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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30홍콩아이디카드,백신 신청, 침사추이

오늘도 새벽 5시에 깼습니다. 실내 온도가 적응되지 않아서 깊이 잠들지 못했습니다. 복도로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발소리가 분주합니다. 다양한 국적의 말투가 귀에 들어옵니다. 아하, 홍콩의 소규모 호텔의 분위기가 이렇구나, 이때 아니면 언제 경험해보겠나 하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한국에서는 한 달 살기가 유행인데, 일단 저는 9월과 10월에 각각 조던 역과 침사추이 역 근처에서 한 달씩 살기로 했습니다. 11개월 머무는 동안 배낭여행을 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기분을 내기 위해서인데, 30kg이 넘는 여행가방을 끌고 다녀보니,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11월부터는 어딘가 정착해야겠습니다.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북쪽을 일단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도 가격이 맞아야지요. 

홍콩에 3개월 이상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홍콩아이디카드를 신청해서 소지해야만 합니다. 저는 완차이에 있는 이미그레이션 타워에 가서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일찍 가야만 줄을 길게 서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서, 일찌감치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완차이 역에 내려서 A5 출구를 따라서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저절로 이미그레이션 타워에 입장하게 됩니다. 이제는 "leave home safe" 앱을 깔아야만 건물에 입장 가능합니다. 홍콩 아이디 카드 신청 관련 업무는 8층에서 진행됩니다. 제가 8시에 들어갔는데, 제 앞에 5명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창구에 가서 여권 그리고 홍콩 공항에서 받았던 조그마한 입국 증명서를 제시하고 제가 작성해야 할 서류를 받습니다. 바로 옆 구역에 앉아 대기하고 있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심사 절차가 진행됩니다. 첫 번째 부스에서는 지문을 등록하고 증명사진을 찍습니다. 2번 찍는데 "예쁘게 찍어 주세요" 이런 거 안 통합니다. 그냥 그분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두 번 찍고,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합니다. 저는 남자라서 못생기게 나와도 별 감흥이 없는데(원래 못생겼으니까) 사진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분들이라면 잔뜩 긴장해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부스에서 업무를 마치고 두 번째 부스로 넘어가면 이제 "임시 홍콩 아이디카드"에 해당하는 종이 문서를 발급해 줍니다. 정식 카드가 나올 때까지 홍콩 아이디카드의 효력을 지닙니다. 업무가 모두 끝났는데도 아직 9시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화이자 백신을 신청하러 이동할 때입니다. 참고로 홍콩아이디카드 신청 과정에서 사진 촬영은 불가합니다.


2021년 8월 말 현재, 홍콩은 "전투적으로" 백신 접종 작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홍콩아이디카드가 없는 체류자의 경우에도 백신 접종 신청이 가능합니다. 저는 이미그레이션 타워 바로 옆 레비뉴 타워에 있는 우체국에서 접종 신청을 했습니다. 우체국 업무가 9시 30분에 시작되기 때문에, 남은 30분가량 가족 및 지인들과 전화했습니다. 공공 건물에서는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점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백신 신청을 위해서는 홍콩 전화 번호가 필요한데, 본인 확인용이 아니라 백신 접종 장소와 일자를 알려주는 문자 수신용입니다. 저는 아직 전화 개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배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수신한 문자를 백신 접종 시에 제시해야 되기 때문에, 후배에게 화면 캡처한 파일을 제게 보내라고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8월 30일 오전에 신청하니, 다음날인 31일 오전에 접종하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래서 빨리 맞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지정된 몇 군데에서만 접종 가능한데, 화이자 접종 장소와 시노백 접종 장소가 다릅니다. 저는 화이자 백신을 신청했는데,(홍콩에서는 화이자 백신이 아닌 바이오테크 백신이라고 부릅니다) 프린스 에드워드 역 근처에 있는 <바운더리 스포츠 센터>에서 접종하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걸어가면 20분에서 30분이 소요된다고 구글맵이 알려주네요. 숨가쁘게 업무를 마치고 나오니 10시 정도 되었습니다. 완차이 역에서 조던 역까지는 금방입니다. 날씨도 맑으니, 침사추이 역에 내려서 바다를 보기로 했습니다. 평생 살 곳이 아니니, 침사추이 하버만큼은 질리도록 보고 갈 생각입니다. 


아침을 거르는 16:8 간헐적 단식 중이지만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니 금세 배가 고파졌습니다. 침사추이 맛집을 검색하고 싶었지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으니 그냥 다시 맥도널드로 향했습니다. 10:45까지는 모닝 세트를 팔고 있기에, 주변을 구경하며 기다렸습니다. 앵거스 버거나 빅맥을 먹어야지, 모닝 세트는 용서할 수 없지요. 한국 맥도널드는 요즘 어떤지 모르겠는데, 홍콩의 경우에는 이렇게 테이블마다 유리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직장인들 점심시간을 피해서인지, 한적해서 좋았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침사추이 하버 쪽으로 걸어나가려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어젯밤 잠을 설친 까닭이겠지요. 맥도널드에서 와이파이가 되었는데, 부산에 놀러간 어머니와 여동생의 식도락 기행 사진이 계속 전송되고 있었습니다. 모녀가 행복하게 여행하니, 홍콩에 있는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숙소에 가서 잠시 쉴까 하다가, 내친김에 내일 아침 9시까지 방문해야 할 바운더리 스포츠 센터까지 걸어가 보았습니다. 최근 홍콩에는 중국 본토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구글맵을 사용할 수 없는 저는 감으로 길을 찾아가다 모르면 물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사래를 치며 제 갈 길을 갔습니다. 불친절하다기보다는 정말로 장소의 영어 명칭을 모르는 분위기였습니다. 홍콩섬 쪽은 그래도 영어가 훨씬 활발하게 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홍콩 시내를 두 발로 휘젓고 다니다 보니, 대한민국 표지판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낯설어서가 아니라, 홍콩은 정말로 표지판이 불친절합니다. 주요 공공건물들에 대한 안내판 정도는 거리에 있을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폭염 속에서 정처 없이 왔던 길을 몇 번씩이나 되돌아가며 길을 찾다가, 이제 도대체 무슨 짓인가 후회가 될 때쯤, 아, 저는 모르는 사이 플라워 마켓(꽃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저는 이곳을 정말로 강추합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단정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으며, 가게로부터 풍겨 나오는 꽃향기가 너무도 좋습니다. 저는 당장 기운을 차렸습니다. 사실 플라워 마켓 바로 옆에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이제 거의 다 온 셈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스포츠 센터를 찾아서 직원에게 안내를 받은 뒤, 편한 마음으로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저렴한 가격에 일본 밀크 티를 구입할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홍콩은 코카콜라가 저렴합니다. 맥주 가격도 합리적이고요. 홍콩 독거남에게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콜라를 좀 끊어야 하는데... 저는 콜라는 너무 좋아합니다. 


귀가하여 샤워하고 잠시 쉰 다음, 다시 몽콕 역에 저녁 약속이 있어 나갔습니다. 저의 전임자인 홍콩 로컬인과 제 대학 후배 이렇게 남자 3명이서 식사하기로 했습니다. 몽콕 역 E1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 출구 바로 앞에 데카트론 매장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프랑스 스포츠 브랜드인 데카트론은 매우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상품을 판매하는 "가성비 끝판왕" 브랜드입니다. 특히 등산이나 캠핑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매력적이지요. 한국에도 매장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몽콕에서 만나니 반가웠습니다. 시간이 좀 남았기에, 데카트론 매장에 가서 정신없이 구경했습니다. 와이파이가 되어서 후배와 연락하기도 용이했지요. 

홍콩 로컬인 제 전임자와는 줌 화상회의를 통해 인수인계를 할 때 얼굴을 보았습니다. 실물로 보니 좀 더 마르고 잘생겼습니다. 그는 우리를 납치하다시피 낡은 빌딩으로 데려갔는데, <보니 타이 레스토랑>이라는 태국 음식점이었습니다. 입장하니, 아늑하고 조용한 실내에 태국 가요가 울려 퍼지는 것이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태국이 아닌 홍콩 분위기였지요. 

저희는 안주를 4개가량 주문했는데, 사실 안주보다는 술이 고팠습니다. 싱하로 시작해서 창으로 끝냈는데, 나머지 두 사람이 잘 못 마시기에 저도 속도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어제 자가격리가 해제되었지만, 오늘 저녁에서야 비로소 홍콩에 와 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살아납니다. 6시 반에는 텅텅 비어 있던 가게가 7시 반쯤 되니 가득 찼습니다. 저는 업무 인수인계가 덜 되어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술맛 떨어지는 이야기를 늘어놓아서는 안 되겠지요. 9월 1일 첫 출근부터 고생 좀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제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음식이 상당히 깔끔하고 젊은이들이 많아 분위기도 좋아서 저는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커리에다 난을 찍어먹는 사진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라이스케익을 주문하더군요.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제가 몽콕 등의 도시 분위기를 꺼려하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이제 자연이 좋네요. 여하튼 몽콕 거리를 벗어나서 조던 역 쪽으로 향합니다. 저는 제 숙소 맞은편, 직선거리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미슐랭 가이드에도 가성비 맛집으로 여러 번 추천된 <카이카이 디저트>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8월 초만 해도 홍콩에 올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했기 때문에, 아예 맛집 검색 따위는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숙소 맞은편 허름한 골목에 기다랗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이거 장난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한국 사나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따거, 주윤발 형님께서 자주 찾는 곳이라니요!!!!

윗 사진을 보면 몇 년 연속해서 계속 미슐랭 가이드에 추천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하튼 우리는 조금 줄을 선 뒤에 곧장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메뉴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저는 아몬드가 섞인 수프를 주문했습니다. 그냥 홍콩 미숫가루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 그릇 당 4천 원 정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맛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조던 역 근처에서 1달 가까이 살 예정인데, 여기 몇 번 방문하면 주윤발 형님 만날 확률이 높아지겠지요? 글을 쓰고 있는 저녁, 갑자기 출출해지네요.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가게는 10시까지 한다고 합니다. 저희는 힘이 남아서 침사추이까지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어제는 낮에 왔습니다만, 역시 침사추이 항구는 밤에 보아야 제맛이지요. 한국에서는 현재 9시가 되면 가게들이 모두 영업을 끝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홍콩은 10시까지입니다. 

역시 침사추이 항구는 아름답습니다. 연인들도 많고요. 항구에 위치한 포시즌스 호텔 등이 영업을 쉬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역시 코로나 시국에는 대형 호텔 체인도 버틸 재간이 없는 모양입니다. 산책로를 따라 <스타의 거리>에서 이소룡 형님까지 영접하고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홍콩에서는 운동을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침사추이를 달리는 많은 러너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도 최소 2달을 이 근처에서 사는데, 달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빨래하기가 귀찮아서 좀 망설여집니다. 신발을 말리기에는 날씨가 너무 습하고.. 제가 묵고 있는 코딱지만 한 주거 환경에서는 제한되는 일이 제법 많습니다. 하지만 단점을 상쇄하는 장점들이 많기에, 불만은 없습니다. 친구들과는 10시 반에 헤어졌습니다. 다시 집까지 걸어오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정말로 많이 걸었습니다. 내일 백신 접종이 있는데 술을 마셨네요. 안된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귀가해서 샤워하고 손빨래를 마치니, 아, 퇴근 후에 침사추이에 가서 달리기 하기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카트론에서 스포츠 용품을 볼 때만 해도 좀 혹했습니다만 자중해야겠습니다. 아직까지는 정말 졸음이 쏟아질 때 까지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듯합니다. 이제 출근하여 본격적으로 바빠지면 저절로 없어질 습관이기에,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하지 않기로 합니다. 하긴 항상 느슨해서 탈이지만 말이죠.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그렇게 곯아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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