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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3 홍콩 자가격리 16일 차

코로나 시대의 사랑

안녕하세요, 홍콩에서 21일 자가격리 중인 알이즈웰 전도사입니다. 알이즈웰은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명대사입니다. 하지만 제게 알이즈웰은 "존재하는 것들은 있는 그대로 모두 좋다"라는 철학입니다. 동양의 맹자와 서양의 스피노자가 이 철학을 내놓은 대표적인 인물이며, 21세기에 이 철학을 가장 제대로 설명하셨고 살아내고 계신 분은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신 "전헌" 교수님입니다. 만물의 존재는 잘못될 수 없고 오직 만물의 생각만 잘못될 수 있으니, 우리는 "나쁨"의 원인을 존재가 아닌 생각에서 찾아야만 한다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전헌 선생님의 강의를 촬영한 희귀한 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jB6BVf2Q18


제게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외조카가 한 명 있습니다. 지금 중학교 1학년인데, 말레이시아에 유학 중이지요. 부모가 옆에 없는 상황에서 홀로 유학하는 가운데, 사춘기를 맞아 다소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내고 있지요. 여동생 부부는 주말에 어머니와 제가 사는 집을 자주 방문했고, 온 가족은 영상 통화로 조카와 대면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 조카(외조카)는 매우 특이한 습관이 있습니다. 마치 유튜버들이 라이브 방송하듯이 스마트폰을 켜 놓은 채 혼자서 식사하고 양치질하고 복도를 돌아다닙니다. 그러면서 어른들에게 절대로 영상통화를 끊지 말라고 하지요.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조카와 대화도 하지 못한 채, 마치 아프리카 BJ 방송을 보듯이 한 시간도 넘게 조그마한 스마트폰 앞에 붙잡혀 있곤 했습니다. 사실 어른들에게는 곤욕이지요. 조카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애가 숟가락으로 밥을 퍼먹거나 배를 긁으면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조카는 별다른 말 없이 인사를 하고 로그아웃해버리곤 했습니다. 한국의 어른들은 그럴 때마다 박장대소했지만, 매주 돌아오는 이 의식은 사실 좀 짧았으면 하는게 제 바람이었습니다. 


제게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철이 들지 않아 좌충우돌하는 오빠를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제 보물이지요. 저는 정말로 제 여자친구가 보물이자 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것만큼이나 제게 큰 복이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녀의 집안 사정으로 인해 일주일 가량 영상통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아침에서야 비로소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지요. 마음씨 좋은 그녀의 미소를 보니 언제나처럼 좋았습니다. 그녀는 재택 근무 중인데, 오후에 출근하기 전에 마쳐야 할 컴퓨터 작업이 좀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에게 오전 통화는 짧게 하고 저녁 때 다시 통화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제게, 줌 화면을 켜놓은 채 일하겠으니 자기를 보면서 오빠도 일하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제 조카와 같은 케이스여서 잠시 놀랐습니다. 그림책 작가로서 항상 동심을 잃지 않는 그녀와 제 조카의 감수성이 동일한 주파수를 타는 것은 아닐까요. 줌 회의의 경우, 제가 노트북으로 다른 작업을 하면 모니터 한 켠에 조그만 화면으로 전환됩니다. 그래서 저는 노트북으로 제 일을 하면서 가끔씩 눈길을 돌려 그녀의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냥 좋았습니다. 아니, 너무 좋았습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지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제 조카가 무슨 심정으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족들에게 생방송으로 지켜보라고 말했는지 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조카에 대한 제 사랑이 조금은 부족했나 봅니다. 조카의 아빠인 제 매제의 경우에는 한 시간 동안 딸의 일상을 내내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었으니까요. 착하디 착한 제 여자친구는 몇 분 하다가, 오빠 업무에 방해되니 오전은 여기까지 하자며 로그아웃했습니다. 사실 저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문득 한석규와 전도연 주연의 <접속>이 생각났습니다. 제 상황과 영화의 내용은 사실 유사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2021년 코로나 시국에서 국경을 넘어선 사랑(좀 민망하네요)의 방식이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묘한 기분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사이버 사랑이 가능한 걸까요?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허 her>가 생각납니다. AI와의 사랑은 가능한 걸까요?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피와 살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IT 분야에서 돈을 번 사람들은 그 돈으로 물리적 실체가 있는 술을 마시고 물리적 실체가 있는 유럽과 동남아로 해외 여행을 떠나며, 물리적 실체가 있는 음식에 군침을 흘리고, 물리적 실체가 있는 사람과 키스하고 사랑을 나눕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 자체는 "존재하며", 우리는 그 감정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 물질적인가 비물질적인가에 따라 후속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 있겠지요. 알이즈웰 성선설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비존재의 가치를 존재보다 우위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비존재적 아이디어가 가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존재하는 세상을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물질적인 법과 제도가 필요한 까닭은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여자친구는 저렇게 멀리 서울에 있습니다. 운이 나쁘면 제 근무가 끝나는 내년 7월 말까지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바다 건너에 있는 물리적 실체의 목소리와 몸짓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과학 기술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발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her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uydkYJ6X9r8


오늘 저녁에는 박준형의 <와썹맨> 가운데 재미있는 편들을 좀 골라서 시청했습니다. 최근에는 속초를 방문했더군요. 그가 호텔스닷컴의 협찬을 받아 묵게 된 속초 라마다 호텔은 매우 멋졌습니다. 저도 속초 도보여행 중에 지나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라마다 호텔도 다양한 라인이 있는 모양입니다. 적어도 제가 묵고 있는 홍콩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은 속초의 그것과는 급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니까요. 그러나 저는 지금 묵고 있는 호텔에 대해서는 식사를 제외하고는 별 불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호텔 부대시설을 사용하지 못하고 창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은 모든 호텔에 공통되기 때문이지요. 호텔 식사가 아무리 푸짐하게 잘 나온다 하더라도 제가 먹고 싶은 메뉴를 직접 배달시켜 먹는 것만 못하지요. 무엇보다 21일 동안 갖혀서 운동 부족 상태인데, 푸짐하게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21일 자가격리 기준으로 하루 숙박비용이 HKD480(세 끼 식사 포함)인 홍콩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가격의 자가격리 호텔 가운데 이처럼 넓고 욕조와 개인 업무용 책상이 있으며 딜리버리가 가능한 사례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타월 교체 등의 소소한 이슈도 친절하고 신속히 응대해 줍니다. 다만 입맛이 한식 스타일이신 분이라면, 저는 한국에서 다양한 쌈장을 가져와서 홍콩 <푸드판다>에서 상추를 비롯한 채소를 배달시켜 먹을 것을 권합니다. 저는 기름진 홍콩 음식만으로 버티는데 딱 10일 걸렸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GOD 박형준은 제가 정말 닮고 싶은 중년입니다. 살면서 한 번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참 좋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DudauEO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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