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여행, 여행이 된 일상

누구나 한 번쯤은 여행을 직업으로 삼는 여행작가를 꿈꿔보았으리라 여겨집니다. 저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항상 어디론가 떠나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실현코자 애썼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행작가의 꿈을 버리고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 저는 여행작가란 것이 따로 있는 직업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혹자는 여행작가란 유려한 글솜씨와 수많은 여행 경험, 세밀한 관찰력 등을 겸비해야 하는 만큼 결코 쉬운 직업이 아닌데, 어쩌자고 여행작가를 별도의 직업으로 보지 않느냐며 의아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여행작가란 일을 쉬이 보고 이렇게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제 글이 그다지 유려하지 못하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서도 충분히 드러났거니와, 저는 여행 경험 또한 그다지 많지 않고 하물며 세밀한 관찰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저는 다만 제가 일상과 여행에 대한 관념을 재정립함에 따라, 여행작가란 일에 대한 생각 또한 바뀌었다는 점을 강조코자 위와 같이 적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에 대한 제 단상(斷想)을 공유코자 합니다.

2003년 말 어느 금요일 오후, 저는 태국여행에서 막 돌아와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 현관문을 밀치고 있었습니다. 빈 식탁에는 부부동반 모임에 가셔서 저녁 늦게 돌아오신다는 부모님의 조그마한 메모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시 식탁에 앉았다가, 토요일 새벽에 도쿄로 출발해서 월요일 새벽에 귀국하는 밤도깨비 여행을 인터넷으로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 휴대폰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던 부모님께, 일본으로 주말여행 다녀오겠다는 짤막한 글을 남기고 그대로 떠났습니다. 태국에서 돌아와 시커멓게 탄 얼굴에 아직 시차도 적응되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그 길지 않은 일본 여행 자체는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훌쩍 여행을 떠났을까요? 참고로 저는 적어도 여행에 있어서는 그다지 충동적인 편이 못 되며, 철저히 계획을 짜서 가는 편입니다. 그런 제가 평생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충동적 해외여행을 간 것은 어째서일까요?

저는 그 당시 회사를 다니는 일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직장 동료들은 제게 무척이나 잘 대해 주었고, 일 또한 그다지 어렵다거나 힘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았지만, 그거야 어느 직장이나 그러하니까, 혼자서 유별나게 불평할 필요는 없는 일이지요.

문제는 제게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는 대신 제가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지겨워하는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생계를 위해서 그랬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일을 하지 않고 제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생계가 끊기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지금 제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뒤로도 몇 년 동안 직장을 바꿔가면서까지 계속 제가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다가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칫 배부른 고민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제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몇 년 동안 꾹 참고 했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저는 결코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닙니다. 형편이 진정 넉넉했다면, 구태여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계속할 필요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어려서부터 '나는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살았던지라, 행복하지 않은 삶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이라는 일상이 행복하지 않았기에, 저는 그동안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수단으로 여행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제게 일상과 여행은 철저하게 분리된 두 가지였으며, 일상은 기분 나쁜 것 그리고 여행은 기분 좋은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은 날이 갈수록 끔찍한 것이 되었고, 다른 이들이 마약이나 도박에 빠지고 집착하듯이, 저 또한 여행에 빠지고 집착하며 그것을 현실도피수단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현실이 끔찍하니만큼 조금이라도 더 자주 도피하고 싶은데 시간과 돈이 따라주질 않으니, 괜스레 제 자신과 사회를 어처구니없이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여행을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로 여기지 않습니다. 대신 여행은 '나의 또 다른 일상'입니다. 사실 이 편이 이치에 닿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직장도 현실인 만큼 여행 또한 어차피 현실이며, 제게는 일상 외에는 다른 것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상이 자못 단조롭게 여겨지기도 합니다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네 일상은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습니다. 일찍이 헤라클레이토스가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거니와, 우리네 삶 곧 일상은 단 한 순간도 같은 적이 없었던 여행입니다. 이제 일상을 '여행 기분'으로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오직 제게 달린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여행에도 즐거웠던 여행이 있었고 끔찍했던 여행이 있었던 만큼, 여행 자체보다 여행기분을 낸다는 것 그리고 여행기분으로 산다는 것이 더욱 와 닿습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이제 저는 제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에 비하면 수입은 정말로 보잘것없습니다만, 제 일상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들로 가득합니다. 물론 가끔씩 감당키 어려운 일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 일상은 이제 '여행'이라는 올바른 자리를 찾았으며, 저는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있을까 두근거리는 호기심을 되찾았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도 여행을 다닙니다. 국내로도 다니고 해외로도 다닙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귀국 날짜가 다가오면 여행지에서 한숨을 푹푹 쉬며 여행 기분을 망치지는 않습니다. 여행지에서의 일상도 즐겁고 일터에서의 일상도 즐겁습니다. 이제 저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여행하는 대신, 또 다른 일상을 즐기기 위해 여행합니다. 일상이 여행이라고 해서 결코 이곳저곳을 놀러 다니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은 잠시라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서로 다른 세상들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즐기기 위해 안달이 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상이 곧 여행이라는 점을 이제 이해했으며, 앞으로 소소한 글들에서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로 여행을 떠날까 합니다. 그 여행은 결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며, 또 다른 즐거운 일상들이 될 것입니다.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는 일상으로 또 다른 여행을 떠나는 그 날까지는 계속 부족한 글들을 남길까 합니다.

지나치게 다듬어 맥 빠진 글이 되기 전에 서둘러 글을 마무리짓는 편이 낫겠습니다. <브런치>의 글들만큼은 정말로 부담 없이 편하게 쓰고 싶다는 마음뿐이니까요. 조만간 또 다른 글로 만날 것을 약속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 맹꽁이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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