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나의 거울

외면과 무심함이 던진 질문

by 백서



이방인을 읽고, ‘나’를 다시 보다


카뮈의 이방인은 읽기 전부터,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고 난 후까지도 나를 한층 더 깊이 끌어들였다.

특히 주인공 뫼르소의 무심하고 무던한 태도는 어쩐지 나와 닮아 있었다.

세상과 온전히 섞이지 못하는 존재로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낯설지만 매혹적이었고,

그래서 다른 작품들보다 훨씬 쉽게 읽히고 공감되었다.


나는 뫼르소를 단순히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같지만 다른 나’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작품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나 자신과 비교했고,

결국 이 책은 나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관망하는 태도, 감정의 회피


책은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 날짜조차

분명히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삶의 중요한 순간조차 타인의 일처럼 바라본다.


인생을 덧없고 무의미하게 여기는 듯한 그의 태도는,

나에게는 일종의 자기 보호처럼 느껴졌다.

장례식에서조차 그는 감정을 억제하거나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내가 보기엔, 그것은 무정함이라기보다는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훈


련되지 않은 감정은 받아들이지 못한 채 흘러가 버리고,

그마저도 외부의 시선 속에서 더더욱 억눌려야 했을 것이다.




총살 장면, 감정적 폭발의 상징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 장면은

바로 뫼르소가 아랍인을 총살하는 순간이다.

그는 단지 “햇빛이 강해서”라는 이유를 들지만, 과연 그것만일까?


내가 느끼기엔, 그 장면은 뫼르소가

애써 감춰왔던 감정의 이면이 자극된 순간이다.

아랍인의 칼날에 반사된 햇빛은 단순한 외부 자극이 아니라,

그동안 눌러두었던 감정을 폭발시킨 방아쇠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추가 사격, 네 발의 총성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자신조차 설명하지 못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였다.

감정을 처리하지 못한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택한 방어기제,

혹은 자학적 확인이 아닐까.


나에게 그 장면은

‘파괴를 통해서만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인간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이방인이라는 제목처럼,

뫼르소는 사회의 기준 속에서 쉽게 “비정상”으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감정과 행동을 너무 쉽게 흑백으로 나눈다.

정상/비정상, 옳음/그름.


그러나 타인의 내면과 서사는 언제나 더 복잡하고,

필연적인 이유를 품고 있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겉으로 보기에 모순적인 감정과 행동도,

깊이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맥락이 있다.


그렇기에 쉬운 판단은 누군가를 가련하게 만들고,

그의 세계를 왜곡한다.




나에게 던진 질문


뫼르소의 시선은 타인을 넘어,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그처럼 나도 종종 세상을 관망하며,

감정을 억누르거나 미뤄둔다.
그가 낯설게 보이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 내 안에도 작은 ‘이방인’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방인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이었다.
나는 책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묻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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