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수면을 취해야 하는데 지난밤에도 늦게 잤습니다. 그러면서 또 5시에 일어났네요. 아직 자가격리 5일 차밖에 되지 않아서 그럴까요? 저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그다지 불편하지가 않습니다. <올드 보이>의 오대수라면 꽤나 심심했을 터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한국 코로나 확진자 숫자를 확인하고 화상 전화로 가족 및 지인들과 연락을 취하는 시대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러다가 17일 차 정도 되면 폐인 모드에 들어갈 수도 있지요. 하지만 지금의 감정을 일단 솔직하게 적어놓는 편이 좋겠네요. 아, 제가 8월 29일부터 9월 30일까지 33일 동안 개인 욕실이 포함된 싱글 룸에서 살게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가격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듯합니다. 홍콩의 물가는 살인적이니까요. 저는 서비스 비용을 포함해서 USD 572.08를 지불했습니다. 한화로 약 60만원 정도 되겠네요. 제가 묵게 될 방 사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이 숙소는 며칠 사이에 '한 달 체류 가격'이 100만원으로 새로이 세팅되었습니다. 이렇듯 가격 변동을 전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수시로 체크하는 편이 낫습니다. 제 숙소는 조던 역 근처에 있으며, 침사추이 청킹 맨션에서 머무실 경우 개인 욕실이 딸린 싱글룸을 좀 더 저렴하게(60만원 이하로) 구하실 수 있을 터입니다. 하지만 장기 체류의 경우, 그 선택을 권하고 싶지는 않네요.
5일 차 아침식사는 닭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한 라면과 빵이 나왔네요. 소스가 동일하면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의 맛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빵에 발라 먹을 잼이나 버터가 같이 제공되었으면 더 좋았을 듯하네요. 아침에 라면을 먹은 셈이니, 오늘은 추가로 라면 간식을 먹지 않기로 합니다... 라고 아침에는 생각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밀크 티를 마시니, 그래도 살 것 같습니다. 커피를 마시지 않기에 대안으로 구입한 "비타 홍콩 스타일 밀크 티"가 생각보다 꽤 괜찮습니다. 홍콩 밀크티는 달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이 심심한 맛이 은근히 끌리네요. 24개를 주문했는데, 다 마시고 난 뒤 추가 구매 예정입니다. 푸짐한 요리를 시킬 생각은 없지만, 홀짝홀짝 밀크티는 언제나 환영이지요. 몇 년 전만 해도 커피를 하루에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던 저는 이제 커피 알레르기(카페인 알레르기라고 하는 편이 낫겠지만, 녹차를 마시면 또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커피 알레르기라고 저는 부릅니다)가 생겨서 좋아하던 음료를 더 이상 즐길 수가 없습니다. 홍콩에 오면 백종원이 주문했던 "동윤영"을 마시고 싶었지만, 이제는 커피가 섞인 음료를 마실 수 없습니다. 좀 슬프긴 하지만, 대안으로 더 맛난 음료를 발굴하는 재미를 즐기기로 했습니다.
홍콩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채식 열풍이 불고 있다 합니다. <푸드 판다>나 <우버 이츠>에도 베지테리언 식단이 별도의 카테고리로 제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과일과 채소를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다가 최근에 좀 즐겨 먹는 편입니다. 진한 소스를 좋아하지 않아서, 가급적이면 로푸드(raw food, 날 것)로 먹기를 즐깁니다. 베지테리언 레스토랑의 메뉴들은 대부분 맛이 매우 진해서 썩 끌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또 진한 맛이 당길 때가 있지요. 자가격리 해제 이후 놀러 갈 채식 뷔페를 검색하다가 <走肉·朋友>라는 멋진 레스토랑을 발견했습니다. 2020년 11월 기준으로 점심시간 동안 68HKD(홍콩 달러, 1만 원)에 채소 요리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숙소에서 3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걸어가면 40분이 채 걸리지 않을 듯합니다. 아래 블로그에 매우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는데, 저는 저 정도로 자세하게 쓸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9월 1일 정식 출근 이전에 한 번 찾아가 볼 예정입니다.
오늘은 10월 한 달 동안 묵을 숙소를 예약 및 결제했습니다. 9월 내내 살 숙소(위에 언급한 조던 역 근처 숙소)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불행히도 10월부터는 이미 다른 예약이 다 차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침사추이 역 근처의 호스텔에 한 달 동안 묵기로 했습니다. 마음에 든다면 더 오래 머물 수도 있고요. 제가 11개월 동안 홍콩에 머무르게 되니, 지금 묵고 있는 호텔을 포함하면 12곳의 숙소에서 머물 수 있습니다. 에어비앤비의 경우 월 단위로 계약하면 할인을 해 주는 숙소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최소 한 달은 살아야 하겠지요. 뭐, 아무리 노마드 생활을 꿈꾼다 하더라도 1년 동안 12번 숙소를 옮겨 다닐 생각까지는 없습니다. 제가 가장 가고 싶었던 몽콕 역 근처의 숙소를 운영하는 주인은 "슈퍼 호스트"인데, 방이 비게 되면 제게 꼭 알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친절이 고맙기도 했거니와, '아, 에어비앤비 홈페이지에 올리기 전에 이렇게 비공식적으로 먼저 계약이 되는 경우가 잦는구나. 그 때문에 내가 홈페이지에서 방이 비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예약을 넣어도 "not available"이라는 답장이 계속 왔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일단 슈퍼 호스트라면 믿고 투숙할 수 있지요. 그에게 연락이 온다면 최소 3개월은 묵을 생각입니다. 또 하나, 제가 A라는 숙소를 체크아웃하는 날은 B라는 숙소에 체크인하는 날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제가 생각이 짧아, 9월 말에는 목요일에 체크아웃과 체크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한창 일하고 있을 때이지요. 이것 또한 소중한 경험입니다. 일단 기존에 묵던 숙소에 짐 보관을 부탁했다가 업무가 끝나고 귀가한 뒤 짐을 가지고서 다음 숙소로 이동해야만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체크아웃 & 체크인할 수 있도록 날짜를 세심하게 고려해야겠습니다. 저의 2번째 에어비앤비 숙소는 침사추이 구룡공원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퇴근한 뒤 산책하기 매우 좋습니다. "스타의 거리" 등 명소까지 걸어가는 데에도 크게 어려움이 없고요. 직장으로부터는 좀 더 멀어지겠지만, 많이 걸으면 운동도 되고 좋지요, 뭐.
부실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일을 하다 4시가 되니 또다시 배가 고파져서, 이번에는 카레맛 즉석라면을 끓여서 먹습니다. 매일 똑같은 간장 소스에 흰밥을 먹다가 카레맛 라면을 먹으니 그래도 좋았습니다. 밀크티로 입가심을 해줍니다. 맨 처음 밀크티를 구입했을 때에는 하루에 1개만 마시려 했는데, 어느샌가 3개씩 따고 있습니다.
5시 반이 되어 식사가 도착했다는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음식을 받아 든 저는 그만 기절할 뻔했습니다. 닭고기를 곁들인 "카레"가 오늘 저녁 메뉴였습니다.
박스가 찌그러져 볼품이 없지만, 솔직히 맛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간장만 먹다가 카레를 먹으니 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카레맛 라면을 먹고 난 뒤 다시 카레 밥을 먹고 있자니, 입과 코에서 카레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양이 많아서 다 먹지도 못했습니다. 환기가 되지 않는 방안에는 카레 향이 가득 찼고요. 결국 식사를 마치자마자 비닐에 싸서 밖에 내놓은 뒤, 방문을 미친 듯이 열고 닫아 환기에 주력했습니다.
양치질을 마친 뒤 침대 머리맡에 앉아서 숨을 돌리자니,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2006년 5월 21일 자 <신 도모토 쿄다이>에 나와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여자 친구가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요리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카레!"라고 답했고, "어떤 종류의 카레를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에 "엄마가 해 준 카레가 가장 좋습니다."라고 그는 대답했지요. 키무라 타쿠야와 함께 일본 최고 인기남 1위를 주고받았던, 그리고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도 여전히 5위 밖을 벗어나지 않는 그가 좋아하는 것은 "엄마 카레"였습니다. 제 어머니께서도 정말 맛있게 카레를 만드십니다. 비록 여름에는 더워서 카레를 먹지 않지만, 가을만 되어도 냄비 가득 카레를 만들어서 온 가족이 함께 식탁에서 잘 익은 김치와 함께 먹곤 했습니다. 호텔에 감금되어 있어서 그런지, 어머니와의 평범한 저녁 식사가 몹시도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