를 제안합니다


<고금록>은 1284년, <제왕운기>는 1287년에 편찬되었다 ⓒ경향신문

고려시대 때 3년 차로 발간된 두 권의 책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아는 것은 공무원의 조건이 될 수 있을까? <고금록>과 <제왕운기>의 편찬시기를 시간순으로 하라 했던 이 문제는 얼마 전 있었던 7급 지방직 공무원의 한국사 문제였다. 매년 높아지는 난이도와 지엽적인 출제범위를 놓고 공시생들의 분노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경쟁률이 40:1을 넘기 때문이다. 문제 출제를 담당하는 인사혁신처는 “수험생 출신의 출제 검토위원을 둬 지엽적인 문제를 거르겠다”고 했지만 높은 경쟁률 속에서 시험이 변별력을 가지기 위해서 저런 문제는 다시 나올 것이다.



여기서 찜찜한 뒷맛이 남는다. 저런 문제를 맞춰 합격한 사람들은 시험장에 들어오기 전에 우연히 저 부분이 눈에 띄었거나, 찍어서 답을 맞춘 것뿐이다. 과연 그 날 저 문제로 당락이 갈린 사람들 중에 덜 똑똑하고, 덜 열심히 한 사람이 있었을까. 다만, 저 문제를 틀린 사람은 운이 없었던 거다. ‘운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 실력을 위해서 뭘 해야 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매일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는 공시생들의 힘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포기한 적 없어 응원은 바라지지도 않아 비웃지만 마!!'라는 한정오 ⓒtvN

tvN 드라마 <라이브>에서 기업 입사에 실패한 한정오(정유미 분)는 경찰 ‘공시생’을 택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가 2000만원을 요구한다. 공무원 시험 준비기간을 2년으로 잡았을 때 들어갈 돈이다. 돈 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20대 청춘을 포기하고 기숙학원에서 공부만 한다. 친구도, 연애도 사치다. 하루에 평균 10시간도 넘게 공부하는 공시생들의 삶 역시 그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고작 3년 차이나는 고금록과 제왕운기의 편찬 시기를 몰라 시험에서 떨어진다면? 사실 이런 씁쓸한 현실은 비단 공시생들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2018 대한민국 사회 풍속도에선 아무도 웃을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추첨제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

운발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우선, 현행의 방법대로 시험을 치른다. 시험의 목적은 공무원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지식과 업무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러니 출제 난이도도 딱 그만큼이면 된다. 그런 능력을 갖춰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그 사람들을 상대로 추첨을 한다. 순전히 운발이다. 운이 좋으면 붙고, 운이 나쁘면 떨어진다. 여기서는 모두가 공정한 선 상에 놓인다. 이렇게 되면 공시생들은 한정오처럼 공무원이 되기 위해 모든 삶을 내던질 필요가 없어진다. 물론, 노량진 인기 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부모님께 송구한 두 손 모을 필요도 없다. 결국엔 다 운발이니 말이다.

나의 수험번호가 ‘운’이 좋아 뽑히기만 바라면 된다

그러면 0.1초만에 검색 가능한 정보를 외우기 위해 몇 시간씩 허비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깟 정보 한 줄보다 소중한 나의 청춘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대신, 조금 덜 준비하고, 그만큼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고, 탈락해도 운을 핑계로 조금 덜 자책해도 된다. 무슨 헛소린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공무원 시험 경쟁이 실력이 아니라 운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면, 아예 대놓고 운에 맡겨보자는 것이다.

경쟁하지 않아도 될 곳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아무나 공무원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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