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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2 (2) 홍콩 라마 섬 후기

성림거와 네드 켈리 방문기

이제 목적지인 용수완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게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지요. 

자, <the beer shack>이라는 펍인데, 용수완 선착장까지 10분 남았다는군요. 이제 다 왔습니다! 관광객들이 넘쳐납니다. 거리에 활기가 넘칩니다. 비록 조그마한 규모이지만, 카오산 로드의 분위기를 살짝 맛볼 수 있었습니다. 광동어와 영어로 동시에 진행되는 아침 예배소리도 흘러나옵니다. 게스트하우스도 여럿 보이고, 선착장 근처의 해산물 레스토랑에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11시가 넘었으니, 이제 점심 식사를 할 때이지요. 





그런데 저는 살짝 우울해집니다. 왜냐하면 제 마음에 쏙 드는 술집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점심식사를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1시간 반 가량의 트래킹을 마쳤으니, 시원하게 맥주나 한 잔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카오산 로드 분위기의 자유로운 펍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용수완은 그냥 관광지였을 따름입니다.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제게는 맞지 않는다는 의미이지요. 그래서 근처 마트에 들어가 일단 기네스 맥주 한 캔을 사서, 한적한 길 모퉁이에서 원샷 해버립니다. 혈관에 알콜이 돌기 시작하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습니다. 후텁지근한 대기로 인해 술이 빨리 취했죠. 저녁 약속은 5시이니 그 때까지는 용수완 주변을 돌며 좀 더 구경을 해야겠습니다.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다가, 밀크 티가 한 잔 마시고 싶어 <Green Cottage>란 가게에 들어섭니다. 

굉장히 밝은 분위기에 직원들의 영어가 유창합니다. 피자나 파스타를 파는 것을 보니, 주로 서양인들을 상대하는 듯했습니다. 에어컨이 시원하고 그나마 분위기가 제 마음에 듭니다. 밀크 티는 달지 않고 맛이 깔끔합니다. 저 곳에서 30분 이상 망중한을 즐기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무리 봐도 용수완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쿠완에서 용수완으로 넘어오는 산길에 제 마음에 드는 가게들이 있었는데,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허름하지만 제법 규모가 되는 마트가 있고 그 맞은편에는 테이블이 여럿 있습니다. 마트에서 맥주를 사서 그냥 여기에 주저앉아 마시면 되는 분위기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답입니다. 홍콩에 살면 자주 먹게 되는 <blue girl> 맥주를 $10에 사서 맞은편 테이블에 자리를 잡습니다. <Man Loon>이라는 가게입니다. 


앉아서 편안하게 술을 마시고 있다가 60대 영국 할머니와 합석하게 되었습니다. 트레이시라는 이름은 이 여성은 30년이 넘게 아시아 지역을 떠돌며 영어 교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홍콩에 정착한 지는 20년이 넘었으며, 현재 라마 섬에서 커다란 정원을 겸한 주택에서 고양이 6마리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으며, 한글을 읽을 줄 알았습니다. 한국이 너무 좋아 정착하고 싶었으나, 그때가 마침 외환외기가 터닌 1997년이라 포기하고, 홍콩에 눌러앉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요일 오전에도 홍콩 섬에서 영어 과외를 하고서 세 군데 쇼핑을 마치고 라마 섬으로 복귀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심지어 동양철학 전공자였습니다! 그녀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시간 이상 대화했습니다. 9월 21일에 풀 문 파티가 라마 섬에서 열리는데 꼭 방문하라며, 제게 연락처를 주고 그녀는 일어섰습니다. 역시 제 직감이 맞았습니다. 진짜 배낭여행의 경험을 즐기기 위해서는 관광지를 피해서 한적한 길거리에 있어야만 합니다. 앞으로 계속 연락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녀는 조던 역에서 월세 사는 값이면 라마 섬에서 정말 넓은 집에서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지만, 섬살이 도전은 일단 미뤄두기로 합니다. 그녀가 떠난 뒤 블루걸 한 캔을 더 해치우고 나서 선착장으로 향합니다. 이제 저녁 약속을 위해 침사추이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용수완 선착장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참으로 호젓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페리를 타자마자 졸음이 쏟아집니다. 그래서 센트럴에 도착할 때까지 꾸벅꾸벅 좁니다. 아, 팁 하나 있습니다. 소쿠완에서는 침사추이로 직행하는 페리가 있습니다. 용수완에는 없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번 홍콩 섬 여행 때는 오후에 숙소를 나와서 트래킹을 마치고 섬에서 저녁 석양을 바라보며 식사를 끝내고 귀가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홍콩 섬이란 것이 대부분 센트럴 선착장에서 1시간 내의 거리이고 저녁 늦게까지 페리가 다닙니다. 섬에서 바라본 석양은 정말로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마지막 페리 시간만 잘 체크해서 다음 번에는 좀 더 "갬성"있는 홍콩 섬 여행을 즐기고자 합니다.  


센트럴에 내리고 나니 시간이 어중간해서, IFC몰을 잠시 둘러보다가 그냥 침사추이행 페리를 탑니다. 도착하고 난 뒤 란퐁유엔에서 크리스피 번과 밀크티로 간단히 요기를 한 뒤, 대학원 친구들을 만나서 성림거 운남쌀국수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굉장히 넓고 시설이 깨끗했습니다. 일요일 이른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서, 저는 쾌적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맛은 어젯밤 방문했던 몽콕 역의 로컬 쌀국수집과 유사했습니다. 가격이 저렴하고 해장국 느낌이 나서, 저는 재방문 의사가 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침사추이 해변산책길을 조금 거닐다, 2차로 네드 켈리 재즈바를 찾아갔습니다. 해피 아워 술값이 저렴하고 분위기가 멋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술집이 거기밖에 없었습니다. 일요일에는 아쉽게도 재즈 라이브 공연을 하지 않습니다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손님이 적어서 조용하게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술에 도전해볼 수도 있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일요일에는 페리 운임도 비싸고 재즈 공연도 하지 않고 제약이 상당히 많네요. 제 공식 휴일은 토요일로 잡아야겠습니다. 예전에는 어째서 일요일이 일주일의 시작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제 필요에 의해서 이제 홍콩 사는 동안 일요일은 일주일의 시작이 될 예정입니다. "일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토요일 하루는 신나게 노는 패턴을 일단 잡아보고자 합니다. 물론 제 생활 패턴이야 얼마든지 수정 가능하지요. 원래 계획이란 지키는 것보다 짜는 것이 더 재미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저녁 10시가 넘도록 즐겁게 대화하고 헤어져 귀가했습니다. 오늘 저와 함께 열심히 여행해준 옷을 세탁기에 넣고 빨았는데, 꺼내고 나니 볼펜 잉크가 번져 있었습니다. 이런, 제가 매우 좋아하는 옷인데 큰 낭패입니다. 방콕 카오산 로드에서 구입한 거라 한국 가서도 못 구하는 애장품인데. 내일 얼룩 제거약을 사러 시내를 돌아다녀보기로 합니다. 샤워 및 모든 정비를 마치고 누우니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은행 동기들과 섹오 비치 및 드래곤스백 트래킹을 하기로 했는데, 그 또한 재미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월요일에 출근하는 직장인 신분이니, 이제 그만 자야겠죠. 쯔양 먹방을 자장가 삼아 저도 모르게 곯아떨어집니다. 다음 번 라마섬 방문 때에는 꼭 주윤발 형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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