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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1 홍콩 틴하우 역에서 추석 보내기

한국에서는 20일에서 22일, 그러니까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연휴입니다. 하지만 홍콩의 경우, 중추절 다음날인 22일만 공휴일입니다. 놀거나 쉬는 데 인색한 것은 홍콩이 한국보다 더 심한 듯합니다. 19일 저녁, 중문대학에 박사과정 재학 중인 후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추석 연휴에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말입니다. 노는 데 환장한 저조차도 사실 추석 연휴에 만나서 놀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며칠 전 주말에 주윤발의 고향인 라마 섬을 방문했을 때, 그 섬에 십 년 넘게 거주 중인 영국인 할머니가 21일 밤에 라마 섬에 놀러 오라고 귀뜸을 해주었었습니다. 태국과 같은 풀 문 파티가 해변에서 밤새도록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귀가 솔깃했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 그곳을 갔을 경우,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그야말로 낭패의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해변에서 혼자 맥주 마시다가 슬피 울며 호텔로 돌아와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창밖의 클럽 음악 소리에 잠조차 못 이룬 채 그대로 떡실신하는 광경..그래서 과감히 포기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차후에 설명하겠습니다. 


사실 홍콩중문대학 후배는 2차 백신 접종 안내 문자를 제게 발송하기 위해 전화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23일 접종으로 알고 있었는데, 21일 접종이었습니다. 이틀이 당겨진 셈이지요. 저로서는 오히려 잘 된 일입니다. 다만 21일에 접종하고 당일 저녁에 놀러갈 수 있을까 약간 의구심이 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홍콩에서 과격하게 놀 일이 없으니 문제가 되지 않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홍콩에서 1차 백신 접종 당시, 저는 전화를 개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접종 안내 문자를 보여주어아먄 백신 접종소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후배의 전화번호를 통해 백신 관련 문자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이 문자를 들고 동일한 접종 장소에 가면 되겠습니다. 한편 중추절 행사와 관련하여 웹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21일 저녁에 틴하우 역 근처의 빅토리아 파크에서 거대한 랜턴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제가 속해 있는 센터의 대학원생 두 분도 흔쾌히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중문대학 후배까지 해서 4명의 외국인이 홍콩의 중추절을 즐기기로 합니다. 

https://www.chinahighlights.com/festivals/hong-kong-mid-autumn-festival.htm 


2021년 9월 21일 아침, 저는 프린스 에드워드 역 근처의 바운더리 센터로 향합니다. 아침 9시까지 접종하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지만, 7시 58분에 도착합니다. 어차피 일찍 가면 일찍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1차 접종 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접종은 8시부터 시작되는데, 제가 1번 타자였습니다! 2차 접종 대상자이다 보니, 1차 때보다는 모든 과정이 수월하고 신속했습니다. 질문도 거의 없었고, 접종 후 대기 시간도 30분이 아닌 15분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접종 후 이상 반응이 곧바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접종 장소에서 일정 시간 대기해야 하지요. 

여하튼 결과적으로 사진과 같이 백신 접종을 완료했습니다. 저 종이를 가위로 절취해서 홍콩아이디카드와 함께 들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한편 <Leave Home Safe>라는 앱에 접종 사항을 등록완료했습니다. 이제 어디 가서 누가 접종 여부 확인을 요청하면, 앱을 열어서 보여주면 됩니다. 다만 실물 종이도 가끔은 필요할 때가 있어서 그냥 들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홍콩에는 화이자 백신이 없습니다. 저도 잘못 알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화이자 백신이라 부르는 것은 <바이오&테크>라는 회사의 백신인데, 그것을 화이자가 생산한 경우를 말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BNT라고 보이지요? Bio & Tech입니다. 홍콩에서 제가 맞은 백신은 <바이오&테크> 백신을 중국 회사에서 생산한 경우입니다. 흠, 갑자기 신뢰도가 확 떨어집니다. 하지만 어차피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돌파 감염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인데, 뭐가 문제겠습니까. 일단 백신 접종을 완료해 놓아야, 트래블 버블이 시행될 경우 곧장 한국을 방문해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테니까요. 접종을 마치고 출근하니 아직 9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세이프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 식사를 학교 구내식당에서 끝내고 나니, 6시가 조금 안 되었습니다. 만남 장소는 코즈웨이베이 역에서 틴하우 역으로 바꾸었습니다. 코즈웨이베이 역은 지나치게 붐비며, 어차피 걸어서 빅토리아 파크까지 이동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저와 또 다른 대학원생 분은 일찌감치 틴하우 역으로 출발했습니다. 7시가 약속 시간이었지만, 좀 더 일찍 가서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맛집 마니아가 아닌 제가 틴하우 역에 올 일이 자주 없을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A1 출구로 나오니, 비슷하면서도 다른 듯한 홍콩의 분위기가 펼쳐집니다. 확실히 홍콩 섬 쪽은 최근에 개발되어서인지, 분위기가 구룡 반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홍콩 섬 쪽이 더 좋은데 어떻하면 좋을까요? 어차피 제 숙소가 침사추이 근처라서, 그냥 500원 정도 편도 요금 물고 페리 타고 넘어오면 됩니다. 홍콩의 페리는 자정이 넘어서까지 운행합니다. 참 좋죠? 500원 정도 내고 밤 12시가 넘어서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널 수 있다니! 돈이 많아야만 살 수 있는 경험은 아닙니다. 저도 당장 매일 그러고 싶지만, 9월 30일까지는 조던 역 근처에 살아야 하니까 참습니다. 어차피 10월 1일부터는 침사추이 역 근방에 살 것이니까요.


홍콩중문대학은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셔틀 버스 한 대에 탈 수 있는 인원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캠퍼스를 빠져나가려는 인원이 많으면 자연히 지연되겠지요. 그러다 보니, 중문대학 후배는 조금 지각했습니다. 홍콩시티대학 멤버 3명은 지하철역 근처에서 서성이며 기다렸습니다. 틴하우 역 근처는 오밀조밀한 분위기가 꽤나 정감 있습니다. 맛집도 제법 보입니다. 여성 멤버 한 분은 <sheep & pig>라는 귀여운 이름의 맛집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왔습니다.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언젠가는 먹고 말거야!라는 심정이셨는데, 오늘 성공했다고 합니다. 미디엄으로 적당히 구워진 스테이크가 꽤나 맛난다고 하니, 권해드립니다. 

https://www.openrice.com/en/hongkong/r-sheep-and-pig-tin-hau-western-r623001


마침내 중문대 후배가 도착해서, 우리들은 빅토리아 파크로 이동합니다. 공원이 꽤나 커서, 틴하우 역과 코스웨이베이 역 등 여러 전철역에 걸쳐 있습니다. 저 쪽으로 환한 등불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이제 거의 다 온 모양이군요. 홍콩은 도시가 워낙 작기 때문에, 지도 상으로 꽤나 먼 것 같아도 걷다 보면 금세 도착합니다. 자, 이제 등불 축제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로서는 볼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뭔가 큰 공연이나 행사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늦은 밤이면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제가 본 것은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된 텅 빈 공간에 여러 등불들이 매달려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사진으로 찍으면 예쁘게 나오겠습니다만, 오래 머물 곳은 아닙니다. 이럴 때는 빨리 판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탈출각이 서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빠져나와야만 합니다. 다행히 제가 최고 연장자이고 나머지 분들이 순한 성격이라서, 센트럴 쪽으로 탈출하자는 제의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은 잰 걸음으로 코즈웨이베이 역 쪽으로 향합니다. 끝을 모르고 길게 늘어선 입장 줄을 보니, 탈출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걷다 보니 예수님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대형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체가 무엇일까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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