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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2 홍콩 자가격리 15일 차

홍콩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

오늘은 14일 차 저녁 식사부터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될듯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태양초고추장을 샀기 때문이죠. 비록 호텔에 21일 동안 갖혀 있지만, 그 덕분에 제 입맛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되어서 매우 좋은 학습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초딩 입맛입니다. 단 것을 좋아하죠. 그리고 과일 위주 식단을 주장하는 세계적 영양학자 더글라스 그라함의 <산 음식 죽은 음식>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단 맛을 좋아합니다. 미취학 아동이 케일즙을 선호한다면, 굉장히 드문 케이스이겠지요. 인공 감미료로 단맛을 내는 것이 문제일 뿐, 자연의 단맛은 인간 본성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생채소 및 나물을 매우 좋아합니다. 다만 짠맛을 싫어합니다. 매운 맛이나 단 맛은 문제가 없는데, 짠맛은 제게 맞지 않습니다. 또한 느끼하고 덜큰한 맛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덜큰한 맛에는 단맛도 포함되어 있지만, 홍콩 간장 베이스의 그 짜고 덜큰한 맛에 대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이 홍콩 식단이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지속가능한 식단이 아니라는 점에 공감을 표하실 것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맞지 않네요 ㅠㅠ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 많은 자연인의 삶에 식사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를 마치면 점심 식사를 준비하며,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면 저녁거리를 마련합니다. 저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로 먹는 이야기 외에는 딱히 하기가 힘드네요. 저의 경우에는 강제로 수용되어 있는데, 환기를 금지해놓으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머리가 흐리멍텅해지고 있습니다. 홍콩 정부는 모든 자가격리호텔의 창문을 여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21일 동안 외부 공기를 들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지요. 기껏해야 객실 문을 여닫아서 복도의 탁한 공기를 조금이나마 들이는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공기가 탁해지면 탁해질수록, 머리를 쓰기가 싫어집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는 저는 자가격리 기간이 마음껏 독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본디 의지박약아인 제게 갈수록 탁해져만 가는 실내 공기는 책을 한구석으로 밀쳐버릴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더군요. 여하튼 21일의 자가격리 기간 중 2/3를 마쳤습니다. 남은 일주일 동안 뭔가를 더 해보려고 발버둥치기보다는, 그냥 마음 편하게 감금 기간을 끝내고 나가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4일 차 저녁 메뉴는 다음과 같습니다.

 KFC치킨 가운데 큼지막한 녀석 하나는 저녁 식사를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제 자가격리 글을 꾸준히 봐주신 분들이라면, 저 호텔 메뉴의 맛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금세 파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순창 태양초찰고추장을 쌀밥에 올려 한 숟갈 입에 넣어 보았습니다. 우와! 바로 이 맛이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솔루션이 있었다니! 태양초찰고추장은 제 생각보다 매웠습니다. 그래서 산채비빔밥 먹듯이 퍽퍽 넣어서 비벼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홍콩 간장 베이스의 저 반찬에 손을 대지 않고서도 흰 쌀밥과 삶은 양배추 및 당근, 그리고 치킨 만으로도 매우 훌륭한 식사가 되었습니다. 자가격리가 해제되는 바로 그 날까지, 제가 태양초찰고추장에 의지해서 매일 식사하게 되리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의 유일한 실수는 냉장고에 있는 맥주캔을 꺼내어 "치맥"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고추장에 온 정신이 팔려서, "2차"까지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여하튼 저는 향후 홍콩에서 자가격리하게 되실 한국 분들에게 자기 입맛에 맞는 고추장을 가져올 것을 강력하게 권합니다. 호텔 객실에서 요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간혹 블로그나 유튜브를 보면 객실 내에서 부대찌개를 끓여먹는 장면을 업로드하신 분들도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걸렸다가는 참으로 낭패를 당하실 것입니다. 게다가 호텔의 냉장고는 그 성능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금방 상할 수 있는 반찬을 싸서 오시는 것도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치캔이나 고추장 등은 자가격리의 믿음직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개 주문한 맥주캔은 이제 하나만 남았습니다. 남은 일주일 동안 알콜류를 더 구매할 생각은 없습니다. 객실 공기가 탁해서인지, 기껏해야 맥주 한 캔인데도, 마시고 나면 다음날 아침이 편치 않더군요. 치맥 솔로 파티는 20일차 저녁에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자가격리 15일 차 일요일 아침입니다. 사실 여기서는 요일의 개념이 무의미합니다. 그래도 일요일이라고 깨끗하게 면도합니다. 얼굴에 칼질을 자주 해서 좋을 일이 없지요. 매일 출근해야 한다면 면도를 자주 해야겠지만, 자가격리 기간에는 또 면도하지 않는 꿀맛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면도와 이발을 함께 해치웁니다. 홍콩에 머무는 11개월 동안 제가 욕조까지 딸린 욕실에서 룰루랄라 샤워하며 면도할 일은 다시는 없겠지요. 자가격리 기간이 다시금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오늘 아침 식사를 받아보니, 아! 바로 그 녀석이 왔습니다!

호텔의 식단은 반복됩니다. 영겁의 회귀라고나 할까요! 예전에 저는 이 메뉴를 받아든 뒤 그냥 먹었다가 크게 후회를 했었습니다. 달걀과 옥수수콘, 빵까지는 괜찮았는데, 빵 안에 든 간장범벅 닭고기가 나머지 음식들의 풍미를 모조리 잡아먹었다고 말이죠. 입맛을 완전히 버렸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번에 동일한 메뉴가 나온다면, 빵 사이에 든 고기를 빼버리고 먹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네요. 하지만....저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눅눅한 두 조각 빵에 간장범벅 닭고기가 늘러붙어 떨어지지가 않더군요. 닭고기를 떼어내려고 한참을 노력하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달걀과 옥수수콘, 그리고 밀크 티만 마시고 오전 식사를 끝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원래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데 먹어버리고 말았군요.  


저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맨주먹으로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온갖 곤경을 겪으며 노력한 끝에 그래도 삶이 나아진 케이스를 보는 것을 즐깁니다. <휴먼 스토리><직업의 모든 것><30대 자영업자 이야기> 등이 그와 같은 내용을 담은 유튜브 채널이지요. 유튜브 채널이 공중파나 종편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물론 셀 수도 없습니다만, 저는 유튜브 채널이 좀 더 날 것의 쌈마이 분위기를 제대로 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동일한 대상을 다루면서도 사뭇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죠. 어느 쪽이 옳으냐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자신의 취향이 공중파 쪽이냐 쌈마이 쪽이냐를 헤아려보면 될 일이지요. 그리고 제 취향은 단연코 후자입니다. 저는 깐죽대는 윤종신 개그 스타일, 그리고 막 던지는 장동민 개그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 여자친구는 장동민 개그 스타일에는 아주 질색하지요. 그녀는 유재석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유재석 씨가 얼마나 훌륭한 국민 MC인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행이나 개그 스타일이 제 취향은 아니네요. <무한도전>에서도 저의 최애 캐릭터는 유재석이 아닌 노홍철이었습니다. 참고로 유재석 씨도 초창기 "메뚜기" 시절에는 깐족대는 캐릭터였습니다. 그의 개그 능력이 부족할 리가 없지요. 뭐 하나라도 빠질 경우, 국민 MC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MC로서의 그는 이제 캐릭터가 잡힌 인물입니다.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인이 그에게 바라는 바가 있지요. 교훈과 감동, 훈훈함이 빠지면 유재석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좋습니다. 다만 저는 쌈마이 기질이 농후하니, 그 쪽 방송을 골라볼 따름이지요.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에는 <토담>이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이 카페는 2019년 말, <30대 자영업자 이야기>라는 유튜브 채널에 소개되어 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1년 뒤인 2020년 말에는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유키즈에 카페 사장님이 출연하기도 했지요.  그 동영상 두 개를 함께 비교해서 자신의 취향을 파악해보는것도 즐거운 일 중 하나입니다.

1) <30대 자영업자 이야기>(인기가 폭발하여 총 4편을 촬영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iODOQ_Oads

2) 유키즈

https://www.youtube.com/watch?v=gn2edXvWtg4

이제 동일한 카페에 대해서도 진행자의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비교해서 보면 무척이나 재미있지요. 참고로 제 감성은 이 가운데 전자인 <30대 자영업자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인터뷰 진행자나 게스트 모두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30대 자영업자라는 공통점이 있지요. 하지만 그 외에도 <30대 자영업자 이야기>의 주인장은 인터뷰 센스 및 깐죽대는 스타일이 윤종신을 닮았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제 쌈마이 기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최근 유튜브에는 "백종원 흑화버전", "음지의 백종원" 등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은현장"이라는 유튜버가 있습니다. <후라이드 참 잘하는 집>이라는 프랜차이즈 창업자인데, 38살에 건강상의 이유로 프랜차이즈를 200억 원에 매각하고 지금은 젊은 요식업 창업자들을 위주로 무료 컨설팅을 해주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채널명은 <장사의 신>입니다.

이 분은 직설적인 성격을 숨기지 않으며, 욕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하정우를 닮아 잘생긴 외모를 지녔지만, 100KG에 가까운 몸무게에 옷도 편하게 입고 다니며 오토바이를 몰고 컨설팅 장소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창업해서 말못할 괴로움을 겪고 있는 젊은 창업자들에게 이 분이 컨설팅을 통해 보이는 진정성 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분은 그야말로 공중파나 종편에서 할 수 없는 수위의 솔직함과 욕설을 시전하며 자신만의 유튜브 생태계를 개척한 것입니다. 이 분으로 인해 유명세를 탄 가게 가운데 수제버거 가게 <벅벅>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제가 자주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은 곳입니다. 이 방송을 출국 전에 보았다면 한번쯤 들렀을텐데....저는 햄버거 마니아거든요. 여하튼 쌈마이 기질을 지녔으며 날 것의 방송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장사의 신> 채널에 방문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osUIvMG3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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