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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는 미니멀리스트, 이기주의자입니다

슬로 앤 미니멀 라이프스타일 제안

츠타야의 창업자로 유명한 마스다 무네아키가 <츠타야, 그 수수께끼>(베가북스, 2018)에서 잘 밝힌 바와 같이, 오늘날 소비자들은 "도움이 되는" 상품을 넘어서 "의미가 있는" 상품을 원합니다. 시장에는 너무도 많은 상품들이 나와 있고, 소비자들은 그 상품들을 일일이 다 살펴볼 여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상품의 품질 또한 상향 평준화되어 더 이상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졌죠.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보다 크고 넓은 의미의 관점에서 제품을 선택합니다. 예컨대 (마케팅 차원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상품들을 구매한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츠타야는 이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미디어 상점"이라고 불립니다. 이 츠타야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들이 진열됩니다. 하지만 그 상품들은 반드시 츠타야가 추구하는 특정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해야만 합니다. 오직 그럴 때 소비자들은 온라인 샵을 온종일 뒤지는 수고를 뒤로 하고 츠타야로 향해서 자신이 구체적으로 원하는 품목을 결정해서 구입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츠타야의 라이프스타일은 슬로 라이프나 미니멀 라이프와는 거리가 멉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미니멀 라이프나 슬로 라이프 제안 회사는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미니멀 라이프를 표방하여 비싼 상품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려는 회사들은 제법 존재하지요. 예전에 힐링이라는 화두를 이용해서 유사 힐링 상품을 고가에 팔아먹는 회사들이 즐비헀고 지금도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지요.   


미니멀 라이프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한 대형 기업은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래도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들은 동서양에 적지 않습니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인 사사키 후미오 님이 대표적인 케이스이지요. 이 책은 나중에 따로 리뷰할 생각입니다. 일본에는 제 마음에 드는 미니멀리스트들이 적지 않습니다. 참고로 서양의 미니멀리스트들이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제게는 잘 들어맞지가 않았습니다. 넷플릭스에는 <미니멀리즘: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다큐가 있고, 그 다큐의 주인공인 조슈아 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는 <미니멀리스트>(이상미디어, 2015) 등의 책도 썼지요. 그들의 저서는 한국에 여럿 번역되어 있습니다. 저로서는 그들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에는 공감하되,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여전히 할리우드 식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는 동양철학 전공자의 개인적인 취향이니, 딱히 염두에 두시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사사키 후미오 님의 경우에는 한국 EBS 다큐에 출연하셨고, 그의 책은 영어로도 번역되어 서양에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wLdF-P4xxM  

https://www.youtube.com/watch?v=XOXf8TKNliU


오늘의 주인공인 미니멀리스트 시부는 사사키 후미오보다 한 발짝 더 미니멀리즘으로 나아갔고 캐릭터도 매우 독특해서 재미있는 친구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매우 부유한 집에서 자랐지만, 중학교 때 아버지의 개인적인 파산에 이은 이혼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는 "행복한 인생에 필요한 것은 돈. 돈을 벌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만으로 경쟁심을 불태웠지만, 삼수를 하고서도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고 완전히 체념 모드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4년 겨울, 백수로 살아가던 19세의 시부는 어느 날 구글에 "냉장고 없음"이라고 검색했다가, "미니멀 라이프"라는 신세계를 만났습니다. 냉장고뿐만 아니라 전자레인지나 세탁기, 텔레비전 없이도 즐겁게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요. 그는 "이 책을 읽는 당신은 혹여 꾹꾹 참아가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생활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나는 지금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보내고 있다"며 자신의 미니멀 라이프를 가장 바람직한 라이프스타일로 제안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50가지 주제를 다루는데, 여기서는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냉장고가 없다>

미니멀리스트 시부는 몇 년째 냉장고가 없는 방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는 커다란 냉장고에 김치 냉장고까지 "필수로" 여기는 우리에게는 다소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는 냉장고가 없는 삶의 장점으로 1) 보존할 수 없기 때문에 신선한 것만 먹는다. 2) 먹는 게 귀찮아서 1일 1식 생활. 3) 상온에서 보존할 수 있는 식재료를 먹게 되었다. 4) 미지근한 음료를 좋아하게 되었다. 등을 꼽았습니다. 

미니멀리스트 시부는 생선을 매우 좋아해서 매일 먹는데, 아시다시피 생선은 상온 보존이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매일 슈퍼마켓에 가서 생선을 사 오는데, 이는 걷기 운동에도 도움이 됩니다. 한편 그는 냉장고가 없는 까닭에 자꾸 슈퍼마켓에 가기도 귀찮고 해서 결국 1일 1식으로 라이프스타일을 굳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이 그를 초건강체로 만들어주었다고 말하지요. 1일 1식이 과연 바람직한 식단인가에 대해서는 사람들 간에 견해차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도저히 해낼 수가 없어서 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1일 1식이 가능하신 분들이 꽤 있고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있지요. 여하튼 좋은 식단을 소식하면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1일 1식>이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나구모 요시노리 님은 한국의 SBS 스페셜에도 나왔지요.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XV0owEjpFw

한편 본디부터 건강 오타쿠였던 미니멀리스트 시부는 냉장고가 없는 까닭에 음료를 차갑게 만들 방법이 없어 결국 미지근한 음료를 선호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실 지나치게 차갑거나 뜨거운 음료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지요. 특히 극도로 차가운 음료수는 원활한 혈류를 방해합니다. 로푸드(raw food  생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뜨겁거나 차가운 음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잘못된 음식을 먹거나 과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사실 맵고 싼 찌개류 가운데 상당수가 식으면 맛이 없지요. 상온에서 맛이 없는 음식은 일단 우리에게 바람직한 종류인지 의심해볼 만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그냥 먹습니다. 건강 오타쿠의 삶은 참으로 피곤하기 때문이지요. 본인에게나 주변인에게나.     


<텔레비전이 없는 삶>

아마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더 이상 텔레비전을 통해 동영상을 시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노트북 등을 통해서 보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미니멀리스트 시부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을 통해서 영화나 드라마의 재미없는 부분들은 빨리 돌리며 효율적으로 시청하는 편을 선호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슬로 라이프 측면에서 여기에는 견해를 좀 달리합니다. 여러분들은 넷플릭스 드라마 한 시즌을 하루에 몽땅 몰아보고 나서도 몇 달이 지나면 주인공 이름조차 헷갈리는 경험이 없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입니다. 어릴 때 극장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봤던 내용들은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는데, 어째서 "효율적으로 돌려보기"를 하면 내용이 전혀 기억에 남지 않을까요? 정말 보고 싶은 영화라면, 중간에 다소 지루한 장면들이 나와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보는 편이 낫습니다. 감독의 입장에서 어느 장면 하나도 허투루 찍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지요. 유튜브 동영상의 경우에는 기억력이 증발하는 정도가 훨씬 심합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동영상 몇 개를 스킵 없이 몇 번이고 돌려보는 옛 재미를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을 자신의 유니폼으로 삼는다>

아마 이 견해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듯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몇 년동안이나 이와 같은 패션 스타일을 추구하고 싶었으나, 어째서인지 매장에 갈 때에는 "흰색 셔츠가 있으니까 이번에는 검은색을 사야겠다", "스트라이프 정장이 있으니까 이번에는 맘에 드는 색깔을 지닌 민무늬 재킷을 사야지"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가 자주 입는 옷들은 매우 한정되어 있어서, 반 이상의 옷들은 옷장에서 나올 줄을 모릅니다. 매일 같은 옷까지 갈 것은 없지만, 제가 진짜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여러 벌 사는 편이 제게는 어울리는 듯합니다. 그는 "시즌 한정" 등의 옷을 사지 말고 사시사철 판매되는 고정품을 사라고 했는데 이 또한 제 스타일에 맞습니다. 저는 동일한 양말이나 속옷을 여러 벌 구매해서 입습니다. 특히 양말의 경우 어느 한쪽이 구멍이 나더라도 스타일이 똑같은 양말들이 여러 켤레 있으면 구색을 맞추기 좋지 않습니까. 


<물건의 소비가 곧 시간의 소비라는 것을 깨닫는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유명한 우루과이의 무히카 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당신이 뭔가를 구입할 때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 돈을 얻기 위해 쓴 '시간'으로 사는 것이지요. 청구서와 카드 대출 등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면, 그건 자유롭지 않은 거예요."

우리는 물건을 살 때 흔히 "이것은 싸니까 산다. 이것은 비싸서 사지 않는다"라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미니멀리스트 시부는 "이것을 산다면 얼마만큼의 시간을 소비하는 셈일까? 이것이 내 시간을 팔아서라도 꼭 사야 할 물건인가?"를 고민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그는 소비에 극도로 주의를 기울이는 미니멀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140만 원이 넘는 건조기 겸 세탁기를 구입했습니다. 이 때문에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20만 원 월세를 사는 미니멀리스트에게는 과한 물건이라는 지적이었지요. 하지만 미니멀리스트 시부는 이로 인해 세탁과 옷을 말리는 데 들이는 시간이 0이 되었다며, 자신은 '자유로운 시간을 샀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남는 "시간"에는 진정 하고 싶은 일과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었지요. 시간은 소비재이며, 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살 수 없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요. 


<물건이 아닌 경험을 자산으로 삼는다>

요즈음 공유경제와 구독경제가 활발해지면서, 물건이 아닌 경험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의 병폐에 비춰볼 때, 이는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여겨집니다. 미니멀리스트 시부는 집세를 합쳐서 월 7만 엔(70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직접 경험을 얻기 위한 여행과 간접 경험을 얻기 위한 책에는 아낌없이 돈을 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댄스 레슨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고 말하지요. 미니멀 라이프를 선호하는 저는 이와 같은 트렌드에 깊이 공감합니다. 인생에서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은 경험입니다. 똑같이 국토종주를 했더라도, 나의 국토종주는 너의 국토종주와 다릅니다. 세상에 나와 있는 것들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시간과 돈을 소유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소유하지 않고서도 다양한 것들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건이 경험보다 앞서는 풍조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사회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까? 20세기에는 오늘날의 따릉이보다 못한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행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국토종주를 위한 자전거도로가 멋지게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두려움에 섣불리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나아가서 여행을 "조금" 더 편하게 해 보겠다는 심산에 이것저것 장비들을 구매하다 보면 결국 나중에는 처치곤란에 빠지곤 하지요. 차라리 무식하게 오늘 저녁에 근처 자전거포에 가서 (로드 바이크가 아닌) MTB 자전거 가운데 가장 저렴한 것을 구매해서 주인 양반의 세심한 세팅을 받은 뒤에 주머니에 신용카드와 스마트폰 하나 꽂고 트랭클이나 카카오맵 같은 지도 하나 다운로드하여서 다음날 새벽에 곧바로 떠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차피 길 떠나면 고생인데 왜 이렇게 물건을 "소유"하지 못해서 걱정이었을까요. MTB 자전거를 사용하면 "잘 닦여진" 국토종주 자전거길에서는 펑크 한 번 나기 어렵습니다. 그냥 부모님께서 주신 허벅지와 여행에 대한 호기심만 가지고 가면, 나머지는 절로 해결이 될 텐데 말이지요. 만약 경험이 자산이 되는 세상이라면, 편하게 다녀오는 여행은 자산으로도 상품으로도 별 쓸모가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참으로 재미있게도 타인의 험난하고 좌충우돌하는 경험을 좀 더 즐기게 되어 있거든요. 예컨대 미끈하게 빠진 수백만 원짜리 로드 바이크로 다녀온 국토종주보다는 무려 "수동" 킥보드로 다녀온 국토종주가 더욱 감탄을 자아내지 않습니까? 기억에도 더 많이 남을 것 같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6aQsd8ib8-A


<남는 돈은 타인에게 계속 돌리자>

이기주의자를 자처하는 미니멀리스트 시부는 사실 타인에 대한 애정이 적지 않은 휴머니스트입니다. 그는 "미니멀리스트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생활비가 파격적으로 줄어 돈이 남기 시작했다. 돈을 통장에 재워두는 건 쓸모없는 짓이다. 그런 생각에서 나는 사람에게 돈을 돌리기로 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미니멀 라이프를 살던 초반에는 자신에 대한 투자에만 신경을 썼지만, 어느샌가 자신에게 돈을 써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나 자신에게 돈을 써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SNS 기획행사를 열어 맥북을 선물하기도 하고, 미니멀 라이프를 알리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취재에 응한 분들께 사례비도 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노력은 결국 시부 본인에게도 득이 될 터입니다. 하지만 시부가 자신의 세력 확장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사사키 후미오 등 기타 미니멀리스트들의 저서에서도 미니멀 라이프를 살면서 남는 돈과 시간의 여유가 타인과의 관계에 투자되는 과정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니멀 라이프는 나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삶을 찾는 과정임과 동시에 타인에게도 눈을 돌리고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바람직한 라이프스타일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미니멀리스트, 이기주의자입니다>는 이 외에도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실질적이고 다양한 경험과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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