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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1 홍콩 센트럴과 란콰이펑에서 추석 보내기

코즈웨이베이 역 주변은 쇼핑 천국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우리는 바쁜 발걸음으로 번화가를 지나가다, 하이산 플레이스라는 대형 쇼핑몰 8층~10층에 소재한 서점을 방문하기로 합니다. 중문대학 후배의 요청이었지요. 저는 대학 도서관 지박령이라, 최근에는 서점을 방문하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동양철학전공자인 제가 최신 서적을 접하기에는 일단 읽어야 할 과거의 유산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홍콩의 서점 방문은 책 구입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관광입니다. 인테리어는 차분했고, 18금(여기는 19금이 아닙니다) BL 서적들이 버젓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특이할 만했습니다. <귀멸의 칼날 심리학>이라는 책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거 번역하면 한국에서 꽤나 히트치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울러 BTS에 관한 책 또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 책 번역본입니다. 전세계가 BTS에 열광하는 건가요? 

 

서점의 화장실이 참으로 깨끗하다는 좋은 기억을 남기고, 이제 서점을 빠져나와 역 쪽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왕 가는 김에 홍콩 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명물인 트램을 타고 이동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냉큼 트램에 올라탔습니다. 

중추절 연휴를 앞두어서 그런지, 트램에는 뜻밖에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원래 트램은 2층 제일 앞좌석이 진리 아니겠습니까. 타고 가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트램도 노선이 여러가지이더군요. 우리가 탔던 차량은 센트럴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피 밸리> 종착역에서 내려, 다시 센트럴 쪽으로 향하는 트램으로 갈아탔습니다. 참고로 이 날은 두 번 트램을 탔는데 모두 무료였습니다. 아마 중추절 때에만 한정해서 무료로 운행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얼마 전에 전화를 개통해서 이제 데이터를 써서 구글맵을 사용할 수 있으니 두려운 게 없습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근방에서 하차하여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목표는 소호 벽화 거리 근처에 소재한 <스톤튼스 와인 바 & 카페 Staunton's Wine Bar & Cafe>입니다. 기나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썰렁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처음입니다. 몹시 당황스럽습니다. 그래도 들썩이는 분위기를 연상했는데. 하지만 그래도 <스톤튼스 카페>에 오니, 서양인들이 제법 모여 있어 분위기가 한결 낫습니다. 카페 밖 계단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서양인들이 밖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조금 지켜보니, 벌써부터 술에 취해 맨발로 택시를 잡아타는 친구도 있습니다. 10시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마실 거리를 사서 마시면서 주변을 둘러봅니다. 이 정도면 추석 분위기로 나쁘지 않습니다. 이왕 이까지 걸어왔는데, 란콰이펑까지 섭렵해 보기로 합니다.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니까요. 


홍콩 클럽의 성지인 란콰이펑은 그나마 사람들이 좀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한결 나았습니다. 로컬이 아닌 외국인들이야 따로 갈 데가 없지요. 한국에서도 명절 때에 외국인을 많이 보고 싶으면 이태원으로 가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저녁 10시가 가까웠는데 "해피 아워"를 외치는 삐끼들이 정겹습니다. 추석 특별 할인가인가요? 여하튼 이번 모임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기 위해 기획된 자리가 아닌지라, 여기까지만 하기로 합니다. 앞으로도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센트럴 <데카트론> 매장을 지나 지하철역으로 접어듭니다. 저녁 10시 경이니, 한 3시간 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충분히 밤산책을 즐긴 듯합니다. 다른 멤버들은 홍콩시티대학과 중문대학 기숙사까지 올라가야하고, 저는 먼저 조던 역에서 하차합니다. 아직까지는 몸이 쌩쌩합니다. 화이자 2차 접종 후기를 보면, 보통 다음날부터 타격이 온다지요? 그래서 저는 접종 당일에는 놀기로 했습니다. 추석 연휴인데 어떻게 그냥 보낼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귀가해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샤워한 뒤 잠자리에 드니 꿀맛입니다. 


22일 아침, 기상하니 "신기하게도" 몸살 기운이 있습니다. 어제 무리해서 놀지 않았으니, 백신 후폭풍이라고 봐도 될 듯합니다. 일단 아침에 빨래를 돌리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대학 연구실로 출근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온종일 나른하고 피곤합니다. 막 아프지는 않지만, 계속 졸리고 힘이 없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오늘은 일찍 퇴근해야 할 듯합니다. 사실 출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오늘은 홍콩 공식 휴일이니까요. 다만 좁디좁은 제 숙소에 가만히 누워 있기가 싫었을 따름입니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어 사무실을 나섭니다. 처음에는 지하철을 타고 귀가할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 하는 걷기 운동인지라 걸어서 가기로 합니다. 

몽콕 역을 지나니, 철없게도 또 피가 끓습니다. 제가 방문하고 싶은 PUB이 많이 있습니다만, 고맙게도 그 친구들은 대로변이 아닌 저기 구석에 박혀 있습니다. 만약 제 퇴근길에 그 친구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면, 제가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술집까지 찾아가기에는 귀찮습니다. 한국 친구와 계속 통화하면서 집 근처 할인마트까지 옵니다. 저녁식사는 하기 싫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눈여겨 봐 둔 다이제스티브 세트가 있습니다. 한국은 물론 다른 할인마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친구지요. 오늘 저녁은 밥은 먹기 싫고 다이제스티브를 씹다가 자야겠습니다. 패기로는 엄청난 대용량의 다이제스티브를 다 먹고 잘 기세였지만, 1/4마 먹었는데도 벌써 물립니다. 홍콩 와서 처음으로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자리에 듭니다. 이럴 때에는 충분히 땀을 흘리면서 깊이 잠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내년 9월에는 홍콩에 없을 것이니, 아마 홍콩에서 맞는 처음이자 마지만 중추절일 수 있겠네요. 이만하면 충분히 즐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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