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어느 가을날, 모처럼 일이 들어왔다. 나도 몇 번 써본 적 있는 한 유명 화장품 브랜드의 회의에 참석해 통역을 하는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통역이라기보다는 피칭에 가까운 자리였다. 회의 주제는 마케팅 방안에 관한 내용이었고, PR 성격이 강한 비교적 가벼운 회의라 큰 부담 없이 준비할 수 있었다.
해당 고객사와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함께 일한 경험이 있었다. 예전에 다른 부서에서 했던 통역이 괜찮았는지 소개로 연결되어 부서가 바뀌어도 다시 연락이 오곤 했다. 그래서인지 마음 한편으로는 ‘나의 회사’라는 기분이 드는 곳이기도 했다. 그만큼 어떤 스타일의 통역을 선호하는지, 어떤 방식의 호흡을 좋아하는지도 어느 정도는 감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준비 없이 회의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일정이 확정되자마자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등하원시키는 길, 아침에 샤워를 하며, 머릿속으로는 계속 회의의 장면을 그렸다. 최근 광고 모델, 주요 판매 채널, PR 회의에서 나올 법한 단어들과 질문들. 며칠간은 잠시 그 회사의 사람이 된 것처럼 살았다. 통역을 맡은 주제에 맞춰 그 분야에 몰입하는 동안은 마치 내가 연기자가 되어 배역에 몰입한 듯한 생각도 든다.
통역 당일 아침이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긴장 때문에 잠을 설쳤을 텐데 엄마가 된 이후로는 오히려 이런 날에도 잘 잔다. 긴장감보다 피로가 더 커서 전원이 꺼지듯 잠들어버린다. 늘 교복처럼 돌려 입는 옷 대신 오랜만에 슬랙스를 꺼내 입었다. 운동복 바지와는 전혀 다른 감각의 옷이었다. 다리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바지는 낯설게 느껴졌다. 몸을 타이트하게 잡아주는 이 긴장감이 이상하게도 조금 그리웠다. 상의는 깔끔한 얇은 니트로 정했다. 하지만 나만 준비하면 되는 외출은 더 이상 없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옷을 입히고, 등원 가방을 챙기며 집 안을 정신없이 오갔다. 잠시 전까지 정돈되어 있던 집은 어느새 어질러져 있었다. 문득 우리 엄마는 거실을 어질러 놓고 외출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그렇게 배워왔지만, 지금의 나는 그 가르침을 지킬 수 없다. 정리정돈을 포기한 대신 아침 9시, 등원과 출근 준비를 모두 마쳤다.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급할수록 아이의 걸음은 더 느려 보인다. 오늘만 아니었다면 그 속도를 기꺼이 즐겼을 텐데 결국 짜증 섞인 목소리를 한 번 내고서야 아이를 들여보낼 수 있었다. 이제 온전히 내 시간이다. 내비게이션을 켜보니 여의도까지 1시간 40분. 한창 길이 막 힐 시간인데 소요시간이 줄어들 리는 만무하다. 고민 끝에 차를 두고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어린이집 근처에 주차를 하고 마을버스를 타고 정자역으로 이동했다. 아이와 헤어진 지 40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경기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눈을 뜨자마자 커피 한 잔도 마시지 못한 채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회의 시작 40분 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리뷰를 할지, 커피를 마실지 잠시 고민하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자료를 다시 훑었다. 앞뒤로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의 대화가 들렸다. 그들에게는 평범한 가을날의 아침일 것이다. 그 평범함이 지금의 나에게는 낯설고도 부러웠다.
회의는 시작되었고 시계를 볼 틈도 없이 흘러갔다. 설명하고, 질문을 받고, 다시 설명하는 사이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야 아직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긴장이 풀리자 배고픔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시간은 이미 12시 50분을 넘기고 있었다. 여의도의 점심시간에 예약 없이 식사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밥이 먹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더 컸다.
결국 지하철을 탔다. 정자역에 도착하니 2시.
마을버스를 기다리다 결국 어린이집까지 걷기 시작했다. 하원 시간에 간신히 도착해 아이를 안고 차에 오르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의 여의도, 오랜만의 통역, 그리고 ‘서율이 엄마’가 아닌 ‘통역사 한주연’으로 불려진 하루. 그 하루는 육아를 하며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과 또 다른 차원의 만족감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는 다시 보낼 수 없는 하루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유는 내 정신력이 나약해서도, 체력이 부족해서도, 직업정신이 흐려져서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예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지점으로 옮겨와 있었고, 그 간극이 생각보다 넓어졌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