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앞서 <솔로충이 말하는 혼밥 혼술이 행복한 이유>라는 글에서, 혼자 식사하고 술을 마시는 문화 아래 흐르는 철학을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혼자서도 잘 먹었습니다>를 쓴 히라마쓰 요코에 따르면, 혼밥과 혼술은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고생했다는 작은 토닥임일 수도 있지만, 그냥 주는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그냥 주는 선물에 대단히 인색합니다. 자기 계발 서적에는 작은 성취를 이룰 때마다 보상을 주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기대 심리로 인해 발생하는 도파민 호르몬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기대하지 못한 순간에 받은 선물은 더욱 가슴 뛰지 않습니까? 소확행은 기계 같은 규칙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는 언제든 나 자신에게 멋진 선물꾸러미를 선사할 수 있습니다.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인 고로가 맛집을 찾아다니는 이유 또한 이와 다르지 않겠지요.
혼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는 잠들기 전 맥주 한 캔을 빠뜨리지 않는답니다. 슬로우 조깅의 창시자인 다나카 히로아키는 기분 좋게 달린 후 마시는 맥주 한 캔이 꿀맛이라 했습니다. 혼술 또한 열심히 달리거나 글을 쓴 데 대한 자기 보상이요, 그냥 즐길 수 있는 취미입니다. 저는 슬로우 라이프를 살게 되면서부터 음주를 가급적 자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마시고 싶은 날에는 기꺼이 혼술을 즐깁니다. 가령 방콕 카오산로드에 짐을 푼 뒤, 슬리퍼를 끌고 어슬렁어슬렁 밤거리를 혼자 거닌다고 합시다. 배낭여행자의 천국에는 불빛이 휘향 찬란하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백패커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거리에 가득합니다. 이때 어찌 맥주 한 캔 까서 손에 쥐고 걷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남들이 커피 한 잔 하듯, 저는 맥주 한 캔 할 뿐입니다.
저는 현재 솔로충(혼자 있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며 즐기는 사람)이며, 혼밥과 혼술은 제 삶의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럿이 먹는 점심식사 자리를 피해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점심식사는 본디 즐겁고 유쾌한 사교의 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합니다. 이 점을 좀 더 상세히 밝히기 위해, 오늘은 톰 호지킨슨의 <언제나 일요일처럼>이라는 책을 통해, '즐거운 사교의 장'으로서의 점심식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톰 호지킨슨은 제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영국 작가입니다. 그는 세계 제일의 게으름뱅이를 자처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기는커녕, 그것을 장점으로 삼아 <게으름뱅이 idler>라는 잡지까지 창간합니다. 이제 그는 세상에 널리 퍼진 게으름꾼들을 인터뷰하며 먹고 삽니다. 그는 "게으르면 굶어 죽는다"는 자본주의의 편견을 몸소 불식시킨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게으름'이 사업 아이템이 된다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그는 게으름에 관련된 유형 상품을 판매하는 업자가 아닙니다. 그의 모든 관심사는 돈 벌기보다는 자본주의와 관련된 과속 문화에 저항하는 데 있습니다. 그는 매우 영특하고 뛰어난 글재주를 지녔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무슨 비즈니스를 하든, 글쓰기 재주는 필수인 듯합니다.
오늘 다룰 그의 책 <언제나 일요일처럼 How to be idle>은 시간대 별로 어떻게 하면 게으름을 제대로 피울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합니다. 오전 8시의 제목은 <왜 벌떡 일어나는가?>이고, 오전 10시의 타이틀은 <이불속에서 뒹굴기>입니다. 이를 통해서, 진정한 게으름꾼은 적어도 10시 이전에는 이불속에서 빠져나오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11시에 자는 저도 호지킨슨의 견해에 충분히 동의합니다. 딱히 출근할 일이 없으면, 10시까지 따뜻한 이불 안에서 뒹굴거려도 전혀 상관없지 않습니까? 정말로 유쾌한 상상을 마음껏 즐기면서 말입니다. 데카르트는 오전 내내 침대 속에서 뒹굴거리면서 가장 어려운 수학과 철학의 문제를 갖고 놀았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아침 이불 속은 단연 최고의 사유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일단 스마트폰을 비롯한 외부 자극에서 철저히 차단되기 때문입니다. 커튼을 두껍게 쳐 아직 어두운 방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껴안고 이리저리 뒹굴다 보면, 결국에는 가장 중요한 이슈에 관심이 쏠리게 되어 있습니다. 잡스러운 상상도 조금 하다 보면 지겨우니까요. 제가 20/80 법칙이나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까닭은, 그를 통해 사유와 상상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결코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규칙적으로 살자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이러는 와중에도 저는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만큼은 정확히 지키고자 합니다. 16:8 간헐적 단식을 유지하는 만큼, 아침은 굶어야 하겠지요. 이 때문에 6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패스하면서 10시까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것은 제 삶의 패턴에 전혀 악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경험상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완전히 내려놓는 편이 훨씬 제게 유익합니다. 일요일 아침의 이불 속이 제게는 주일 교회입니다.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크가 지적했듯이, 하느님도 천지 창조 후에 하루는 쉬셨습니다. 이제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었으니만큼, 토요일 오전에 교회를 가고 일요일 아침에는 정말로 뒹굴뒹굴 쉬면 안 될까요?
저는 모든 사회적 일정은 오후에 시작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휴가를 가면 리조트에서 오전 내내 뒹굴거립니다. 원래 인간 본성이 그렇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액티비티를 즐기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면, 오전에는 본디 혼자서 뒹굴거리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꼼지락꼼지락 장난치면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낫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게으름꾼이라도 밥을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지요. 호지킨슨은 일단 오후 1시를 점심시간의 시작점으로 잡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전날 마신 술로 인한 숙취로 고생하는 시간이라고 그는 장난스럽게 말합니다.
저는 사실 점심 식사 시간을 오후 1시로 늦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평소에 생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오전 시간은 가장 업무 효율성이 높은 때입니다. 길면 길수록 좋지요. 그런데 9시에 출근해서 12시에 식사하러 가면, 사실 오전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에 1시부터 6시까지 이어지는 오후 근무 시간은 너무 길지요. 생체리듬에도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체시계 이론에 따르면 오전은 상승, 오후는 하강이기 때문입니다. 하강이 길어서야 안되겠지요. 9~13시, 14~18시로 시간표를 조정해야만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이 되어 균형이 잡히지요. 실제로 산업혁명 초기에는 점심식사 시간이 오후 1시였습니다. 정오에 점심식사를 해야 한다는 룰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낮잠이 쏟아진다고 합니다. 오후 1시에 점심식사를 하고 2시에 사무실로 돌아와 양치질을 한 뒤에 곧바로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2시 반에 깨면, 오후에는 그야말로 높은 업무효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사무실에서 점심식사 시간 동안 사무실 전등을 끄는 것은 직원들을 배려하기 위한 처사입니다. 하지만 생체시계 이론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그다지 효용이 없습니다.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면, 오후 1시 이전에 잠이 쏟아지지는 않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2시 전후로 해서 슬슬 졸리기 시작하지요. 이는 식곤증이 아닙니다. 인간은 본디 낮잠을 자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식곤증이 문제라면, 어째서 아침식사와 저녁식사 후에는 식곤증이 오지 않는 것일까요? 왜 식곤증은 오후에만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낮잠을 주제로 한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낮에 졸리는 까닭이 식곤증이 아니라 생체시계에 따른 본성임을 밝힌 연구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생체시계를 고려한 업무시간 재분배는 회사 측에서도 충분히 고려해보아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점심식사 시간대 확정과는 큰 관련이 없습니다. 호지킨슨은 점심식사의 문화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르면, 아주 멀지 않은 옛날만 해도 점심시간이란 친구 및 동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두세 시간을 보내는 자리였습니다.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고, 식사 후에는 인근을 산책하거나 갤러리를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어떠할까요? 슬로 라이프에 따른 슬로 푸드 문화는 각박한 자본주의 노동 윤리에 패해서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속도에 감염된 미국인들의 생활 문화가 한가로운 점심을 파괴했다고 지적합니다. 산문가 임어당은 "현대인들은 삶의 템포가 너무 빨라서, 먹고 요리하는 문제에 점점 더 적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먹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고 일하기 위해 먹는다면 그것은 정말 미친 짓이다."하고 따뜸하게 비판합니다.(79쪽) 호지킨슨은 말합니다. "사람 사이의 사귐과 즐거움이란 점심 메뉴에서 사라져 버렸다. 일, 진보,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기'라는 위대한 신 앞에, 점심시간은 제물로 바쳐진 것이다. 이제는 누구도 여유롭게 점심을 즐기지 못한다."(80쪽)
제가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근무할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에는 입행 동기들과 함께 구내식당이나 인근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하면서 이야기하고, 내친김에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때였죠. 하지만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는 인식은 지워버릴 수 없었습니다. 월급쟁이 주제에 얼마나 더 놀려고 이런 소리를 늘어놓느냐는 비판이 벌써부터 귀에 따갑게 들리는 듯합니다. 저도 일한 만큼 돈 받고, 돈 받은 만큼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직장인들에게는 정당한 변명거리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은 야근을 당연시합니다. 공기업에 다녔던 저는 그래도 야근을 적게 하는 편이었습니다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7시 이전에 퇴근하지 못했습니다. 1시간 더 일했다고 돈을 더 받지도 못하고요. 어차피 늦게 퇴근하는 거, 점심시간을 유쾌하게 보내고 짧은 낮잠(15분가량의 POWER NAP)까지 즐긴 다음 업무에 복귀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오후 1시에 점심식사를 시작해서 즐긴 다음에 돌아와서 2시 반부터 짧게 낮잠 자고 3시부터 업무를 다시 시작해도 2시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점심시간이 1시간이라도, 실제로 사무실로 복귀해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1시 반은 되어야 일을 시작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직원들에게 강제 야근을 시킬 거라면, 점심시간만큼은 넉넉히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그 편이 업무 효율성도 훨씬 높습니다.
점심시간을 짧게 준다고 해서, 야근이 그만큼 빨리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다 알고 있습니다. 구태여 <미생> 같은 드라마를 챙겨보지 않아도 상식에 속합니다. 저녁 식사는 주로 가족들과 하게 되는 반면에 점심 식사는 집 밖에서 이뤄지는 만큼, 그 사회적 기능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점심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라는 주문은 혹시 우리를 쥐어짜는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망언이 아닐까요? 어차피 6시 정시 퇴근을 시키지 않고 7시까지 일을 시킬 거라면, 9-13시(4시간), 15-19시(4시간)이 하루 8시간 근무하는 노동자의 정당한 근무시간입니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야근을 하지 않고 정시 퇴근하면서도 점심시간과 낮잠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낡은 사고방식의 관리자들은 식사시간과 잠을 줄이고 궁둥이를 오래 붙이고 있어야만 오후 성과가 늘어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와 같은 비업무시간을 여유롭게 즐길수 있게 해야만 오후 업무 효율이 훨씬 증가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워라밸을 회사에 있는 시간 vs. 회사에 없는 시간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업무 외 시간, 즉 '회사에 없는 시간'이라는 점을 망각하곤 합니다. 워라밸을 달성하기 위해 하루를 단순히 2개로 쪼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체리듬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워크와 라이프는 짧게 자주 반복되는 편이 좋습니다. 이 때문에 점심시간은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일환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간주되어야만 합니다. 업무 시간 사이에 끼어 있는 재충전 시간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재충전 시간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을 우선시하는 잘못된 사고에 기초합니다. 말하자면 일을 위해서 충전하는 시간이란 뜻이지요. 식사 시간을 포함한 모든 업무 외 시간은 업무를 위한 재충전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업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삶의 기본 토대이지요.
호지킨슨 연사의 마지막 외침을 인용하며 오늘 에세이를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점심시간을 돌려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타고난 권리이자, 이 사회의 통치 세력들이 우리에게서 앗아가 버린 시간이다. 겁을 집어먹고 책상에 붙들려 앉아 모니터만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 영혼에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한다. 점심시간은 일의 능률과 효율에 대해서는 모두 잊어버리는 시간이다. 제대로 된 점심이란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어야 한다. 편안하고 유쾌하며 흥겨운 교제의 장, 그런 점심시간이야말로 게으름꾼을 위한 것이다."(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