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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1 홍콩 자가격리 14일 차

홍콩 라마다그랜드 뷰호텔

안녕하세요. 자가격리 관련 지난 글이 11일 차였으니, 3일 만에 글을 쓰게 되었군요. 오늘은 홍콩 자가격리 12일 차입니다. 16:8 간헐적 단식을 재개했기 때문에 아침 식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단을 보니 닭고기 국물에 면, 그리고 모닝롤 하나였습니다. 모닝롤은 간식으로 챙겼고, 면은 먹지 않고 반납했습니다. 10시 반이 되니 코로나 검사를 하러 오셨습니다. 이번에는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지만, 바쁜 분들에게 차마 과정을 촬영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검사는 1분 내로 끝나버렸고, 저는 책상에 앉아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닝 롤과 밀크 티를 곁들여 가벼운 브런치를 가졌는데, 그 뒤로 속이 좋지 않았습니다. 밀크 티야 냉장고에 있었으니 상했을 리는 없고 모닝 롤을 의심해 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별 탈 없었는데 갑자기 호텔의 관리 상태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40대 남성이 환기가 금지된 객실에서 10일 이상 머물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여하튼 배가 편치 않아서 일상 업무를 멈추고 잠들 때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뭔가 삶의 자극을 받고 싶어서 <직업의 모든 것<휴먼 스토리><30대 자영업자 이야기> 등의 유튜브 채널을 몰아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직업이 있고,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의지와 에너지로 코로나 시국을 버텨 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자신의 인생 역정을 과장해서 광고한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분들의 이야기로부터 무언가를 얻어가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저는 제 대학 강의에서 항상 "몸"과 "감정"을 중시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몸은 건강을 포함하며, "감정"은 욕구 및 열정을 포함하지요. 강단에서 문자 놀음하는 사람이 아닌 치열한 삶의 전쟁터 속 전사들은 알고 있습니다. 내 몸이 얼마나 소중하며 내 몸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하는지. 그리고 나 자신의 욕구와 열정, 또한 소비자의 니즈가 사업의 핵심이라는 것을. 적지 않은 도인들은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 자체가 틀리지는 않습니다만, 반쪽짜리입니다. 유교의 "수신"이란, 몸 공부입니다. 여기서 몸 공부란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고자 해서 단백질 보충제와 스테로이드를 다량 섭취하며 "건강하지 않은" 근육질 육체미를 만들어내는 작업, 21세기에 영양 부족 상태로 비쩍 말랐으면서도 인스타그램에 이쁘게 나오려고 애쓰는 행태를 지칭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내 몸을 타인과 비교하여 비하하거나 우 월시 하지 않으며, 외면의 미보다 건강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지칭합니다. 이 때문에 동양철학에서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 해서, 내 몸을 구성하는 요소인 음식이 곧 약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역할을 무엇일까요? 퇴계 이황에 따르면, 마음의 임무는 몸을 돌보는 것입니다. 몸이 정원이라면 마음은 정원사입니다. 만약 마음이 몸을 돌보는 일을 등한시한다면, 곧 "수신"이 깨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몸에 좋은 것만 먹겠다며 몸에 나쁜 것들을 멸시하고 피해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네 몸이 그렇게 약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달고 느끼한 호텔 식사에 완전히 물려버린 뒤로는 남은 기간 동안만큼은 불량식품을 용인하기로 했습니다. 저보다 앞서 라마다 호텔에서 자가 격리했던 후배는 호텔 식사만 했더니 점점 몸이 상하더라고 제게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이제 무슨 뜻인지 알 듯합니다. 호텔 밥이 부실하다기보다는 그냥 인공적인 달착지근함과 느끼함이 제 몸에는 맞지 않는 듯합니다. 만약 제 몸이 거부한다면, 이제 제 마음은 다른 선택을 임의적으로 해야겠죠. 


자가격리 13일 차, 오늘도 간헐적 단식 원칙에 따라 아침 식사는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오전 11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푸드판다 앱에 접속하여 KFC 매장에 들어갑니다. 맥도날드는 이미 한 번 맛보았으니, 이번에는 또 다른 패스트푸드를 맛 볼 차례입니다. 홍콩 KFC는 대체적으로 가격이 맥도날드보다 낮게 형성되어 있는 듯합니다. 2 for 1 행사가 많은데, 사실 한 세트의 가격이 꽤 나갑니다. 그래도 홍콩 물가를 고려하면, 2 for 1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혼자 살면서 왜 2 for 1을 시키냐고요? 하나는 점심때, 다른 하나는 저녁때 먹기 위해서입니다. 

사진을 찍고 나니, 샌더스 대령의 얼굴이 찌그러진 게 왜 이리 웃기던지요. 제 개그 수준이 딱 요 정도인 듯합니다. 

징거버거 2개, 에그타르트 2개, 치킨, 그리고 제가 따로 추가한 으깬 감자가 배달 왔습니다. 냉장고에 밀크 티가 가득하므로, 콜라가 딸린 세트를 주문하지는 않았습니다. 2 for 1이 HKD 69였으며, 으깬 감자 2개는 HKD 12였습니다. HKD 80에 주문 금액이 못 미치면 소액 주문이라 해서 추가로 fee가 붙습니다. 이 때문에 HKD 80을 맞춘 주문이었습니다. 행사 기간이라 배달료는 없었습니다. 

먼저 가장 빨리 상할 것 같은 으깬 감자들부터 해치웠습니다. 저는 달고 짠 홍콩 특유의 맛이 아니길 바랐지만, 역시 불길한 예상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문해서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굉장히 "홍콩스러운" 맛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살면서 한 번쯤 경험은 해 봐야죠. 재구매 의사는 없습니다. 

이제는 제가 한국에서도 즐겨 먹던 것들만 입 속에 쏙~ 넣으면 되겠습니다. KFC 에그타르트를 저는 매우 좋아하지만, 찾아서 먹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그런데 덜 큰 하지 않고 달달한 에그타그트를 하나만 먹고 간식으로 남겨두려 했었으나, 게 눈 감추듯이 두 개를 털어 넣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에그타르트 2개가 모두 장렬하게 전사한 뒤였습니다. 

그래도 아직 점심 식사를 제대로 마쳤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징거 버거를 먹어야만 끝이 나겠지요. 

한국의 징거버거와 나란히 놓고 먹질 않았으니, 맛 품평이야 정확하지 않겠지요. 여하튼 저는 매우 맛나게 먹었습니다. 호텔 식사가 점심과 저녁으로 빅맥 버거나 징거 버거만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솔직히 영양 밸런스가 다른 외식 음식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치킨은 다음날 먹기 위해 단단히 싸서 냉장고에 넣었으며, 이날 저녁 식사 또한 나머지 징거 버거로 해치웠습니다. 

늦은 오후에 제가 학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배가 공주대학교 교수로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퇴계 이황의 차종손인 이치억 박사가 윤리교육과 신임 교수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분과 성균관대학교 이기동 선생님 밑에서 함께 수학했으며, 그분께서 박사논문을 쓰실 때 곁에서 좋은 술친구로 지냈습니다.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유교와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서울에 살면서 은행에 근무할 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뜻밖에 전통적으로 명망 있는 가문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점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퇴계 이황의 종손과 차종손은 개인적인 견해로는 정말로 타의 모범이 되는 명문의 태도를 지키며 살고 계십니다. 아직까지는 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으로 계시지만, 곧 공주대로 옮겨가시겠지요. 치억이 형만큼은 정말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https://blog.naver.com/kstudy0700/222378865155


자가격리 14일 차인 8월 21일 11시에 저는 어제 보관했던 KFC 치킨을 먹었습니다. 뜻밖에도 양이 많아, 오후에 배가 고플 때 나머지를 먹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텔 식사를 너무 먹지 않는 것도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앱으로 태양초고추장을 주문하기로 합니다. 밥에다 고추장을 비벼서 먹으면, 그래도 오늘 저녁 식사부터는 느끼함 때문에 고생할 일은 줄어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꺼번에 2통을 사는 편이 나을까 잠시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일단 하나를 주문해서 먹어보고 추가 주문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 외에... 저는 평소에는 과자를 따로 주문해 먹지 않습니다. 어디 놀러 가서 있으면 집어먹는 정도이지요. 하지만 왜일까요, 몇 년 만에 리츠와 로터스를 제 돈 주고 사서 먹어보네요, 허허. 환기가 금지된 방안 공기가 너무 답답해서라고 납득하려 애쓰지만, 아무튼 자가격리를 2주일 씩이나 했고 이제 7일 남았으니 이 정도 선물은 제게 베풀어야죠. 

태양초 고추장은 저녁 식사 때 개봉할 예정이고, 지금은 로터스를 개봉하여 먹으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거 너무 행복한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홍콩에 오기 전에 매일 10km가 넘게 뛰거나 걸으면서 저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5kg이 빠졌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거르고 공복에 그리 했으니 효과가 컸겠지요. 원래 비만 체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마른 것은 아닌가 주변 사람들이 걱정했습니다. 저는 어차피 홍콩에서 21일 동안 자가 격리하면 "확찐자"가 되어서 나올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죠. 과연 그러합니다. 뭐, 자가격리 해제 이후에 부지런히 걷다 보면 또 빠지겠지요. 오늘은 이까지만 쓰는 편이 낫겠습니다. 로터스는 정말 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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