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림플란트치과
1년 전 갑자기 어금니가 너무 아파서 회사 근처의 어느 치과에 갔다. 발치와 함께 임플란트해야 한다고 했다. “아…….” 입에서 자동으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빠른 치료를 위해서 나는 예약 날짜를 잡고 무거운 맘으로 그곳을 나왔다. 그런데 문득, 병원은 여러 군데 상담을 받아봐야 한다는 말이 떠올라 집 근처의 “림플란트 치과”에 갔다. 접수 후 엑스레이도 찍고 치료실로 갔다. 그곳은 파스텔 색조 꾸며져 마치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보였으나 트레이에 펼쳐져 있는 갖가지 치료 도구들과 머리 위의 집중 조명,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치아 엑스레이 사진이 띄워져 있는 모니터를 보니 불안함과 함께 나의 어릴 적 공포의 순간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일명 “불주사”라고 하는 결핵 예방 접종을 학교에서 단체로 맞는 날이었다. “불주사” 그 이름만으로도 어린이들에겐 너무나 큰 두려움이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 줄을 이탈하고 급기야 도망 다니기까지 했으나 결국 선생님 손에 붙잡혀 어깨에 그날의 무시무시한 불주사 자국을 남기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건 주사가 얼마나 아팠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새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나의 치아 상태를 살펴보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발치 없이 치료할 수 있다고 하셨다. 순간 나는 너무 기뻤다. 물론 여러 번의 치료에서 오는 공포는 매번 존재했지만, 나의 소중한 이빨을 살릴 수 있었음에 늘 감사하며 고마움을 느낀다.
그 후 1년이 지난 오늘은 치아 검사도 하고 스케일링도 받기로 한 날이다. 여러 차례의 나의 고함과 함께 스케일링은 무사히 끝났으나, 나를 담당한 노련한 간호사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10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힘들었다고 한숨을 내쉰다. 나는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여전히 치과 치료는 나에게는 현존하는 최대의 공포인 걸 어쩌겠나…….
그러면서도 그녀는 초음파 도구가 치아에 닿을 때의 그 낯선 느낌이 힘들면 평상시 전동칫솔 사용을 권하였다. 잇몸을 함께 마사지하듯 칫솔질하여 자극을 주면, 스케일링할 때에도 불안감이나 통증이 덜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얼음을 깨 먹거나, 질긴 음식물을 자주 먹거나, 차갑고 뜨거운 음식을 교차로 먹는 행동은 이빨에 치명적이라고 하였다. 엄살쟁이 환자에게도 늘 친절하신 “림플란트 치과”의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께 감사하다. 치과는 이제 6개월 뒤에 오면 되니 또 하나의 관문을 치르고 나온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했다. 평상시 양치질을 조금 더 신경 써서 해야겠다. 건강한 내 이빨로 맛있는 음식을 오래오래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