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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7] 양평역에서 여주역까지 걷기

토요일인 6월 26일에는 비가 왔고 저녁에 가족 모임이 있었다. 그래서 하루를 쉬었다. 요즘은 자전거를 타고 당일치기로 강릉이나 속초를 다녀오는 라이더들이 적지 않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박으로 자전거를 몰고 가는 용자들도 있다. 내 경우에는 자전거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주기에는 너무도 게을러서, 대신 수도권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다음에 그곳에서부터 무작정 걷는 여행을 선호한다. 이번에는 경의중앙선 끝자락에 위치한 양평역에서부터 여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보기로 한다. 경강선 여주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타고 올까 했지만, 돌아오는 길이 너무도 고될 것 같아 시외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총거리를 살펴보자. 

자전거를 이용할 경우, 36.4킬로미터가 나온다. 대략 이 정도 걸었다고 생각한다. 보행자 전용도로로 걸으면 다소 시간이 단축되지만, 나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걸었으니까. 자전거 전용도로가 훨씬 예쁘다. 

변함없이 5시 35분에 마들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발했으나... 역시 장운동을 이기지 못하여 팔당역에 내려 해우소를 이용했다. 이제 이 정도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양평역에 도착하니, 7시 28분이었다. 

양평군청을 지나서 이번에는 남한강 자전거길에 합류한다. 

쭉 뻗은 자전거길이 너무도 멋진다. 자전거길  노란 선 오른편에는 보행자를 위한 길도 있다. 

너무도 아름다운 길을 걷다 보면 갈산공원을 지나게 된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자전거족들이 꽤 많이 보인다. 반갑게 인사하고 지나가는 그들이 좋다. 산책로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 모습이 시원하다. 

<호국무공수훈자공적비>를 지나서~

어느새 현덕교 앞까지 왔다. 사실 딱히 이정표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자전거길을 따라서 쭉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얼굴이 너무 타서 할 수 없이 저 패셔너블한 모자를 쓰고 말았다. 한여름 땡볕에는 저 모자가 최고이다. 

드디어 이번 여행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업힐이 나온다! 

사실 업힐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뒷짐 지고 슬슬 올라가면 어느새 끝나 있다. ^^ 걷다가 너무도 목이 말랐는데, 따! 하나로마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혹시 열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지... 이때가 9시 10분이었다. 

하나로마트가 무려 아침 8시 30분에 문을 열다니! 최고이다! 

헐레벌떡 마트로 뛰어들어가, 2리터 생수를 47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샀다! 행복하다!

한 손에 2리터 물을 흔들며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여양로 2111 카페를 지나서 다시 자전거도로에 합류한다. 물을 사기 위해 잠시 경로를 이탈했었다. 

아, 그런데 물을 정신없이 벌컥벌컥 들이켜다 보니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이포보 화장실까지 0.8km라니, 서둘러 가보자.

저 멀리 이포보가 보인다!

일단 이포보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어보자! 수첩은? 그런 거 없다. 그냥 손바닥이랑 손목에 찍었다. 

이포보 전망대도 가보았다. 그런데 화장실이 3층에 있었다. 에이, 귀찮다. 그냥 조금 더 걸어가다가 정 급하면 그냥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 해결하기로 했다. 

결국 웰빙캠핑장에 가서 시원하게 일을 보았다. 

웰빙캠핑장을 지나서 계속 걷다 보면, 대형 활주로를 방불케 하는 넓은 장소가 나온다. 나지막한 다운힐이라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기 좋은데, 나는 너무 기분이 업되어서 뛰어 내려갔다. 가슴이 터져라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멋진 공간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여주시내로 들어설 때까지 동일한 풍경이 지루하게 반복된다....

정말 저와 같은 풍경 속을 몇 시간 동안 걸었다. 하지만 이때야말로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절대로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검색하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서는 안 된다. 오직 자기 자신과 대화하자. 

땡볕 아래 정수리가 타는 듯한 기분으로 걷다 보면 다시 여주보가 눈에 들어온다. 

역시 인증센터에서 도장은 손바닥에 찍었다. 물론 저녁에 샤워하면서 사라졌다.

여주보를 지나서 여주시내로 접근할수록 이제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모두 나를 보고 흠칫 놀란다. 저 인간은 대체 어디서부터 걸어왔으며, 왜 걷는 것일까?

여주 시내로 들어서서는 여주종합터미널까지 거의 외길이다. 도보여행자나 라이딩족들에게 카카오맵은 정말 필수 아이템이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정말 지도 없이도 어디든 갈 수 있다. 

여주 터미널에 도착하니 정확히 13:00 그러니까 오후 1시였다. 양평역에서는 7시 반에 출발했었다. 30킬로미터 조금 넘는 거리를 가는데 5시간 반 가량 소요되었다. 이제 이를 기준으로 또 다른 루트를 뚫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1시에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방금 출발하여, 1시간을 터미널에서 보내게 되었다. 관광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주변을 살펴볼 생각은 없었다. 터미널 내의 이마트24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코카콜라를 샀다. 

허겁지겁 먹고 나와 대합실에서 조용히 이번 여행을 음미하다가, 2시가 되어 버스에 탑승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차가 꽤나 막혀, 4시가 훌쩍 넘어서야 강변역에 도착했다. 

귀가해서 씻고 나니 어느새 6시가 가까워졌다. 7시에 노원역에서 친구를 만나 <이중삼겹>에서 실컷 삼겹살을 즐겼다. 가성비가 좋고 채소를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어서, 젊은 노원 구민들에게는 제법 입소문이 난 곳이다. 실컷 고기를 뜯고 있는 가운데 폭우가 와서 우산을 샀더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버린 것은 충격.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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