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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2 주윤발의 고향인 홍콩 라마섬에 가다

성림거 운남쌀국수와 네드 켈리 방문 이야기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푹 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아니,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이 마흔이 넘으니,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를 푹 쉬어 주지 않으면 몸이 배겨나질 않더군요. 물론 쉰다는 개념이 좀 애매하기는 합니다. 쉰다기보다 그냥 "즐긴다"라고 표현하는 편이 맞겠네요. 가만히 누워 있다기보다는 신나게 노는 것이니까요. 


오늘은 우리의 영원한 "따거" 주윤발 형님의 고향인 홍콩 라마 섬을 방문하기로 합니다. 라마 섬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없습니다. 아니, 여행을 가는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간단 말이냐!!! 과거의 저는 오늘의 저에게 이렇게 불호령을 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정이 있습니다. 요즘 블로그에는 제가 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후기가 넘쳐납니다. 실제로 매우 유용합니다. 그런데 정성들여 쓴 블로그를 읽다 보면 시간을 엄청나게 소모하게 되더군요. 게다가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가다 보니, 실제로 가면 재미가 좀 덜 합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1990년대, 무작정 지도 하나 들고 유럽 곳곳을 쏘다니던 그때가 돌이켜보면 훨씬 더 재미있었던 듯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젊을 때라는 이유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서 저는 홍콩 관광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야, 여기는 참 가 볼만 한걸!"이라는 확신이 서면, 찾아가는 길 정도만 파악하고 아예 읽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실 정말 좋은 곳이라면 한 번만 가고 말 것이 아니니까요. 두번 다시 못 올 곳이라고 생각하면 철저히 조사해서 단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훑어야겠지만, 1년 가까이 홍콩 살면서 단 한 번만 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마음 편하게 갔다가 그 장소가 마음에 들면 좀 더 공부해서 오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마들역에서 지하철 첫 차를 타고 움직였습니다. 토요일 어젯밤에 몽콕 역에서 느지막히 운남쌀국수를 먹고 잔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더부룩해서 조금 늦게 움직였습니다. 라마 섬에 가기 위해서는 침사추이 페리 선착장에서 센트럴 선착장으로 간 뒤, pier 4에서 소쿠완 또는 용수완으로 가는 페리를 타면 됩니다. 집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2 for 1으로 생수를 산 뒤 침사추이 페리 선착장까지 걸어가니, 7시 59분에 센트럴로 떠난다는군요.    

벌써부터 내 자가용처럼 익숙해진 페리입니다. 일요일 아침 페리 내부는 텅텅 비었습니다만, 어느샌가 본토 중국 할머니들이 제 옆에 앉았습니다. 지나치게 시끄러워 흘깃 쳐다보니, 제 옆의 할머니는 스마트폰으로 손자 사진을 꺼내놓고 쳐다보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사실 할머니라 해봐야 제 어머니보다 연세가 적으신 듯했습니다. 전 세계 할머니들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들 자식 잘 되기를 바라고, 손자 손녀 보는 재미로 살아가십니다. 갑자기 중국 할머니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이렇게 신나게 떠들 정도로 건강을 지니고 계시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시고 이렇게 주말에 라마 섬으로 트래킹도 부지런히 다니실 수 있기를!!


센트럴 선착장에 내리니, 확연히 다른 홍콩 섬의 분위기가 확 다가옵니다. 역시 홍콩 섬 쪽이 훨씬 고급진 느낌이 듭니다. 저는 예전에 홍대 클럽과 청담동 클럽의 차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제가 거주하는 조던역과 몽콕역은 홍대 분위기라면, 센트럴 역 쪽은 아무래도 강남 분위기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유튜브 동영상을 찍는 댄서들이 많이 보입니다. 시원한 홍콩 바다를 배경으로 요가 영상을 찍는 젊은 여성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엄청나게 지나다니는 길거리 한 가운데서 다리를 찢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셔야만 합니다. 유튜버들 결코 쉽게 돈 버는 거 아닙니다. 정말 대단한 멘탈리티를 지니고 계십니다. pier 4에 도착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왼쪽은 소쿠완, 오른쪽은 용수완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 페리를 타도 상관없습니다. 둘 다 주윤발 형님의 고향인 라마 섬에 있으니까요. 다만 여행의 목적에 따라 출발지를 달리 잡을 수 있습니다. 수코완은 한적한 시골 마을로서 저렴한 해산물 식당이 있으며 크게 볼 거리는 없습니다. 보통 소쿠완에서 출발하여 1시간 반 가량 하이킹하여 용수완으로 넘어갑니다. 용수완은 상대적으로 번화한 마을인데, 이색적인 가게들과 활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트래킹을 마치고 난 뒤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보기에 좋죠. 그래서 저는 소쿠완에서 출발해서 용수완에서 끝나는 여행 경로를 잡았습니다. 

사진을 유심히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시간대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페리 운임료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가격은 동일하지만,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가격이 치솟습니다. 저는 주5일 근무자라 굳이 일요일에 여행할 필요가 없건만, 오늘 또 귀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앞으로 머나먼 섬여행을 떠날 때에는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출발하기로 합니다. 여하튼 오늘은 이대로 여행을 계속해야겠지요. 소쿠완 행 페리를 탑니다. 편도 $32.5이니, 주말에는 5천원 정도의 가격이네요. 침사추이와 센트럴을 왕복하는 페리와는 달리 상당히 실내가 고급집니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특히 트래킹을 즐기는 서양인들이 많이 보이네요. 센트럴에서 라마섬까지는 25분에서 3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저는 동일한 바다 풍경을 계속 보는 것도 지겨워서, 오늘의 여행 장소 "블로깅"을 했습니다. 이동 때 하는 검색이 꿀맛이죠. 


드디어 소쿠완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바닷물이 너무도 맑고 깨끗합니다. 마치 천국에 온 듯한 기분입니다. 아, 이래서 홍콩을 트래킹, 하이킹의 천국이라 부르는구나, 싶었습니다. 

소쿠완 선착장

소쿠완 메인 스트리트는 몇 십 미터 되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인지, 아직 열지 않은 레스토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여유롭게 걷다 보니, 아, 이런 사진이 있었습니다. 

사실 라마 섬 곳곳에는 주윤발의 흔적이 있습니다. 주윤발의 방문 사진을 붙여놓은 가게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죠. 여하튼 저는 오늘 여기서 행여나 주윤발 따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었습니다. 과연 헛되더군요. 


여기서 저는 덤벙댄 까닭에 실수 아닌 실수를 하게 됩니다. 소쿠완에서 용수완으로 가는 코스와 반대쪽 트레일 코스를 타게 된 것이죠. 표지판을 소홀히 본 제 실수이기는 합니다만, 덕분에 저는 아주 멋진 풍경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주황색 코스가 소쿠완에서 용수완으로 가는 코스인데, 저는 아래쪽 붉은 색 코스를 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 번에 라마 섬을 방문하면 아래쪽 코스도 정복해야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초행이니, 용수완쪽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합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과정에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저는 해운대 바다 출신이라, 바다만 보면 그냥 심장이 뛰고 행복합니다. 벌써부터 조던 역에서 사는게 억울하게 느껴지네요. 

자, 이제 표지판을 다시 정신 차리고 제대로 읽고 용수완으로 출발합니다!  

제 스마트폰의 용량이 적은 관계로, 세세한 코스를 다 촬영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래서 장비 욕심을 내는구나, 싶었습니다. 좋은 것들을 사람들과 많이 공유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될 것이 적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풍경들을 여럿 지나치다 보니, 한적한 해수욕장이 나옵니다. 

제 비루한 카메라로 해변의 느낌을 다 담아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케노우치 유카타 주연의 <롱 베케이션> 느낌이 물씬 나는 모래사장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페리를 타고 왔던 인도 커플이 그곳에 자리를 펴고 누워서 칵테일을 마시고 있더군요. 파도가 세지 않았는데도 서퍼들이 몇몇 보드를 들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기 또한 다음에 올 때에는 반드시 오래 머물기로 합니다. 저녁 5시에 침사추이에서 약속이 있기 때문에, 기분나는 대로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용수완으로 가는 길에 키가 매우 큰 서양 할아버지가 윗통을 벗은 채 MTB 자전거를 타고 달려왔습니다. 제게 기분좋게 아침인사를 해주었습니다. 글로벌한 핵인싸의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트래킹하던 사람들 모두와 인사하고 지나갔습니다. 계속 걷다 보니, 그 분께서 올라오신 길의 경사가 상당했습니다. 아, 라마 섬에서 이렇게 즐길 수 있는 삶이 멋지구나, 싶었습니다. 표지판이 엉망인 트래킹 코스에서 제게 길을 가리켜준 근육질의 흑인 청년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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