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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4 침사추이 재즈바 네드 켈리 방문

<210903>

9월 3일 저녁, 저는 홍콩시티대학에서 걸어오면서 유명한 템플 스트리트 마켓을 경유했습니다. 템플 스트리트 마켓은 조던 역 근처 다시 말해서 제 숙소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제 온라인 동영상 인트로를 촬영하고자 했습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해외여행을 못 가서 답답한 대학생들에게, 여행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강의 영상을 찍고 있는 중에, 그곳에서 장사하시는 상인께서 촬영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쉽게도 강의 인트로 촬영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이렇게 짧은 영상으로 제 추억을 남기기는 했습니다.

https://youtu.be/0TnO4vZnxKE

숙소까지 걸어가는데, 제가 블로그에서 많이 봤던 <템플 스파이시 크랩>이 등장하더군요. 술값이 매우 저렴하고 분위기가 딱 제 타입이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여기에 앉아 먹방을 좀 하고 싶었는데, 상인에게 한 번 저지당하고 나니 용기가 나질 않더군요. 뭐, 다음에 와서 먹으면 되니까요.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 노상 주점보다는 덜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홍콩 야시장 하면 딱 요런 느낌이겠거니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라 뭔가 더 먹기는 그랬고, 다음에는 아예 저녁 식사 시간에 방문해서 맥주 한 잔 해야겠습니다.


9월 4일 토요일, 저는 변함없이 홍콩시티대학으로 출근했습니다. 홍콩은 아직도 주 6일제 근무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정부 시절 주 5일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대한민국도 토요일 오전까지 출근하는 주 6일제 근무였지요. 저는 연구원 신분이기 때문에, 사실 토요일에 출근할 필요가 없습니다. 계약 조건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깨끗하고 넓은 사무실에서 차도 마시고 책도 읽고 하는 편이 아직까지는 좋더라고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직원이자 학자의 신분으로, 그리고 일요일만큼은 신나게 홍콩을 구석구석 여행하는 배낭여행자로 살고자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센터에 함께 있는 대학원생 분들이 오전에는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홍콩시티대학 구내식당은 가격이 저렴하고 음식 맛도 매우 뛰어납니다. 홍콩 어디에서도 이렇게 가성비 좋은 식당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학생증이나 직원카드를 키오스크에 찍어야만 주문이 가능하죠. 물론 그렇지 않은 식당도 있기는 합니다. 여하튼, 저는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원카드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대학원생 분들과 함께 식당으로 가곤 합니다. 물론 식사 때문에 함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좋으신 분들이고, 앞으로 이분들과도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홍콩시티대학에서 가장 큰 식당 입구에는 옥토퍼스 카드나 현금으로도 결제할 수 있는 샐러드&브레드 매점이 있습니다. 저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16:8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기에, 12시만 되면 배가 엄청 고파집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혼자 햄&에그 샌드위치를 먹어보기로 합니다. 단, 오늘은 제 중학생 조카가 가르쳐준 대로 먹방 동영상을 한 번 찍어보기로 합니다.

https://youtu.be/iN2rMFnbilE

요즘 유튜브에서는 "쇼츠" 동영상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60초 내의 짧은 "세로" 동영상을 쇼츠라고 하는데요, 유튜브가 틱톡을 잡기 위해서 야심 차게 밀고 있는 콘텐츠입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유튜버가 될 생각은 없고요, 다만 홍콩 미니멀 라이프를 소개하는 동영상의 형식으로는 쇼츠가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긴 동영상은 편집 기술이 많이 필요하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으니까요. 다만 찍어놓고 보니, 면도도 하고 최대한 깔끔한 상태에서 배경음악도 넣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비록 흑역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토요일 저녁을 사무실에서만 보내기에는 너무 갑갑하기에, 오늘은 침사추이 역 근처의 유서 깊은 재즈 바인 <네드 켈리 Ned Kelly's Last Stand>에 가 보기로 합니다. 9시 조금 넘어 재즈 공연 시작인데, 9시까지는 해피 아워여서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고 합니다. 저녁 또한 앞서 언급한 매점에서 치킨 샐러드를 사서 후딱 해치우고, 퇴근길로 접어듭니다.

프린세스 에드워드 역을 지나 몽콕 역으로 들어서니, 며칠 전 평일에 왔을 때보다 유동인구가 훨씬 많습니다. 과연 홍콩의 홍대라 할 만합니다. 하지만 딱히 제 눈길을 끄는 것은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대로로 다니다가 이번에는 뒷골목 길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이렇게 안쪽 길로 가니 비로소 전자상가들이 많이 등장하는군요. 홍콩은 스마트폰 요금제가 꽤나 저렴한 편입니다. 향후 개통할 때 참고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이 넘쳐나는 거리를 걷다 보니, 버스킹을 하는 젊은 밴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참을 서서 공연을 구경하다가 다시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https://youtu.be/uAT4sQtb1Ao

어젯밤의 실패에 오기가 생겨 다시 템플 스트리트 야시장을 가보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화려한 분위기가 없었습니다. 야시장은 이제 그만 가기로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자연 속의 하이킹이 더욱 제 흥미를 당기는군요.


 올해로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네드 켈리> 재즈바는 침사추이역 청킹 맨션 맞은편 골목에 소재합니다. 구글 맵을 캡처 해서 갔기에,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https://youtu.be/yKbBZMUcJwg

실내는 생각보다 좁았습니다만, 한눈에도 여기가 단골들이 즐겨 찾는 흥겨운 분위기의 bar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무대 변두리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 잡았습니다. 8시 20분경에 입장했는데, 자리는 벌써 다 차 있었습니다. 여기는 공연료가 따로 없었습니다. 다만 해피 아워가 끝나면 가격대가 올라가고, 매 공연이 끝날 때마다 주문을 새로 해야 하는 듯했습니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단 '홍콩 야우 페일 에일' 한 잔을 주문했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1 peet에 1만 원도 하지 않는 저렴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입에 꽤나 잘 맞았습니다. 저는 페일 에일 마니아거든요.

https://youtu.be/X3r_EmYxxXI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양이 상당합니다. 저는 저녁 식사를 이미 마친 터라, 저거 한 잔으로 충분했습니다. 기다리는 중에 무대가 제대로 보이는 좌석이 비었기에, 냉큼 자리를 바꿔 앉았습니다. 이윽고 홍콩에 사는 중국 커플이 합석했고, 저희는 그렇게 공연을 기다렸습니다.

9시가 넘어 밴드가 등장했고, 악기 조율을 마친 뒤 곧바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대 앞에는 빨간 모자를 눌러쓴 10여 명의 서양인들이 열렬하게 목소리를 높여가며 공연을 즐겼는데, 아무래도 운동 클럽인 듯합니다. 누가 봐도 단골이었습니다. 밴드 리더와 쉴 새 없이 대화를 주고받았으니까요. 트럼펫을 부는 밴드 리더는 나이가 70세는 되어 보였는데,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멋진 할아버지였습니다. 운동 클럽 멤버 가운데 한 명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하자, 루이 암스트롱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축하곡을 불러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재즈 스탠더드를 여러 곡 연주했는데, 조던 역 근처에서 짠내 투어의 삶을 살던 저는 비로소 사람들이 로망을 가지는 홍콩 시티 라이프에 한 발 다가선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 주말에는 여기를 자주 방문해야겠습니다!

https://youtu.be/gjTLBORoVTw

1부 공연이 끝나자 놀랍게도 밴드 연주자들이 술자리에 와서 손님들과 합석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들 단골이겠지요. 공연 사이의 시간이 제법 길고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기에, 오늘 첫 방문은 이까지로 합니다. 할아버지 리더에게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운 뒤 재즈 바를 빠져나와, 다시 침사추이 항구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잠이 달아났는데 이대로 귀가할 수는 없지요.


밤 12시가 조금 넘게까지 침사추이 항구에 있었는데, 멋진 날씨와 시원한 바닷바람, 그리고 또 예상치 못한 광경들이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11시가 넘어가자, 연인들은 마스크를 내리고 입을 맞추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이 생각나서, <South Korean man in  Hong Kong>을 소심하게 불러보았습니다.

https://youtu.be/0a-UHrMC1kw

홍콩 스타의 거리를 몇 번 왕복하다가, 흥미가 돋아 내친김에 샹그릴라 호텔 근처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12시가 가까운 상황이었는데, 매우 흥미롭게도 고급 호텔 주변에 소재하고 있는 가게들은 코로나가 끝난 듯 흥청망청한 분위기가 넘쳐났습니다. 주로 서양인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시끄러운 클럽 음악과 흥에 취한 서양인들의 대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물론 가격이 제법 되는 하이엔드 레스토랑들이라서 주정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 쪽에서도 뭔가 재미있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제가 혼자서 이곳을 올 일은 드물 것 같지만, 아주 멋진 커피샾에서 세금 포함 $40에 음료를 판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밤에 낭만을 즐기러 올  같습니다.


오늘은 본디 세제를 사서 빨래를 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만, 이래저래 인생을 즐기다 보니 밤 12시를 넘겼습니다. 세제 구입은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가는데, 놀랍게도 홍콩의 <돈키호테>인 <돈돈 돈키>가 영업 중이었습니다. 심지어 24시간 영업이더군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들어가서 세제와 물티슈를 샀습니다만, 줄을 서서 계산대에 이르는 데까지 무려 20분이 걸렸습니다. 이게 홍콩 라이프군요. 돈돈 돈키를 따로 구경할 필요가 없습니다. 줄을 서서 계속 따라가다 보면, 매장 내의 필수품을 강제로 구경하게 됩니다. 계산을 마치고 양손에 세제와 물티슈를 든 채 귀가합니다. 그냥 귀가했으면 좋았을 것을 집 근처 할인마트에 들러서 기어이 할인 중인 다이제스티브를 사고 맙니다. 그냥 잤으면 좋았을 것을 굳이 또 다이제스티브 한 줄을 해치우고야 맙니다. 내일은 성문 저수지 하이킹 예정인데, 이렇게 새벽 2시가 넘어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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