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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0 펭차우 섬 방문

오늘은 지난 11월 20일에 홍콩 펭차우 섬을 방문한 기록을 남기고자 합니다만, 실제로 글을 쓰는 날은 12월 8일입니다. 한국에서는 확진자 수가 7천 명을 넘어섰고, 위중증 환자를 위한 병상이 제대로 확보가 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참고로 홍콩의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12월 8일에 캡처한 홍콩정부 공식 발표 자료인데(12월 7일까지), 국내 발병자(local)는 0명이며, 해외 유입자(imported)는 5명입니다. 제가 12월 자료를 다 훑어보았는데, 국내 발병자는 12월 내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방역을 자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제가 방역 성공 원인을 제대로 알 수는 없겠지만, 코비드-19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외유입 차단 또는 엄격한 통제가 아닌가 합니다. 한국에서 홍콩으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이제 백신 접종 완료 + 21일 자가격리가 강제사항입니다. 그리고 무증상 감염자가 입국한 뒤에 호텔 자가 격리 기간에 증상을 보이는 케이스가 여럿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홍콩에서 오미크론 환자가 2명 나왔는데, 모두 백신 접종 완료 및 음성 결과 확인서를 들고 입국했다가 자가격리 호텔에서 증상을 보였지요. 제가 지난 8월에 21일 동안 자가격리할 때 정말로 죽을 맛이었습니다. 저는 워낙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니, 호텔 자가격리는 21일을 하는 편이 방역에는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호텔 자가격리가 아닌 자택 자가격리 10일을 규정으로 한다는데, 제가 보기에는 허점이 많습니다. 아무쪼록 제 부모와 형제, 친구와 동료들이 있는 대한민국의 코시국이 빨리 종료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1일 자가격리가 풀리고 9월 1일에 홍콩시티대학으로 출근한 지 이제 2달 여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홍콩에서 총 5개의 섬을 방문했습니다. 첫째, 센트럴이 있는 홍콩 섬. 둘째, 트래킹으로 유명한 란타우 섬. 셋째, 주윤발의 고향인 라마 섬. 넷째, 홍콩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인 청차우 섬. 다섯 째, 청차우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그만큼 때를 덜 탄 조용한 섬마을 펭차우 섬. 홍콩에는 그 외에도 여러 섬이 있습니다만, 펭차우 섬 방문을 마친 지금, 저는 '아, 이보다 덜 유명한 섬을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되겠다!'라고 결론이 섰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이야 대동소이하고, 저는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싶은데 펭차우 섬보다 규모가 작을 경우 저로서는 "지나치게" 한적하기 때문이지요. 내년 7월 초까지 이곳에 머물 계획이기 때문에, 이제는 저 다섯 개의 섬을 좀 더 깊이 알아가보자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입니다. 어차피 놀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홍콩 모든 곳을 관광 가이드처럼 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11월 20일은 토요일입니다. 홍콩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교통 요금과 일요일 및 공휴일의 교통 요금이 꽤 차이가 납니다. 뭐, 통 크게 생각하면 그것도 얼마 되지 않지만, 생활 습관이라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토요일을 제 공식 휴일로 잡고 일요일은 평소와 다름 없이 출근 중입니다.(라고 쓰고 일요일도 방황합니다) 금요일 저녁에 와인과 사케, 맥주를 번갈아 마셨더니 아침 몸 상태가 그다지 개운하지 않습니다. 평소처럼 5시 40분에 기상했지만, 이불을 뒤집어 쓰고 다시 잠에 듭니다. 9시가 조금 넘어 다시 깹니다. 이대로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토요일이 너무 아깝습니다. 그래서 계획한 대로 펭차우 섬에 가기로 합니다. 우선 아침 식사를 해야만 하겠죠? 해장에는 역시 매콤한 국수가 제격입니다. 제 호텔 근처에는 간단한 면요리를 파는 식당이 제법 많이 자리하고 있지요. 육수 베이스는 별 차이 없지만 감자로 만든 면이라는 데에 호기심이 생겨 처음 보는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메뉴는 모두 한자로 적혀 있었지요.

결과적으로는 아주 개운하고 좋았습니다. 본디 <성림거>에 가고자 했지만, 동네 새로운 식당을 개척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호텔로 올라와 세면을 마치고 여행에 필요한 짐을 꾸립니다. 그리고 나서 홍콩시티대학으로 출발합니다. 아니, 반대 방향인 침사추이 피어로 가야 하는데 저는 어째서 학교로 출근할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홍콩 섬을 돌아다녀보니, 오후에 가서는 살인적인 뙤약볕에 시달릴 일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오후 4시 넘어서 가면 섬에서 멋진 석양을 즐길 수 있습니다. 보통 펭차우나 청차우 같은 섬에서는 제가 사는 지역으로 출발하는 배가 자정 가까이 있습니다. 그래서 홍콩 섬은 밤에 가는 편이 더욱 좋습니다. 물론 트래킹이 목적이라면 아예 꼭두새벽에 가는 편이 옳습니다. 여하튼 대낮은 절대 비추입니다. 저는 펭차우 섬의 로맨틱한 야경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에, 일단 학교에 가서 잔업을 처리한 뒤 펭차우 섬으로 출발하고자 합니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어제 먹은 술이 덜 깨어 영 어지럽습니다. 그래도 한국에 있는 대학 쪽의 업무를 간신히 마무리합니다. 술은 절대 섞어 마셔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아마 이번주까지는 통할 겁니다. 이제 3시가 넘었으니, 펭차우 섬으로 출발해야겠지요? 이번에는 걸어서 침사추이 페리까지 가되, 구룡공원을 가로질러 가고자 합니다.

부모와 함께 놀러나온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습니다. 맥도날드에서 파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유혹을 참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제 여기에서 페리를 타고 센트럴로 간 다음에, 다시 그곳에서 펭차우 섬으로 이동해야만 합니다.

자, 시간표를 보니 16시 45분 페리를 타면 딱 좋을 듯합니다. 그래서 무심코 옥토퍼스 카드를 찍고 들어갔더니...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는 ordinary ferry (16.6 홍콩달러)를 이용하고자 했는데, 타고 보니 fast ferry(31.0 홍콩달러)였습니다. 여기에서 눈물을 머금고 꿀팁을 제공합니다. 상기한 표에서 빨간색 글자로 표기된 시간대가 ordinary이고, 검은 색 글자가 fast입니다. 따라서 페리를 타실 때에는 항상 글자 색깔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따지고 보면 어차피 1시간을 기다렸다가 ordinary를 탈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것도 경험이지요.

다소 편안한 좌석에 기대어 이제 펭차우 섬에 도착할 시간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내려서 찍은 사진의 시간을 보니 5시 14분이지요? 제가 4시 45분 페리를 탔으니 3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펭차우 섬은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펭차우 섬에서 지는 석양을 촬영하고 싶었으나 아뿔싸, 오후 5시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얄미운 해가 저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실패! 다음에는 좀 더 일찍 섬에 도착해야 하겠습니다.


홍콩 섬에 놀러와 보면, 사실 뭔가 특별히 볼 만한 것들은 없습니다. 다만 그 한적하고 평안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지요. 산책로와 트래킹 코스가 잘 갖추어져 있기도 합니다. 저녁 시간에 왔으니 트래킹은 어렵고 해변을 따라 산책을 시작합니다.

11시 경에 점심을 먹고 난 뒤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이내 배가 고픕니다. 배낭여행자의 촉감이 왠지 저 골목으로 들어가면 맛집이 있을 것이라 신호를 보냅니다. 아니 들어갈 수 없지요.

조그만 펭차우 섬은 청차우 섬과는 달리 주말에도 그다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호호 치킨>이라고 적힌 이 가게에만 사람들이 많습니다. 알고보니 파인애플 번 사이에 아이스크림을 끼운 특제 햄버거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유행인 가게라고 합니다. 모양만 봐도 맛이 짐작 가능하지만, 그래도 달달한 것이 땡겨서 입장하여 착석합니다. 홍콩에서는 테이블을 겸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제 앞에 앉은 커플이 저 때문에 사랑놀음을 주저하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만, 그래도 홍콩 독거노인은 절대 자리를 뜰 생각이 없습니다.

밀크티 한 잔이 먼저 나온 뒤, 이내 이 가게의 시그니처가 제 앞에 배달되었습니다. 속에 든 두 종류의 아이스크림이야 원래 맛있어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저 파인애플 번이 매우 바삭바삭하게 잘 구워져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레스토랑 안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섬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들어와서 속닥속닥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도 정겨웠습니다. 역시 세월아 네월아 하고 앉아 있어야만 그 고장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1시간 가까이 앉아 있다가 계산을 마치고 나와 정처없이 바닷가를 걷습니다. 11월 20일 토요일까지는 날씨가 제법 따뜻했습니다. 일요일부터 기온이 급강하했거든요. 그래서 파도가 잔잔히 밀려오는 바닷가에서 맥주 한 캔을 들고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앉아 있었습니다. 가끔씩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이 제게 눈웃음을 보내주었습니다. 홍콩에서는 길거리 불심 검문이 잦습니다. 특히 침사추이나 센트럴 등 번화가에서는 "튀는" 복장을 한 홍콩 젊은이들을 공안이 불러세워 이것저것 물어보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에게 그러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서양인이야 대번에 구분이 되니 그렇다치고, 저 또한 홍콩인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외모를 지녔나 봅니다.

해변에 지나치게 오래 앉아 있다가 엉겁결에 갑자기 넘쳐 오는 큰 파도에 신발을 적셨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이제는 다시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달이 아주 예쁘게 떴습니다. 21시 15분에 센트럴 피어로 출발하는 페리를 타기로 했기에 이제 슬슬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합니다.

선착장 바로 옆에 소재한 선술집인데, 80년대 빌보드 음악을 아주 기막히게 선곡해서 틀어주었습니다. 다음에 펭차우 섬을 오게 된다면, 여기에서 사케 한 잔 할 용의가 있습니다.

펭차우 섬에 놀러온 고등학생들이 한가득입니다. 아마 페리 안이 꽤나 시끌벅적할 모양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밤 9시 15분에 제가 탄 페리 안은 운동부 고등학생들과 꼬맹이들의 대화와 웃음소리로 잔치집 분위기였습니다. 홍콩 밤바다를 수십 분 동안 가로질러 가는 ordinary ferry 안에서 저는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홍콩 독거노인이다 보니, 사람이 그리워서인지 주변 상황을 좀 더 유심히 지켜보게 되더군요. 센트럴 피어에 도착하니 10시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란콰이펑에 가서 맥주 한 잔 더 할까 하다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오늘은 여기까지! 라고 결심하고 다시 침사추이로 가는 페리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도 올렸던 <헤리티지 1881>의 크리스마스 트리입니다. 여기 침사추이에서 숙소인 조던 역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침사추이 주변 번화가를 유유자적하다가 숙소에 돌아오니 12시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참지 못하고 넷플릭스 <지옥>을 보다 보니 새벽 3시. 내일 일요일에 과연 제가 출근할 수 있을까요? 그런 걱정을 왜 미리 합니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결과적으로 출근은 아침 일찍 했습니다. 참으로 여운이 남는 토요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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