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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5] 백양리역에서 춘천역까지 걷기

2021년 6월 25일, 오늘은 경춘선 끝자락에 있는 백양리역에서 춘천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자전거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가평역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나는 도보여행자들에게 백양리역에서 출발하기를 권하고 싶다. 가평역에서 내리면 처음 접하는 광경이 흔한 도심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북한강의 명풍경을 접하는 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고 맥이 빠진다. 반면에 백양리역에서 내리면,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물안개가 자욱한 호반의 진면목을 만끽할 수 있다. 먼저 걸어야 할 거리를 계산해보자.

18.4킬로 미터라고 나오지만, 역시 자전거 전용도로를 약간 섞어가며 걸어야 한다. 왜냐하면 보행자 전용도로를 따라갈 경우에, 멋진 풍경을 놓치고 도심으로 진입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자전거 전용도로는 바로 옆에 보행자용 도로를 겸하고 있다. 따라서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가도 라이더들에게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시속 40킬로미터를 넘나들며 고속 질주하는 라이더들에게는 보행자들이 불편할 것이다.

내 보행 평균 속도는 시속 6킬로미터가 조금 안 된다. 그다지 빠른 편도 아니고 느린 편도 아니다. 휴식과 관광 시간을 감안해서 평속이 5킬로 미터라고 하면, 20킬로미터의 거리는 대략 4시간 만에 걸을 수 있다. 당일치기 도보여행자에게 자신의 평균 보행 속도를 대략이나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가 파악되기 때문이다. 내 경우, 백양리역에서 출발하면 춘천역까지 점심 식사 전에 도착할 수 있을 듯하다. 가서 1인용 닭갈비를 즐기고 오면 딱 좋을 듯하다.

  

자,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내는 오늘도 5시 35분에 마들역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을 탔다. 어제와 달리 왼쪽 겨드랑이에 뭔가를 끼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심심할까 봐, 재미있는 논문 하나를 준비했다.

강문종 님의 <전통시대 동성애 연구>이다. 어찌 이리 흥미로운 주제가 다 있을꼬! 알고 보니, 강문종 님은 조선시대 이쪽 방면 연구에 탁월상 성과를 내고 계셨다. 그분이 쓴 책 제목 또한 딱 내 취향이다.

<조선 잡사> 연구라니, 어찌 이리 신나는 주제가 다 있단 말인가. 나도 조선 성리학 하지 말고 조선 잡사 연구를 했어야 할 것을... 나처럼 잡스러운 사람이... 이 분께서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여 온 국민이 상심했던 2021년 1월, 조선 시대에도 '사쾌'라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잘 나갔다는 것을 밝혀주셨다.

https://www.mk.co.kr/star/broadcasting-service/view/2021/01/42228/

조선시대 동성애 역사를 즐겁게 읽고 있는데, 아뿔싸, 또 활발한 장운동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결국 청평역에서 내려 엉거주춤 화장실로 들어가 속을 비웠다. 나는 이런 식으로 20분가량을 손해보곤 한다. 가뿐한 배를 움켜쥐고 다음 열차에 탑승하여, 백양리역에서 내린다. 7시 17분이다.

 

어떻게 북한강 자전거길로 합류할지를 몰라 일단 저렇게 역 밖으로 나왔지만, 사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금세 자전거길에 들어설 수 있다. 내리자마자 이처럼 물안개 자욱한 길을 끊임없이 걸을 수 있는 행운을 맞게 된다. 이 때문에, 춘천 방면 도보 여행은 이른 아침에 하는 편이 좋다.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옛) 백양리역을 지나치게 된다. 나는 요즘 걷는 것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방문하지는 않는다. 이번 도보여행에서는 패스!

아무리 걸어도, 아무리 보아도 지치지 않고 질리지 않는다. 아른 아침 백양리역에서 출발하는 도보여행자가 볼 수 있는 촉촉한 풍경은....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추억의 (옛) 강촌역에 다다른다.

꿈 많던 대학 시절, 라테는 말이야, 강촌에 가서 얼마나 즐거이 MT를 즐겼는지. 하지만 현재 강촌역은 (옛) 강촌역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내가 사랑하는 강촌역이란 오직 여기를 일컫는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옛) 강촌역을 따라서 추억을 더듬어 가본다.

강촌대교 쪽으로 이동하여 북한강 자전거길 표지판을 잘 따라서 내려가면 이제 다시 멋진 풍경을 보며 걷는 행로가 이어진다. 어느새 물안개가 많이 걷혔다. 이 또한 아름답다.  

눈앞에 의암댐이 보인다.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자, 다리 하나를 건너서 계속 직진해보자. 의암댐을 지나자마자 나오는 이 다리는 자전거 전용도로나 보행자 전용도로가 없다! 나는 맨 처음에 많이 겁먹었는데, 자전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달려가기에 나 또한 다리 한쪽 구석에 붙어서 조심조심 건넜다. 이때가 오전 9시 10분이었다.

다리를 건넜으니 안심하고 다시 쭉 도보여행을 이어가 보자. 난데없이 상의를 탈의한 의암 인어상이 나온다.

인어상 주변에 라면을 드시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인어상은 솔직히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또 이런 것이 이정표가 되어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은 바로!

김유정 문인 비이다. 경춘선 김유정역과 크게 멀지 않은(?) 곳에 소재하고 있다. 김유정을 너무도 좋아하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문인비를 바라만 보아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암 스카이워크로 향하는 길... 이제는 춘천 스카이워크에 밀려서 아무도 찾지 않는 그곳. 하지만 춘천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만 하는 곳이다.(엄밀히 말하면 꼭 의암 스카이워크를 지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목재 데크로 구성된 의암호 산책길은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다)

춘천 스카이워크에 비하면 규모가 초라하다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시원한 데크 길을 계속 걷다 보면...

짠! 이렇게 <베어스호텔 웨딩홀>이 나오면, 맞은편의 샛길로 들어가 <춘천 수변공원>에 합류하면 된다.

<중도>와 <5 note>는 춘천 호반길을 걷는 도보여행자들에게 친숙한 장소이다.

이제 수변공원 길을 천천히 따라 가면, 내가 좋아하는 KT 상상마당이 나온다!!

<댄싱카페인 베이커리>...저기에 편안히 누워서 차나 한 잔 하면서 망중한을 즐겼으면 좋겠지만...그래도 춘천 시내에 가서 점심 먹어야지^^

갑자기 닭갈비보다 시원한 초계국수가 당겨서, 급히 남춘천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명한 맛집 <국수닭>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 명소를 가기까지 길은 사실 예쁘지도 않고 보잘것없다. 땡볕에 기를 쓰고 악을 쓰고 <국수닭>까지 걸어갔는데....

이때가 11시 30분경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식사를 할 수 없었다. 거기 일하시는 분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거절했기 때문에, 나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맨 처음 분은 혼자서는 식사가 곤란하다고 말했고, 뒤에 오신 분은 예약이 다 차 있어서 불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이미 있었고, 빈 테이블이 많았다. 나는 진상 손님이 아니기 때문에, 아~ 그렇구나~ 하고 그냥 발걸음을 돌려서 나왔다. 점심시간에 1인 손님을 받기 어렵다면 이해가 가는데, 문제는 종업원들끼리 서로 말이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운해할 생각은 없다. 내가 뭔가 오해했을 수도 있고, 여행의 끝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옆 편의점에서 뚱뚱한 펩시 콜라 한 캔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너무 강행군을 해서인지, 기대했던 점심식사를 하지 못해서인지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았다. 하지만 당만큼은 보충해야겠기에, 편의점 간의 테이블에서 시원하게 콜라를 마셨다. 어쩌면 이게 가장 배낭여행자다운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귀가한 뒤 또 힘이 뻗쳐 주체를 못 해, 이태원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홍대역까지 걸어갔다.

이태원 BREWDOG은 함께 가고자 하는 동지가 있기 때문에, 방문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언젠간 먹고 말테야!

연남동 깊숙이 자리 잡은 베트남 카페 CONG이다. 두리안 커피를 마시고 싶은 분이시라면, 혹은 동남아풍을 간직하면서도 멋진 목재 인테리어에 취해보고 싶으시다면, 반드시 방문해야만 할 곳이다. 나는 이곳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오늘은 시간이 꽤나 늦은 관계로 입장하지 않고 지나치기로 한다. 이렇게 6.25의 하루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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