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본인의 생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 <이키가이>(밝은세상, 2018)를 소개할까 합니다. 저자인 켄 모기는 1962년 도쿄 출신이며, 일본에서는 뇌과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는 모기 겐이치로(茂木健一郞)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책이 나왔습니다. 제가 앞서 소개한 <아침의 재발견>, 그리고 한 때 큰 인기를 끌었던 <욕망의 연금술사, 뇌> 등이 그의 작품입니다.
책 표지에는 <일본인들의 이기는 삶의 철학>이라고 나와 있지만, 책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이 작은 일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책임감을 갖고 공동체 생활을 영위한다는 내용이 주입니다. 켄 모기에 따르면, 이키가이는 '삶의 보람'입니다. 그리고 그 보람찬 삶을 영위하는 핵심은 다음 5가지로 요약됩니다.
1. 작은 일부터 시작하기
2. 자아를 내려놓기
3. 더불어 살기
4. 소확행
5. 현재에 충실하기
자아를 내려놓기와 더불어 살기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자아를 내려놓기란 나 자신을 희생하란 뜻이 아닙니다. 나 자신의 아집이나 잘못된 선입견을 내려놓으라는 뜻이지요. 일본인의 '더불어 살기'는 흔히 전체주의나 집단주의로 오해됩니다. 하지만 켄 모기는 이를 '더불어살이' 또는 '참살이'로 이해합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하기와 소확행 또한 통합니다. 생활 속 소소한 일들을 충실히 해낼 때마다, 작고 확실한 행복들이 연신 피어납니다. 이 때문에 현재에 충실해야겠죠. 현재 하는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하면, 행복 또한 따라오지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5가지 특성은 서로 맞물립니다.
그런데 이키가이라는 개념은 뜻밖에 시중에 널리 유포된 한 다이어그램 때문에 유명해졌습니다.
저는 이 다이어그램에 흥미를 느끼고, 출처를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이키가이를 서양에 널리 알린 댄 뷰트너의 <블루존>(살림 라이프, 2009)도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키가이를 다룬 서적들에서는 이 그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구글 검색을 통해서도 이 다이어그램은 공식적인 출처가 없다는 답변만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이어그램은 꽤 인기가 있습니다. 인기가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요. 인터넷에는 이 다이어그램을 통해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는 글이 매우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분명히 유용하다는 결론이 옳겠지요.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이키가이 다이어그램은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돈 되는 일''세상에 필요한 일'입니다. 이 네 영역의 교집합이 바로 '이키가이'입니다. 한편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겹치는 영역은 '취미'입니다. '잘하는 일'과 '돈 되는 일'이 겹치는 영역은 '직업'입니다. '돈 되는 일'과 '세상에 필요한 일'이 겹치면 '소명'입니다. '좋아하는 일'과 '세상에 필요한 일'이 겹치면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영역에 위치하며, 이키가이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봅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고 잘하는 일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두 가지를 분리해서 다루는 일이 흔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가운데 무엇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흔했습니다. 오늘날 자기 계발 서적은 저 둘 사이의 경계를 허뭅니다. 좋아하는 일도 계속하면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들보다" 잘하려고 하다 보니,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무슨 일이든 좋아하고 열심히 하면, 어제보다 오늘이 무조건 더 낫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 나날이 발전합니다. 가끔은 정체기가 오고 심지어 후퇴할 때도 있지만, 다 '더 잘하는' 길로 가는 필수 과정입니다. 따라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때에는, 굳이 둘 사이를 분리하려 애쓸 필요 없습니다.
다음은 돈 되는 일입니다. 이 지점을 정말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돈 되는 일'을 찾으려 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돈이 되게끔' 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면 말이죠.
신사임당TV에 출연한 강주원 작가는 1인 출판사를 운영 중입니다. 책 편집에서 표지 디자인까지 모두 본인이 해치웁니다. 책 판매를 통한 수익의 상당수를 본인이 가져가겠지요. 2019년 10월에 출간된 그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당신에게>는 2020년 2월까지 2만 4천 부를 찍었습니다. 책 한 권에 1만 3천 원이니 약 3억 1천만 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지요. 다 팔린다는 가정 하에 말입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좋아하고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속된 말로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기 위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SNS에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자 매우 노력합니다. 그는 SNS 플랫폼에서 탄탄한 팬 층이 형성되지 않으면, 전업작가로 나서지 않는 편이 좋다고 충고합니다. 그도 인스타그램을 일일이 헤집고 다니면서 팔로우를 찍고 다니는 것을 즐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 억지로 싫은 일을 하기보다,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 (발품이 아닌) 손품 팔기를 꺼려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과 돈 되는 일이 하나로 뭉쳐집니다.
이제 '세상에 필요한 일'만이 남았습니다. 최신 자기 계발 서적은 모두 '타인의 가치를 올려주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때만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물론 수익뿐만 아니라 '보람'도 느끼겠죠. 강주원 작가는 처음에는 특별한 주제 없이 자유롭게 글을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팔로워들이 '연애'나 '인간관계'보다는 '선택'에 대한 글들에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연애나 인간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강주원 작가가 '선택'이란 주제에 유달리 글을 잘 썼다는 결론이 더욱 타당하겠지요. 결과적으로 강주원 작가는 자신의 책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인생의 선택'이란 이슈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는 세상에 필요한 일을 했고, 이제 그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돈 되는 일'과 '세상에 필요한 일'이 모두 겹치는 그만의 '이키가이'를 찾아냈습니다. 이키가이는 '삶의 보람'이라는 뜻입니다. 이키가이 다이어그램은 그 코어(core)인 교집합에 '삶의 보람'을 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잘 짜여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이가 금수저가 아닐 경우, 전공과 상관없는 아르바이트(조교 포함)로 인해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칼퇴근하는 일부 직장인들보다 공부할 시간은 부족하고 생활고는 늘어나지요. 인문학 하는 이들이 대부분 고민하는 문제가 결국 '현실'일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현실은 '경제적 현실'이겠지요. 대학원 공부를 접는 99.9%의 이유가 결국 경제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일부 인문학자들은 이키가이 다이어그램 가운데 왼쪽 두 동그라미만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인문학으로 돈을 벌거나 세상에 도움을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특히 후자가 문제였습니다. 자기만족만을 강조하면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을 등한시했습니다. 자기 일을 세상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전환하기를 게을리했지요. 그러면서도 세상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국가지원을 타내려 애썼습니다. 정부가 인문학을 지원하지 않으면, 길길이 날뛰면서 죽는소리를 했습니다. 국민들의 혈세가 어째서 노인복지 대신 BK21에 빨려 들어가야 하는지, 돈을 받는 이의 입장에서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BK21에서 제대로 된 인문학적 성과가 나왔는지도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저는 '이키가이 다이어그램'을 인문학적 저항 없이 소화하려면 약간 설명의 순서를 바꿔 '좋아하는 일-잘 하는 일-세상에 필요한 일-돈 되는 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돈 되는 일'은 내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돈을 좇아서 인문학을 해서도 안 되고, 좇는다고 해서 돈이 붙지도 않습니다. 엠제이 드마코는 <부의 추월차선>에서 "타인의 돈을 좇지 말고, 타인의 가치를 쫓아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세상에 도움이 될 때, 세상은 수익으로 보답합니다. 사실 '세상이 수익으로 보답한다'는 마지막 연결고리는 꽤나 느슨합니다. 하지만 나의 일을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세상에 도움되는' 방식으로 세팅하는 작업은 철저히 내게 달려 있습니다. 남들의 도움 없이도 나 스스로 찾아서 개선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지요. 우리 인문학자들은 이 세 가지 고리를 강하게 조이는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인문학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인문학자들이 스스로 망하는 길을 택할 뿐입니다. 또한 인문학은 고전만을 일컫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인문학의 주제이자 도구입니다. 하지만 선결과제가 있지요. 인문학은 Human Science입니다. 결국 Human이 무엇이냐, 아니 인간다움(humaneness)가 무엇이냐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로 우리는 끊임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맹자와 순자의 인성론 논쟁은 오늘날에도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