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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3 홍콩 자가격리 6일 차

슬로 앤 미니멀 라이프스타일 제안

글 제목에 "자가격리 6일 차"라고 입력하다가 흠칫 놀랐습니다. 8월 8일 23:00에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해서 8월 9일 4시가 넘어 입실했으니, 호텔에 묵기 시작한 기간으로 따지면 5일 차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꽤 잘 해내고 있네, 하는 심정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침 4시 반에서 5시에 기상했었는데, 신기하게도 여기서도 어제와 오늘 5시에 기상했습니다. 1시간의 시차가 있으니, 한국 시각으로는 6시가 되겠지요. 여하튼 몸이 서서히 적응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객실에서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환기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땀을 흘리며 운동까지 하게 되면 지내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벼운 달리기라도 시작해야겠습니다. 얼마 전 끝난 2020 도쿄 올림픽 마라톤에서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지난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엘리우드 킵초게, 왠지 이름만 들어도 잘 달릴 것 같습니다. 우사인 볼트가 그런 것처럼 말이죠. <본 투 런>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감옥 안에서 하루 10km 이상 제자리 달리기를 했다고 합니다. 달리기 앱인 NRC(나이키 러너 클럽)을 켜고 제자리에서 달려도 거리 측정이 가능한지 오늘 저녁에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9crAncK_YI&t=25s 


"당신은 곧 당신이 먹는 것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건강을 고려한 측면에서 나온 말이지만, 음식의 종류가 곧 사람의 체취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한국인과 터키인, 미국인과 인도인은 평소에 주로 먹는 음식으로 인해 서로 다른 체취를 지닙니다. 한국에서 간 북파 간첩들은 그 체취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 발각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몸에서 "고기 냄새"가 지나치게 많이 난다는 것이지요. 저는 호텔에 4일 동안 머물면서 12끼 식사를 했습니다. 동일한 간장 베이스에 식재료만 조금 바뀐 식단이어서, 그 향은 사실상 차이가 없습니다. 이제 제가 제 체취를 맡아보니, 바로 그 간장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나옵니다. 물론 4일 정도 먹었다고 해서 체취가 금방 바뀔 리가 없지요. 환기가 금지되어 있는 제 방에 배어 있는 간장 냄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방 전체가 간장 냄새로 절여졌다면, 제 체취가 두드러지게 다른 향을 내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래서 저는 오늘 아침부터 가급적 반찬에 해당하는 육류를 물에 씻어서 먹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진한 간장 소스는 몸에 좋지 않거니와, 벌써 물려버렸습니다. 그래도 단백질 섭취는 중요하니, 육류 섭취를 꺼리지는 않겠습니다.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충분히 섭취하기 위해 쌀밥은 남김 없이 먹되, 호텔에서 제공하는 나머지 음식들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지니고 골라서 먹고자 합니다.   


저는 본디 치아가 매우 튼튼한 편입니다. 지금도 충치 하나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딱히 달지도 않은 밀크 티를 홀짝 홀짝 마시는데도 이빨이 간질간질한 것이 심상치 않습니다. 밀크 티는 끊을 수 없단 말입니다!!! 저는 이래저래 연구한 끝에, 호텔에서 제공되는 치약의 성능이 매우 떨어진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말하자면 치약의 향은 지니고 있되, 충치 보호 등의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어제 저녁에 한국에서 가져온 치약을 써서 양치질을 하니, 아니나다를까 이빨이 간질거리는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9월에는 <웰컴 마트> 등의 홍콩 할인마트에 가서 치약을 넉넉히 구매해야겠습니다. 홍콩은 생필품 가격이 한국보다 비싸다고 합니다. 대량 구매를 해서 보관할 장소도 없기 때문에,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필요할 때마다 사서 쓰기로 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minbeom123/222024211549


환자 유동식을 닮은 아침 식사를 마쳤습니다. 홍콩은 1회용 용품의 가격이 매우 비싸다고 들어서, 오늘부터는 하루 세 번 제공되는 플라스틱 수저를 뜯지 않고 보관하기로 합니다. 궁상맞기도 하지만, 비용을 절감하고 환경 보호도 되니 나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가급적 기존에 쓰던 수저 한 벌을 씻어서 사용할 예정입니다. 한 숨 돌리고 나서 <푸드 판다> 앱을 켰습니다.

21일 자가 격리 기간 동안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푸드 판다>에서 신선한 야채와 과일 및 기타 용품을 주문했습니다.  

알고 보니, 후지 사과는 "중국산"이었습니다. 이름만을 보고 일본에서 재배한 것이라고 제가 착각했었습니다. 알고 보니 품종명이었군요.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터라 호기심이 일어 주문했습니다. <판다 마트>의 배송은 언제나처럼 총알 같습니다. 스마트폰을 놓고 컴퓨터에서 작업을 좀 하고 있자니 벌써 제 현관벨이 울립니다.

당근, 중국 상추, 홍콩 스타일 밀크 티, 사과 4개, 토마토 3개, 그리고 치약이 주문서대로 도착했습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근무할 예정이며, 식사는 모두 밖에서 해결할 계획입니다. 어차피 제 숙소에는 조리가 가능한 공간이 없고, 홍콩까지 와서 집밥을 해먹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채로운 요리를 맛보고 싶거니와, 대학구내식당이나 야시장에서 먹는 편이 오히려 저렴하기도 합니다. 배달물들을 미니 냉장고에 상남자 스타일로 아무렇게나 쌓아놓습니다. 싱싱고가 왜 없냐고요? 가혹하십니다!

오늘 점심식사 때부터는 날것의 채소를 조금씩 곁들이기로 합니다. 왜 과일 대신 즉석라면을 간식으로  먹으려 했었는지 후회스럽습니다. 뭐, 이러면서 배워나가는 것이겠지요. 라면은 사 두면 결국 다 먹게 되니까 걱정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맥주는 매일 마시게 될 줄 알았더니, 전혀 당기지가 않네요. 자가격리 해제 즈음에서 기념으로 목구멍에 털어넣어야겠습니다. 정리를 마치고 나니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홍콩의 여름비가 추적추적 떨어집니다. 지금 홍콩의 빗방울은 매우 굵은 것이 거의 우박에 가깝습니다. 싸락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25층에서 내려다보니 저층에 사는 주민들이 베란다에 널어놓았던 빨래를 황급히 거두는 장면이 여럿 보입니다. 건조 기능까지 갖춘 세탁기가 구비된 호스텔에서 살면 참 편하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제가 보니 세탁 비용도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12시 30분에 회의를 마치자 마자, 점심 식사를 알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일단 냉장고에서 상추를 꺼내어서 두 포기 가운데 하나를 정성스레 씻었습니다. 그리고 1/2 가량을 덜어내어 오늘 점심 식사에 곁들이기로 합니다. 나머지는 포장백에 싸서 다시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호텔 측에서 제공한 식사야 항상 똑같지요. 예상이 쉽게 되니 좀 지겹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날것의 채소를 더하니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삶은 당근과 양배추, 흰 쌀밥, 소스에 버무린 닭복음과 토마토, 그리고 신선한 상추 세트가 완성되었습니다. 밥과 고기를 상추에 싸서 쌈밥 형식으로 먹으니 감탄이 나왔습니다. 마치 감옥에서 사식을 받거나 육군훈련소에서 특식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비록 교도소에 가 본 적은 없지만 말이지요. 제 지인에게 이 사진을 보내니, "요즘 초등학교에서 저런 식으로 식사를 내오면 학부모들 항의 들어온다."고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지당한 말입니다. 항의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겠지요. 하지만 호텔에 강제수용된 제 입장에서는 이 정도의 "소확행"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만했습니다. 냉장고에서 상추를 더 꺼내어 옵니다. 다음 번에는 좀 더 다양한 채소들을 주문해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선한 채소만 곁들여도 벌써 속이 편안하고 입에서 단내가 덜 납니다. 홍콩에서 난데없이 "고독한 미식가"를 찍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으로 주책맞습니다. 겨우 풀떼기 몇 개 보탠 것을 가지고 너무 앞서나갔습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연한 소스가 나오는 날에는 음식 용기를 깨끗이 씻어서 채소를 담는 용도로 사용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나저나 채소의 가격이 다소 아쉽습니다. 한국의 제 집 근처 식자재 마트와 비교할 때 2배 가까이 비싼 듯합니다. 나중에 제 숙소 근처 로컬 청과물 시장을 방문하면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겠지요.


상추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면서 홍콩 뉴스를 좀 찾아보았어요. 원래 홍콩은 전 국민이 맞을 수 있는 화이자 백신을 확보해두고 외국인들에게도 백신 무료 접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홍콩 시민들 가운데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분들이 적지 않아서, 접종률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확보하고 있는 화이자 백신의 유통 기한이 8월 말까지라서 그 이후에는 어찌될 지 모른다는 것이 홍콩 정부의 입장이었지요. 저는 본디 8월 17일에 한국에서 화이자 백신 접종이 예약되어 있었어요. 결국 맞지 못하고 홍콩에 오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홍콩에서 내 돈 내고 백신을 맞아야 하는 것인가 은근히 걱정도 되었지요. 그런데 며칠 전 뉴스를 보니, 홍콩 정부는 무료 백신 접종 프로그램을 10월 말까지로 연장한다고 발표했더군요. 저는 다행스러운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https://www.scmp.com/news/hong-kong/health-environment/article/3144141/coronavirus-hong-kong-extends-vaccination-scheme

이와는 별도로 지금 홍콩의 대학가 분위기는 자못 삼엄합니다. 홍콩과기대학은 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학생들은 캠퍼스 출입을 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물론 몇 달 전에 미리 발표하기는 했지요. 그 외 홍콩 여러 대학들에서도 강도는 낮지만 나름 엄격한 방역 규정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게 될 대학은 아직까지는 별다른 말이 없지만, 백신 접종을 지 않은 이들에게 현실적인 불이익을 주는 정책들이 조만한 시행될 확률은 매우 높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홍콩 정부가 9월 말까지 70% 접종률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콩에서 백신 접종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홍콩 아이디 카드를 소지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제가 자가격리를 끝낸 다음날에 신청해서 받는다 하더라도 9월 말까지 2차 접종까지 받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것 같습니다. 홍콩 거주민들은 중국산 화이자 백신과 시노백 백신 가운데 하나를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맞을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9월 말까지 2차 접종까지 끝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볼까 합니다.

https://www.scmp.com/news/hong-kong/health-environment/article/3144357/coronavirus-hong-kong-extends-vaccination-walk?module=perpetual_scroll&pgtype=article&campaign=3144357


어제부터는 식사할 때 해외여행 유튜브를 보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 제 몸은 홍콩에 있지만 저의 최애 국가는 태국입니다. 이 예사롭지 않은 시기에 태국을 여행하며 한국인들의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있는 여행 유튜버들이 적지 않습니다. 태국의 경우, 저는 "정원의 세계여행"과 "트립콤파니" 그리고 "리건우' 채널을 구독해서 보고 있습니다. "정원의 세계여행"의 주인장은 사진작가인데 몇 년 전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여러 곳을 떠돌다 방콕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 발이 묶여 버렸지요. 물론 한국으로 돌아올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그는 결국 태국에 남기로 합니다. 그는 제 취향의 "짠내투어" 중인데, 굉장히 진솔하고 겸손하며 가식이 없습니다. 저는 가식이 없는 유튜버를 좋아합니다. 그는 지금도 태국 시골 여행 중인데, 구독자가 어느덧 10만 명을 넘겼으니 이제 전문 유튜버로 활동해도 되실 듯합니다. 그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c/melar/videos

"트립콤파니"의 주인장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여행 유튜버로 활약 중이었는데, 2020년 이후 한동안 채널의 방향에 대해 고심하다가 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태국 시골인 콘깬에서 콘도를 얻어 살면서 다양한 콘텐츠들을 생산 중입니다. 이 분 또한 가식이 없고 조곤조곤하게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해 주십니다. 아마추어적인 분위기는 덜 하지만, 태국 애호가들이 즐겨 찾을만 한 채널입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0EQX5Z2TlaKeIw4O3ieZAQ

"리건우" 채널의 주인장은 이 가운데 가장 좌충우돌하고 개성이 넘치는 분입니다. 미리 계획을 세우거나 급한 경우가 없습니다. 자전거 여행 다큐를 제작하고 계시는 능력자이신데,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과 대만, 그리고 태국을 자전거여행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유튜버들처럼 "간지 나게" 준비하여 블링블링한 화면으로 아무 고생도 하지 않는 것처럼 럭셔리하게 다니지 않습니다. 이분이야말로 진짜 레알 "날 것" 그대로입니다. 이 정신 나간 사나이는 돈므앙 공항에 내려서 자전거를 조립한 뒤 그대로 숙소까지 자전거로 이동합니다. 미리 계획된 행동이 아닙니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태국을 여행하신 분이라면 한밤중에 돈므앙 공항에 내려서 난생 처음 보는 도로를 자따라 자전거를 타고 숙소까지 가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위험한 일인지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옆으로는 아슬아슬하게 태국의 택시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어떻게든 해냅니다. 그는 숙소도 정해놓지 않고 태국 시골을 여행하다가 경찰서에서 몇 번이나 잠을 청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 정말로 좋습니다. CG로 떡을 친 액션 영화에서 스릴을 느끼시지 못하는 분이라면 아래 영상을 보시고 아드레날린을 뿜어내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m28ntY8hCw

끝으로 제가 앞으로 15일은 더 보게 될 홍콩의 밤 사진으로 오늘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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