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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조깅, 시속 10km의 마법

슬로 앤 미니멀 라이프스타일 제안

크리스토퍼 맥두걸의 베스트셀러인 <본 투 런>은 모든 인간이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모두 달리기를 싫어합니다. 미취학 아동의 경우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걷기보다는 뛰어다니는데, 어째서 당장 고등학생 아니 중학생만 되어도 달리기가 끔찍해지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오직 속도와 경쟁만을 중요시하는 공교육 시스템이 가장 큰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달리기 하면 "얼마나 빠르게 달릴까?"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해진 거리를 얼마나 빨리 들어오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점수를 부여받았습니다. 비행기와 KTX가 있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기껏해야 1.5km를 몇 초 더 일찍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보다 높은 내신 성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체력장"이 대표적인 사례이죠. 이 때문에 우리는 달리기 하면 숨이 턱까지 닿을 정도로 뛰어야만 하며, 달리기를 마치고 나서는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내쉬며 꼼짝도 못 해야 하며, 달리기를 마치고 나서는 며칠 동안 허벅지와 종아리, 발목이 아파서 끙끙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아프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달리기를 싫어할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오늘날에는 마라톤에서도 sub4니 sub3니 하면서 정해진 마라톤 거리를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들어오려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 때문에 전문 체육인이 아닌 일반인이 구비하는 운동화도 20만 원이 훌쩍 넘고 기타 "장비빨"이 치열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부상을 당하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제 부상은 기본이고, 다만 부상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러닝을 즐겨하는 사람들의 관심사입니다.


이와 같이 속도와 경쟁에 오염되고 중독된 사회에서 "슬로 조깅"을 하자는 주장은 되게 "없어" 보입니다. "뭐라고? 아침에 공원에서 총총걸음으로 뛰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달리라고? 어디서 모양 빠지게." 어김없이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멘트들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슬로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를 즐기고자 하는 제게는 슬로 조깅만큼 "부상 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없습니다.

우선 러닝과 조깅을 구분해 봅시다. 사실 러닝과 조깅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조깅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충분히 즐기고 옆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이며 호흡이 가빠지지 않는" 페이스의 달리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호흡이 가빠지거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조깅이 아닌 러닝입니다. 이 때문에 조깅과 러닝의 경계는 개인차가 있습니다. 속도만을 놓고 보았을 때, 킵초게에게는 조깅이 제게는 러닝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9crAncK_YI 


그렇다면 제가 러닝이 아닌 조깅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조깅은 당이 아닌 지방을 태움으로써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며 크게 힘이 들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본 투 런>에서 켄 마이커크가 한 말을 빌려봅시다. "주자들은 당을 태우는 방식으로 훈련한다. 하지만 이것은 장거리 주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일이다. 우리 몸에는 캘리포니아까지 달리기에 충분한 지방이 있다. 그러니까 당 대신 지방을 태우게 몸을 훈련시킬수록 한정된 당 탱크가 더 오래갈 것이다." 크리스토퍼 맥두걸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지방을 연소시키는 방법은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동안 유산소 역치(숨이 차는 지점) 아래 머무는 것이다. 무분별하게 빨리 달리면 즉시 고통이 정강이까지 올라와서 속도를 늦추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무거운 무게를 드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무산소 운동, 그리고 마라톤을 유산소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마라톤 또한 숨이 턱까지 닿게 달리면서 근육을 쓰면 무산소 운동입니다. 크리스토퍼 맥두걸의 정의를 제 나름으로 빌려 쓰자면, 기록 경신을 위한 "러닝"은 무산소를 동반한 유산소 운동인 반면에, 숨이 차지 않는 "조깅"은 철저히 유산소 운동입니다. 다시 말해서 슬로 조깅을 하면 제 몸속에 축적된 지방을 태우게 되며, 이에 따라 달리는 도중에 급속하게 에너지바나 포도당젤과 같은 부스터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슬로 조깅은 당을 태우는 대신 지방을 태우며, "고통이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위험을 막습니다. 유산소 역치(숨이 차는 지점) 아래 머무는 것이 핵심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5Zrpy6B7a8


제가 러닝이 아닌 조깅을 좋아하는 이유 두 번째는 조깅은 속근이 아닌 지근을 사용함에 따라 피로와 부상이 적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슬로우 조깅 건강법>을 쓴 다나카 히로아키 교수의 말을 들어봅시다. "우리 몸은 가느다란 섬유(근섬유)의 다발입니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두 개의 섬유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은 속근과 지근입니다. 속근은 빠르게 수축하여 순발력이 뛰어나지만 젖산이 쌓이기 쉬운 섬유입니다. 반면 지근은 수축은 느리지만 지구력이 뛰어나고 젖산이 잘 쌓이지 않습니다."(11쪽)

우리가 운동할 때 다리를 포함한 온몸이 무거워지고 피로가 급격히 증가하는 까닭은 젖산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속근이 아닌 지근만을 쓴다고 해서 젖산이 쌓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록 경신을 위해서 조깅이 아닌 러닝을 하다 보면, 지근이 아닌 속근이 많이 사용되어 젖산이 빨리 쌓입니다. 이 때문에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트랙 위에 뻗어서 움직이지를 못하게 되지요.

이와 관련해서 제가 러닝이 아닌 조깅을 좋아하는 세 번째 이유는 조깅은 "피곤함"이 아닌 "개운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1시간 달리기를 합니다. 저번 주보다 빨리 뛰고자 근육에 힘을 주고 보폭을 넓히면서 러닝을 하면, 운동을 끝내고 나서 피곤합니다. 반면에 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슬로 조깅을 하고 들어와 샤워하고 나면, 온몸에 딱히 아픈 곳도 없고 온종일 개운합니다. 젊은 시절에야 근육통을 훈장으로 여기면서 더 빨리! 를 외쳤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났습니다. 아니, 슬로 조깅을 미리 알았더라면 20대 때부터 훨씬 즐거운 운동 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었겠습니다. 저는 20대에 무리하게 벤치프레스를 하다가 오른쪽 어깨를 다쳐 이제는 더 이상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없으며, 빠르게 달리려다 오른쪽 발목을 크게 접질려서 지금도 빠르게 뛰려 하면 뭔가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시절에는....


그 외에 저는 슬로 조깅을 하면서 동호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비빨 자랑하기"의 악순환에서 벗어났습니다. 지금 제가 아침에 5km나 10km를 슬로 조깅하면서 신는 신발은 홈플러스에서 구입한 1만 원짜리 가벼운 매쉬 소재 러닝화입니다. 전족부(앞발) 착지법을 익히면, 뒷굽에 두꺼운 쿠션이나 카본이나 에어젤이 필요 없습니다. 신발의 무게는 확실히 가벼운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적어도 1만 원짜리 매쉬 러닝화를 신으면서도 족저근막염이나 아킬레스염이나 기타 근육통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르게 뛸 뿐인데 어떻게 저와 같은 무시무시한 병들이 제 발을 습격하겠습니까. 하지만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이 신는 고가의 러닝화를 신고서도 항상 부상을 달고 다니는 러너들은 많이 보았습니다. 달리기를 좋아하시는 "일반인"들은 누구나 "아프지 않고 달리는 게 최고"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하지만 저는 슬로 조깅을 하지 않을 경우, 부상은 개인의 능력 고하를 막론하고 절대 피할 수 없는 상수라도 생각합니다. 최고의 의료진들과 스텝의 관리를 받는 세계적인 마라토너들인 베켈레나 킵초게도 부상에 시달리는데, 일반인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스탠퍼드 대학 육상팀 수석코치인 빈 래나나는 1980년대에 이미 이렇게 말했습니다. "팀을 위해 값비싼 신발을 주문한 적이 있습니다. 2주 만에 족저근막염과 아킬레스건 부상이 전에 없이 늘어났어요. 그래서 신발을 돌려보내고 값싼 신발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항상 값싼 신발을 주문해요. 인색해서가 아니라 선수들이 빨리 달리게 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내 본분이기 때문입니다."(<본 투 런>, 261쪽) 42.195km 마라톤 풀코스를 뛸 때에는 신발에 관한 사정이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프로 육상선수들도 조깅화와 러닝화를 따로 구분해서 신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건강상 슬로 조깅을 할 때에는 비싼 신발을 염두에 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결국 슬로 조깅은 슬로 라이프뿐만 아니라 미니멀 라이프에도 맞닿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슬로 조깅의 속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심지어 달리기 경력이 늘어나면 개인의 조깅 속도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2021년 7월 현재 저는 5km 30분, 10km 1시간을 제 슬로 조깅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시속 10km이지요. 이 기준보다 더 느리게 뛰려고 노력할지언정 결코 더 빨리 뛰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저렇게 기준을 세운 까닭은 "외우기 편해서"입니다. 시속 10km라고 딱딱 떨어지는 숫자로 해놓아야, 저같이 기억력이 나쁜 사람도 쉽게 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km를 1시간이라고 하면 달리기를 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부담을 느끼실 수도 있지만, 달리기를 하는 분들에게는 그야말로 "거북이걸음" 그 자체입니다. 제가 아침에 종종걸음으로 달리고 있다 보면, 대부분의 러너들이 저를 앞질러 달려가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오버페이스를 해서는 안 됩니다. 주변 환경을 즐기면서 호흡을 망가뜨리지 않고 즐겁게 따박따박 한 걸음씩 더 나아가야 합니다. 매일매일 무리하지 않고 즐겁게 5km나 10km를 뛰면 성취감도 남다를뿐더러 몸 또한 개운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 경신의 재미가 없으면 달리기를 평생 취미로 삼기 어렵다." 저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기록을 당기려고 노력하는 대신, 뛰는 장소들을 다양하게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은 중랑천에서, 돌아오는 주말에는 뚝섬유원지에서 달리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이미 슬로 조깅을 다양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게 배려한 책 또한 출판되어 있습니다. 러닝전도사 안정은 님이 쓰신 책이네요.

서울만 해도 달리는 방법이 100가지가 있는데, 10km 슬로 조깅이 지겨울 새가 어디 있겠습니까. 살다 보면 새로운 코스도 자꾸 개발될 것이고 말이지요. 그리고 슬로 조깅 주력이 늘어서 50km나 100km도 크게 힘들지 않은 수준까지 올라간다면, 이제는 울트라 마라톤의 형식을 빌린 슬로 조깅으로 팔도강산을 다 누빌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저도 아직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슬로 조깅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서 해운대 해수욕장 바닷물에 뛰어드는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달리기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며, 심지어 자신과의 경쟁도 아니어야만 합니다. 달리기는 오직 순수한 즐거움이어야만 합니다. 즐겁게 뛰다가 힘들면 쉬고, 다시 신나게 발걸음을 옮기는 기쁨의 순례여야만 합니다. 달리기를 타인과의 경쟁과 분리시키는 러너들도 결국 "자신과의 싸움"을 중시합니다. 왜 자신과 싸워야만 할까요? 한 번 사는 짧은 인생,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만큼은 좀 싸우지 않고 즐겨도 되지 않을까요? 24시간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순간만으로 채워가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슬로 조깅은 참으로 즐거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kslRQJLI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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