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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24 홍콩 자가격리 17일 차

양양 인구해변 게스트하우스 추억

오늘은 홍콩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 자가격리 17일 차입니다. 어제부터 피부가 살짝 거칠어지기 시작하네요. 느끼한 음식, 건조한 실내, 환기 불가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14일 자가격리였다면 별 문제 없이 체크아웃할 수 있었겠지만, 2주가 넘어가니 탈이 나기 시작하는군요. 며칠 동안 마시지 않던 감잎차를 오랜만에 끓였습니다. 두 잔을 연달아 마시고 나니, 피부가 다소 촉촉해졌습니다. 상온의 맹물을 마실 때보다 피부에 도움이 되기는 합니다만, 호텔 객실에서 자꾸 차를 끓이다 보면 너무 덥습니다. 빨리 체크아웃해서 신선한 야채를 먹고 싶습니다. 


제 맞은편 방에서 자가격리하던 가족 3명이 며칠 전 체크아웃했습니다. 꼬맹이 남자아이가 밤에도 자지 않고 떠들어서 다소 시끄럽기는 했습니다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오히려 적적합니다. 나간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새로운 투숙객이 들어오지 않네요. 사람 소리가 그리운 때입니다. 그런 가운데 친구가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보내왔습니다. 

http://naver.me/GxOHykEW

요즘은 줌으로 강의를 듣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하면 채팅으로 말을 걸어 만남을 도모하는 "zoom개팅"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제 강의 도중에 누군가가 줌개팅을 한다면 조금 서운하기도 할 것 같다고 처음에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쳐 생각해보니, 학부 시절에 줌개팅을 하는 경험이 학부 수업보다 더 가슴 뛰는 경험일 수 있겠다는 느낌 아닌 느낌이 드네요. 제가 학부 시절 때에도,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다만 인기 강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온종일 학교 전산실에 앉아 무한 클릭을 반복해야만 했지요.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당시 유행하던 "세이클럽"으로 벙개팅을 잡았었습니다. 오전 오후 내내 수강 신청을 시도하고, 그런 가운데 벙개팅이 잡히면 저녁에 바로 출동했습니다. 매일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고자 했던 착한 선배들도 소개팅 만큼은 봐주었죠. 제가 학부 1학년이었던 1996년에는 홍대 상권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고, "룰루랄라 신촌"이 핫했습니다. 신촌 민들레영토에서 소개팅을 하고 있으면, 친구들이 껌을 팔러 와서 폭리를 취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지금 제 학생들은 "껌을 팔러 온다"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겠지요. 저도 "라떼는 말이야"의 아저씨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제가 어릴 때의 경험을 뭔가 대단한 듯이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만. 공자와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사랑(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구체적으로 다릅니다. 이성일 수도 있고 동성일 수도 있고,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식물 심지어 무생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본성상 무언가를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한 번 사랑에 "맛들이기" 시작하면,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자 합니다. 취미 생활의 확장 또한 같은 연장선상에 있지요. 9월에 홍콩시티대학에서 근무하게 되지만, 강의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홍콩의 대학생들이 줌개팅을 하는지는 파악하기 어렵겠네요. 하지만 다 아는 수가 있겠지요. 21세기판 영화 <접속>의 소재로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영원히 대학생이고 싶은 제 생각에는 적어도 그렇습니다. 

<일기예보 - 니가 좋아>

https://www.youtube.com/watch?v=Ypy9ezL3tbE

<영화 접속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sR9FPFx_iKg


저는 유튜브 운동 채널 가운데 <말왕TV>와 <피지컬 갤러리>를 즐겨 보는데요. 말왕의 경우에는 최근 운동 영상 업로드가 뜸합니다. 반면에 <피지컬 갤러리>는 개인이 아닌 조직 측면에서 전문적으로 콘텐츠를 개발하다 보니, 여전히 다양한 동영상이 올라오는 듯합니다. 저는 두 채널의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말왕과 계란맨은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야외 활동에 제한을 받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운동 자극을 주는 최고의 유튜버이니까요. 그런 가운데 최근에는 계란맨이 생애 최초로 서핑을 시도하는 동영상이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vUpYKpibqY

이 분의 운동능력은 정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이 분보다 더 힘이 센 분들도 있고 더 유연한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근력과 유연성 및 기타 운동능력을 계란맨만큼 균형 있게 갖춘 이는 정말로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게다가 이선균을 닮은 멋진 목소리에 뛰어난 예능감까지 갖추고 있으니 말입니다. 306만 명 구독자를 지닌 유튜버는 괜히 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참고로 이 분은 얼굴 전면을 덮는 마스크에 수염까지 달고 항상 운동을 수행합니다. 땀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고 호흡도 불편할 것임을 감안하면, 이 분의 놀라운 신체 능력에 혀를 내두를 따름입니다. 이번에는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웨이브 파크>를 방문했는데요. 세계 최대, 아시아 최초의 인공파도풀장인데, 2020년에 개장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 상상이 갑니다. 저는 예전에 태국 방콕에 소재한 <플로어하우스>라는 실내 서핑장에서 딱 한 번 서핑을 했습니다. 정말로 신났지만, 그 뒤에 기회가 닿질 않더군요. 올해 7월 1일에 서핑으로 유명한 죽도해변과 인구해변을 방문했지만, 서핑이 아닌 도보여행을 위해서였습니다. 


6월 30일에 속초 <쉼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한 저는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오늘의 숙박 장소인 양양 인구해변으로 이동했습니다. 물론 걸어서 갔습니다. 새벽 물안개가 자욱한 속초의 <청초호수공원>을 따라 걷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반드시 아침에 걸어 보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네요. 

구멍이 난 양말을 신고 걷다 보니 물집이 크게 잡혀서, 속초 해수욕장을 지날 때에 이미 발바닥에서 출혈이 심했습니다. 양말을 두 개 겹쳐 신고 걸었지만, 양양 근처에 가기도 전에 저는 벌써 절뚝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세계 어디로든 뻗어 갈 수 있다는 표지판을 보니 가슴이 설레었거든요. 

속초 해수욕장을 지나 바닷길을 걷다 보니, 외옹치항이 나옵니다. 쏟아지는 햇살이 파도에 반사되는 광경이 멋졌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롯데 리조트 쪽으로 올라갔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주 좋았습니다. 리조트 벤치에 앉아, 다시금 발바닥을 점검했습니다. 

아침 일찍 대포항 수산시장에 가니, 아직 영업중인 가게가 드물었습니다. 대포항 수산시장 근처에는 <와썹맨>에서 박준형이 묵었던 라마다 속초 호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계속 양양을 향해 걸어내려갑니다. 어디서부터가 양양인지 모르겠지만, 낙산사와 양양 솔비치를 지나서 계속 아래로 아래로 향합니다. 다리를 절며 걷다 잠시 버스 정류장에서 쉬어 반창고를 갈아봅니다. 

생각보다 길이가 꽤 긴 동호해변을 지나니, 국토종주 인증센터가 나오네요. 계속 아래로 향하니, 이번에는 중광정 해수욕장과 하조대 해수욕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그만 제가 실수를 하고 맙니다. 저는 인구해변에 <서피비치>가 있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하조대 해수욕장에 있는 줄을 몰랐지요. <서피피치 선셋바>가 멋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출발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조대 해수욕장 근처 CU에서 점심 식사를 때우면서도 선셋바를 들르지 않았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멋지게 꾸민 젊은이들 여러 무리가 해변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무튼 CU 야외 테이블에서 망중한을 즐긴 뒤, 저는 다시 인구해변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본디 기사문 해변에 숙소를 잡아놓았었습니다만, 발바닥 상태가 좋지 않아 인구해변에서 잔 뒤 다음날 귀경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기사문 해변 사진이 남아 있지 않은 게 못내 아쉽습니다. 조용하고 아름다우며 서핑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한적한 해변 마을이었습니다. 힐링을 위해서는 하조대나 인구 해변보다는 기사문 해변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고, 이제 더 못 곧겠다, 하고 탄식이 나올 즈음에 놀랍게도 저와 같은 방향으로 도보여행을 하는 어르신을 무려 두 분이나 마주쳤습니다. 사진에 보면 저 멀리 한 분 더 계십니다. 

갖춰 입은 복장을 보니, 보통 내공을 지닌 분들이 아니셨습니다. 이 분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힘이 솟구쳤습니다. 사실 힘이 모자라지는 않았습니다. 발바닥이 문제였지요. 무척이나 심하게 벗겨져서, 이 글을 쓰는 8월 24일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이 분들은 제게 고독한 사람 특유의 수줍은 미소를 보여주셨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하는 초코파이 광고가 귀에 울렸지요. 이런 고독한 도보 여행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고독이 체질이기에, 전세계에 흩어져서 각자 걷고 있을 따름이지요. 대표적인 인물은 말년의 장 자크 루소입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876325&cid=60621&categoryId=60621

차들이 쌩쌩 지나치는 국도를 따라 걷다 보니, 38선 휴게소가 나왔습니다. 휴게소가 면한 바닷물의 빛깔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아픈 발을 질질 끌고 가자니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오늘 도보 여행의 끝이 보입니다. 인구해변과 죽도해변을 가리키는 표지를 따라 걸으니,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에 다다랐습니다. 죽도해변은 난생 처음 와봤습니다만,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 오후 3시이니, 일단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미리 정해두었던 <어촌마을 물회섭국>에 입장합니다. 외관은 촌스러워 보일 지 모르나, 내부는 마치 청담동의 레스토랑처럼 단정합니다. 땀과 피곤에 찌든 모습으로 의자에 앉기가 미안할 지경입니다. 

물회 등은 예전에 먹어 보았으니, 섭국을 주문하고 기다립니다. 밑반찬과 흰밥은 추가 요금 없이 셀프로 먹을 수 있습니다. 

처음 접한 섭국에 대한 제 소회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말 맛있어서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인정합니다, 제가 몹시 지치고 배가 고팠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진한 국물과 정결한 밑반찬, 그리고 조용하고 깨끗한 실내까지, 정말로 제게는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제가 발바닥에 피를 흘리면서 몹시 예민한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무한한 감동은 분명히 진실입니다. 섭국의 양이 많아서 저는 밥을 좀 더 퍼다 먹었습니다. 어찌나 폭식했던지, 결국 저녁 식사는 맥주 두 잔으로 끝내고 말았지요. 

그렇게 늦은 점심식사를 마친 뒤, 마음의 여유가 생겨 저는 죽도해변과 인구해변을 따라 어슬렁어슬렁 걸었습니다. 서핑 인구가 이렇게 많은 줄 여태 몰랐습니다. 코로나 시국을 감안하면 놀라운 숫자였지요. 저는 서핑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은데다 발바닥의 상태로 보았을 때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년 7월 말에 귀국할 즈음이면 상황이 나아지겠지요? 

오늘의 숙소인 <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합니다. 숙소 앞에서 커피와 담배를 즐기며 앉아 있던 직원분들이 일어나서 친절히 안내해줍니다. 아무도 없는 객실은 넓고 꽤나 쾌적했습니다. 일단 욕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합니다. 발바닥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다음날 귀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도 뜨거운 물에 샤워를 마친 뒤 발바닥을 소독하고 말리니 한층 나았습니다. 탁 트인 객실 창으로 해변을 보니 뷰가 제법 시원하니 좋았습니다. 아래 앉아 있는 분들이 직원들입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 서서 정신을 좀 차리고 난 뒤, 다시 절뚝이며 산책을 나갑니다. 가만히 누워 있기에는 몸이 너무 근질거립니다. 직원분께서 저녁 바베큐 파티는 어떻게 하실 것이냐 묻길래, 저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사양했습니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 저녁 식사가 당기지 않았습니다.

해가 저물면서 점점 해변가가 시원해집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어듭니다. 이제 해변 곳곳에 위치한 맛집이나 펍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겠지요. 저는 <알로하 웨이브>라는 펍을 선택했습니다. 

제 비루한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초저녁 <알로하웨이브>가 뿜어내는 멋진 바이브를 담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4시간 정도 맥주를 마시며 머물렀습니다. 바람은 시원했고 사람들의 대화는 백그라운드 뮤직처럼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비록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동시에 다시금 슬퍼졌습니다. 저는 용기가 부족합니다. 역마살이 끼어서 태어났음을 안다면, 정착의 유전자가 아닌 방랑의 DNA를 타고났음을 안다면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제게는 일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노는 균형잡힌 삶이 불가능합니다. 놀이가 일이 되고 일이 놀이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고, 뭐든 극단으로 치달아서 무엇이든 미친듯이 하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게으름뱅이가 되고 맙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제가 있어서는 안 될 곳만큼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혼자 만들어낸 숱한 장애물들에 걸려 나아가지 못하는 나. 아직까지 방황해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 운이 좋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상태에 놓인 것도 같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 뿐입니다. 남들이 줄 수 없고 스스로 내야만 하는 용기. 


워낙 체력적으로 방전이 되었다 보니, 맥주 두 잔에도 얼근히 취합니다. 이제 다시 다리를 절며 게스트하우스에 복귀해야 할 때입니다. 와서 보니, 바베큐 파티로 인해 게스트하우스 전체가 날아갈 듯 들썩입니다. 정말로 보기 좋습니다. 방콕 카오산로드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온 듯합니다. 저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좁은 인구해변 주변을 거닐어 봅니다. 

지난 2021년 7월 말, 노마스크 풀파티로 인해 문제가 되었던 카페입니다. 제가 이 근처를 거닐었을 당시는 7월 1일. 분위기가 너무도 세련되고 멋져서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풀파티가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다만 홀몸이 아니었다면 반드시 들러서 칵테일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솔 게스트하우스>바로 옆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솔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할 때, 맥주 3잔을 제공하는 쿠폰을 같이 구매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플리즈 웨잇>에 입장하면 됩니다. 하지만 늙은이가 오판했습니다. 여기는 헌팅 장소였는데, 독거노인이 눈치도 없이 저 곳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말았군요. "ZOOM개팅"까지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 아니겠습니까. 저는 건전한 만남의 현장을 언제든지 지지합니다. 문제는 맥주가 그다지 제 입맛에 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쿠폰 없이 가서 제가 마시고픈 술을 사마시는 편이 나았습니다. 다만 문신이 가득한 팔을 들어 제게 맥주를 따라 주던 여직원이 매우 기억에 남습니다.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저는 맥주를 테이크아웃해서 주변을 좀 더 돌아본 뒤, 객실에 들어 일찌감치 잠을 청했습니다. 아래로부터 울려오는 시끄러운 소리가 싫지 않았습니다. 다만 체크인할 때 귀마개를 두 세트나 준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독거노인의 특징은 귀신같이 새벽에 깬다는 점이죠. 아침에 바라본 인구해변은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한참을 서서 바닷바람을 쐬면서 모래사장에 앉아 <다르마 행려>를 읽다가, 다시 이동합니다. 

이번에는 현남파출소와 타일러서프샵을 따라 <조아서프>와 <서프독>까지 걸어가봅니다. 가는 길에 <타일러 서프샵>의 "Slow is Fast"라는 글귀가 눈에 뜁니다. 모베러웍스의 "As slow as possible"이 연상됩니다. 이 글귀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한참을 서서 감탄하며 읽다가 발걸음을 옮깁니다. 다음 방문 때에는 여기서 브런치를 맛보아야겠습니다. 

인구해변 서프독 핫도그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이번 여행 때에는 먹을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오전에 양양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인구마트> 앞에서 잡아타야만, 오늘 내로 귀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발바닥으로는 더 이상 여행 욕심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장께는 죄송하지만, 근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산 뒤 아래의 소파에 앉아서 느긋하게 먹고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 첫번째 해파랑길 도보여행은 끝났습니다. 제가 홍콩에 있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대한민국 어딘가를 걷고 있겠지요.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On the Road>와 <다르마 행려 The Dharma Bums>는 지금도 제가 즐겨 읽는 경전입니다. 저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오히려 한국의 수많은 유목민들이 제 본성에 눈을 떠서 이 땅을 걷고 달리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캠핑을 하기도 하지요. 2년이 넘는 이 기간의 경험을 이제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 2022년은 다시 해외여행 원년의 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활성화된 국내여행의 붐 또한 그치지 않을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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