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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8 홍콩 침례교회 방문

홍콩 셩완 역 <칼리 멕스>에서 점심을!

오늘은 2021년 11월 28일 일요일입니다. 홍콩 조던 역 지하철 첫차(06:13)를 타고 사무실로 출근해서, 일단 브런치 글을 써놓습니다. 어젯밤 <비사지 원> 공연에 대한 멋진 기억을 서둘러 적어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서 10시가 조금 넘어 홍콩 MTR 셩완 역으로 출발합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산업은행 동기와 함께 홍콩에 소재한 교회를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저보다 한 살 많은 동기는 실은 이미 산업은행을 나와서 우리은행 홍콩지점에서 몇 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와이프는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편한 교포이고, 지금은 홍콩에서 영어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저는 모든 종교를 섭렵하고(?) 이제는 "나홀로교"를 실천 중입니다. 하지만 홍콩의 교회는 어떤 분위기인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경험 삼아 가보기로 했습니다. 


셩완 역 A2 출구로 나와서 동기를 기다리다, 시간이 제법 남아 주변을 돌아봅니다. 

어제 방문했던 할리우드 로드와 그대로 연결됩니다. 셩완에서 센트럴로 이어지는 할리우드 로드에는 앤티크 상점이 매우 많습니다. 그 가게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했는데, 역시 부자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앤티크 상점 건물주가 상점까지 "취미로" 그냥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한 채에 백억이 넘는 아파트를 여럿 소유한 홍콩 부자들이 자식들에게 증여 수단으로 골동품을 사모으기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맨 아래에는 "고흐 스트리트"가 보이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빈센트 반 고흐의 이름을 따서 만든 거리입니다. 비록 가보았자 고흐의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만, 홍콩 예술인들이 집결한 "소호 거리"의 멋진 분위기가 고흐 스트리트까지 번져 있지요. 


이렇게 멋진 분위기의 거리를 마냥 걷는 것이 제 소소한 취미입니다. 참고로 제가 홍콩에 오래 산 분들과 견해를 함께 한 점이 있습니다. 홍콩에는 음식의 퀄리티가 평준화되어서, 딱히 맛집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홍콩 3개월 살면서 블로그에 자주 나오는 가게는 거의 다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게와 같은 메뉴를 파는 다른 이름 모를 레스토랑도 가보았습니다. 다 비슷하고 다 "맛있습니다." 굳이 특정 레스토랑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 블로그보다는 서양 블로그를 참조하는 편이 차라리 낫습니다. 저는 인스타에 "갬성 사진"을 올리기 위해 가게를 억지로 방문한 뒤, 두드러진 개성도 없는 음식에 자지러지는 인플루언서가 아닙니다. 아직까지 홍콩을 방문해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그리고 저와 취향을 공유하는 분이시라면, 홍콩에 오셔서 거리를 마음껏 걸으시고 해변 하이킹을 하시고 섬 트래킹을 하시고, 유명한 미술관과 박물관을 많이 방문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란콰이펑 핼러윈 축제나 11월 와인 페스티벌을 비롯해서 홍콩에서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축제 기간에 맞춰서 방문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11시 5분에 동기 형을 만나서 교회로 이동합니다. 화려한 셩완 역 대로를 지나 골목길로 들어서니, 건어물 냄새가 코를 확 찌릅니다. 본디 셩완은 이와 같은 건어물 가게가 많은 서민적인 분위기가 짙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센트럴이 발전하면서 이제 바로 옆 구역인 셩완까지 으리으리한 마천루가 들어섰지요. 아마 여기에서 장사하시던 분들 상당수가 변두리로 이동하셨을 겁니다. 저 혼자서는 도저히 찾아올 수 없을 난이도의 코스를 거쳐서 마침내 교회에 다다릅니다. 조그마한 개척 교회에 들어서니, 목사부터 시작해서 서양인과 인도인, 동남아인들이 가득한 분위기에 놀랍니다. 저는 한인 교회인 줄로만 알았는데, 서양 선교사가 담당하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https://islandbaptist.com.hk/

키가 크고 선량한 외모의 목사가 저를 반갑게 맞아줍니다. 영어 모드를 아직 ON하지 않았는데, 혀가 꼬입니다. 그는 홍콩 뱁티스트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입니다. 나이가 저와 비슷한데 벌써 자녀가 3명 있습니다. 전공은 동양 예술입니다. 미학 전공자인 셈이지요. 하지만 신학자인 만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이 아주 진지하고 깊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모든 신학의 관심사는 "악의 기원"입니다. 온전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한 이 세계에 어떻게 악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원죄(original sin)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기원했을까요? 악의 기원을 알아야만 악을 뿌리 뽑을 수 있는데, 도대체 악의 기원은 무엇이며 어디에 자리 잡고 있을까요? 동서양 모든 철학은 결국 이 악의 기원 문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미국과 홍콩 여러 대학에서 온라인으로 신학 강의 중이십니다. 그는 제게 한국 철학에 대해 많이 가르쳐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마도 제가 배울 점이 더욱 많을 듯합니다.  


홍콩의 교회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인원 제한을 합니다. 가령 좌석 수가 50개이면 25명 이상은 받을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예배를 하루에 몇 번씩 나누어 진행합니다. 목사님들의 고생이 만만치 않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에 앞서, 필리핀 여성들이 주축이 된 성가대가 노래 연습을 합니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헬퍼(helper)라고 불립니다. 쉽게 말해 가정부입니다. 홍콩의 집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십니다. 이분들은 일요일 하루만 휴식이 허락되는데, 주로 센트럴이나 침사추이 해변가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십니다. 대체적으로 웃음이 많고 사람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주일에 하루 허락된 휴일을 모두 신앙에 바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교회에는 정말로 일이 많기 때문이지요. 저와 같은 한량을 숙연하게 만드는 참그리스도인입니다. 


이윽고 나이가 50세 전후인 부목사가 다정하게 다가와서 인사합니다. 산악 트래킹을 좋아하는 이 거구의 미국인 또한 자녀가 3명이라고 합니다. 작년에 따님이 결혼했는데, 옐로우 마운틴 국립공원을 한겨울에 찾아가 눈밭을 즐기며 신혼여행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며 즐길 것 또한 많습니다. 

11시 30분에 2차 예배가 시작됩니다. 놀랍게도 제 기억에 주기도문을 외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한인 교회에서는 기본이지만 말이지요. 영어로 진행되는 예배에서 찬송가를 여럿 부르고 성경 말씀을 배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믿음(faith)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동양철학의 음양오행에서 "땅"은 믿음을 상징합니다. 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질세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선하신 하나님의 창조물인 만큼 땅은 선합니다. 땅에는 악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은 땅에 대한 "사용권"만을 지닐 뿐, 땅에 대한 "소유권"을 지니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인데 어째서 인간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단 말입니까? 워낙 부동산 개념에 찌들어 있으니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땅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면 바다나 하늘 또한 하나님의 창조물이니 조건이 같겠지요? 그런데 하늘에 대한 소유권이 인간에게 있을까요? 물론 인간은 국가별로 하늘까지 영역을 쪼개 놓았습니다. 하지만 하늘이나 바다에 이르면, 이것이 인간의 "소유물"이라고 여기는 개념이 얼마나 허황되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늘을 "소유"한다고요? 일본의 하늘과 미국의 하늘이 따로 있다고요? 하늘과 땅과 바다에게 물어는 보았습니까? 하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이없겠지요. 타조나 오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자연물에 대한 "사용권"이 인간에게 인정됩니다. 하지만 가장 본래적인 의미로, 자연은 인간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잘 사용하라고 넉넉하게 제공해 준 자연을 "일부의" 인간이 독점하고 전유하며 그로 인해 다른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물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은 "죄악"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본 주택 등의 이론 또한 옳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이론은 표면적 주장과는 달리 실질적으로는 일부 세력의 부동산 독점 체제를 강화함과 동시에 중산층과 서민들 주거의 질을 형편없이 하락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꼭 독극물을 퍼먹어보아야만 그것이 치명적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대장동 게이트>와 엮인 혐의가 있는 인물이 주장할 내용은 아니지요. 


예배를 마친 뒤, 산업은행 동기 형의 가족 및 장인 장모와 인사를 하고 우리 둘은 셩완 거리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늦은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해서이지요. 할리우드 로드를 따라 앤티크 상점들을 지나칩니다. 프랑스인들이 모여 사는 홍콩의 "서래 마을"에는 일요일 아침에 브런치에 와인을 곁들여서 얼근하게 취한 서양인들이 고급 레스토랑 노천 테이블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여유가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한국에서는 노천 바를 찾아보기 어렵지요. 이태원 프리덤의 일등 공신인 "홍석천" 형님께서 한시바삐 용산구청장이 되셔서 이태원을 중흥시키셨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지방선거 때 나와주셨으면 좋겠는데... 요즘 홍석천 TV의 수위를 보니, 아마 출마가 어려울 듯합니다. 석천이 형.... 비록 성적 취향은 다르지만, 제가 열심히 응원하고 있어요! 코로나로 인해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태원을 홍콕과 방콕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석천이 형밖에 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eAu14-HUtY


홍콩에는 이와 같이 전통적인 신들을 모시는 사당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꽤 규모가 있는 편인데요, 불교 사당입니다. 제가 절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까닭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홍콩 전역에 자리하고 있는 멕시칸 요리 체인점인 <칼리 멕스>에 입장합니다. 

대낮부터 제가 좋아하는 클럽 음악을 빵빵하게 틀어놓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 동기 형이 메뉴를 골랐고 제게 술을 권했지만, 낮부터 술을 마시면 하루를 날릴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마실 걸 그랬습니다.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은지....

샐러드와 나초, 퀘사딜라 등 다양한 요리를 주문했는데, 양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아마 저를 배려해서 넉넉하게 주문한 것입니다만, 형이 입이 짧은 편입니다. 그 때문에 사진에 널려 있는 음식을 제가 거의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저 또한 16:8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이라, 식사량이 많지 않습니다. 워낙 맛있는 데다가 남기기가 아까워서 2시간 넘게 대화하면서 다 먹었지요. 그 결과, 너무 부대껴서 귀가하자마자 무려 낮잠을 3시간이나 잤습니다! 여자 친구와 여동생 가족의 안부전화까지 놓쳐가면서 말이지요. 과식을 할 경우, 그것을 소화시키는데 모든 혈류와 에너지가 집중되면서 자연스레 잠이 쏟아집니다. 저의 경우에는 특히 졸음이 쏟아지는 경우가 심한데요, 이 때문에 일부러 업무시간에는 식사를 적게 합니다. 그래야 졸리지 않으니까요. 여하튼 이 레스토랑은 맛과 양에 있어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귀가 후에 검색해 보니, 방문평이 매우 좋더군요. 저같이 위장이 손톱만 한 사람의 경우에는 1인분만 시켜도 충분할 듯합니다. 메뉴 하나가 HKD130 내외인데, "all day breakfast"라고 해서 HKD88 정도의 메뉴가 있습니다. 10% 서비스차지까지 포함하면 15,000원 정도의 메뉴인데, 양이 딱 적당한 듯합니다. 가끔씩 멕시칸 요리가 당길 때, 이곳을 다시 찾을 듯합니다. 4시가 넘어 귀가하여 폭풍 낮잠 3시간을 자고 나니,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든든히 먹고 나니 식욕이 없고, 본디 리펄스 베이와 스탠리 비치에 가서 석양을 보려 했으나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그래서 홍콩 독거노인은 넷플릭스를 보면서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다가, 일요일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래도 참으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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