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11225-1 홍콩 한인성당 방문

크리스마스에 홍콩의 옛 경찰서와 라이브 재즈바를 방문하다 

오늘은 202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데이입니다. 경건한 날이니까 놀아야지요. 하지만 어제인 크리스마스이브 이야기부터 좀 해야겠습니다. 저는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에 7시 반까지 사무실에서 근무한 다음, 센트럴로 이동해서 저녁 8시부터 '바 호핑(bar hopping)'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첫 번째로 방문을 목표한 곳은 <애프터매스>입니다. 라이브 공연을 하는 뮤직바인데, 제가 평소에 방문하고 싶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을 제외하고 크리스마스이브에 특별 이벤트를 하는 뮤직 바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조금 이름이 있다 하는 곳은 입장료가 HKD 600(8만 원)에서부터 시작하더군요. 물론 더욱 고가의 클럽도 없지 않겠지요. 제가 가고자 하는 곳은 아닙니다. 저는 청담동이나 대치동의 클럽, 예컨대 <버닝썬>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입장료를 받는 대형 고급 클럽은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클러버가 가기에 부적절한 장소입니다. 그곳은 주로 '작업'과 '작업 그 이상'을 위해 그만한 금액을 지불하고 테이블을 잡는 곳이지요. 그냥 <버닝썬>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고급 클럽에 테이블도 잡지 않고 스탠딩으로 입장한다? 그냥 2층에 룸을 잡고 난간에서 중생들을 가련하게 내려다보는 이들의 희생양일 뿐입니다. 물론 남성에 한해서이지만 말이지요. 진정으로 음악과 춤을 즐기는 클러버들은 명망 있는 대형 클럽을 찾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1998년부터 클럽에 드나들었던 '고인 물 클러버'의 편견에 가득 찬 소견이었습니다. 여하튼 저는 좀 더 마이너하고 색다른 클럽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첫 번째로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던 곳이 하단의 <클럽 애프터매스> 바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 행사를 저녁 8시부터 시작한다더군요. 

https://www.hkclubbing.com/events/details/11258-japanese-xmas-eve.html


제 글에 자주 등장하는 데카트론 매장이 파란 글씨로 지도 우측 상단에 새겨져 있군요. 란콰이펑의 라운지 바들은 대충 위치가 고만고만합니다. 이제 어디든 익숙하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애프터매스 바>는 제가 <아이언 페어리>를 가면서 항상 지나치던 곳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저는 란콰이펑에는 갔습니다만 <애프터매스 바>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통상적으로 란콰이펑 거리에서 Street Party가 열리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경찰들의 경비가 전역에 매우 삼엄했습니다. 게다가 <애프터매스 바>는 저녁 8시 반쯤 도착했을 때에도 텅 비어 썰렁했습니다. 김이 빠져 버린 저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스타페리를 타고 침사추이로 곧장 넘어간 다음에 바닷길을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귀가했습니다. 그리고 병맛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저답게 넷플릭스의 <패러다이스의 경찰들>을 낄낄거리면서 보다가 잠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오전에 다소 늦게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데이, 오전에는 한인성당에서 크리스마스 미사를 드리고 오후부터 밤까지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재즈바 등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제 산업은행 동기인 기혁 형과 윤진 형이 모두 성당을 다닙니다. 다만 두 어르신의 성당 방문 시간이 다른데, 저는 오전 10시 반 미사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유사) 가톨릭 신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인은 아니며 성당을 가지도 않습니다. 다만 홍콩에서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워낙 인적 교류가 드물어, 이제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 방법을 고심 중에 있습니다. 여하튼 한인 교회와 성당이 몰려 있는 셩완 역으로 출발합니다. 

예전에 교회를 방문했을 때에도 셩완 역 A2 출구로 나왔더랬습니다. 이번에는 교회가 아닌 성당입니다. 진지하신 신도들께서 제게 분노를 터뜨릴까 걱정이 됩니다만, 그냥 진지하지 못한 양반이라고 저를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저야 교회건 성당이건 어디에서나 저보다 훌륭한 인품의 분들을 만나서 감화받는 은택을 누릴 따름이니까요. 일단 기혁 형을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10시 30분 미사인데 10시까지 보기로 했으며, 저는 9시 반쯤 커피숍에 입장했습니다. 

<카페 조마토>입니다. 지나서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본디 기혁 형이 저를 만나고자 했던 카페는 여기가 아니었습니다. 성당 앞에 카페는 하나뿐이라고 하니, 제가 알 턱이 있어야지요. 실제로 '카페'라는 이름이 상호로 적힌 곳은 여기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 <카페 조마토>를 무척이나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중년의 멋진 여성께서 제 아이스 맛차 라테를 준비해주고 계십니다. 마스크를 써서인지, 사진만으로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홍콩 대부분의 카페가 그렇듯이, 규모가 매우 작습니다. 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잔뜩 내었습니다. 제 옆에는 누가 봐도 품위가 넘치는 노년의 홍콩 여성께서 브런치를 주문해서 드시고 계셨습니다. 카페의 분위기는 매우 따뜻하고 주인은 친절합니다. 

제가 맛나게 말차 라테를 마시고 있으려니, 기혁 형이 헐레벌떡 입장합니다. 제가 일찍 도착했다고 카톡을 보냈더니,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기혁 형은 정말로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산업은행 04행번 동기인데, 지금은 은행을 나가서 홍콩의 모 금융회사에서 근무 중입니다.(여기서 '모'라고 표현한 까닭은 제가 진짜로 이름을 까먹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디스커버리 베이에서 멋진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하니, 형은 리펄스 베이가 디스커버리 베이보다 훨씬 비싼 동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로서는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솔직히 저보고 두 군데 가운데 하나를 골라 살라면 디스커버리 베이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예 센트럴이나 케네디 타운에 살 게 아니라면 말이지요. 기혁 형도 몇 년 전까지 리펄스 베이에 살았지만,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난 뒤 다른 타운으로 이사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제는 부부 동반으로 리펄스 베이에서 바비큐 파티를 가졌다고 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형의 눈에서 와인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뒤에 제가 다른 은행 동기를 만나서 물어보니, 디스커버리 베이는 집값이 본디 리펄스 베이의 반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역시 전통의 강호가 남다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굳이 돈을 넉넉히 주고 살라면 디스커버리 베이에 거주하겠습니다. 센트럴까지 왕복하는 페리가 늦게까지 있어, 뭐 놀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제 끝도 없는 수다를 뒤로 하고 한인성당에 입장합니다. 그래도 미사 중에 사진을 찍을 수는 없기에, 제가 머문 방을 미사 전에 한 장 찍어두었습니다. 

미사가 시작되고 성가가 울려 퍼집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한국인들을 한꺼번에 많이 보니 얼떨떨합니다. 기혁 형은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드리는가 했더니, 어느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어제 마신 술이 덜 깬 탓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크리스마스 미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더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홍콩에 온 지 어느덧 5개월, 하지만 뚜렷한 목표 없이 그냥 주어진 일을 하고 이래저래 살다 보니 한 해가 끝나도록 성취한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게으른 습관은 1월 1일부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서 한 번에 고쳐지지 않습니다. 꾸준히 제 자신을 찾아나가야 하는데, 저는 제 자신을 많이 잃은 채 살고 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미친 듯이 투쟁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일을 하면 누가 말리지 않아도 즐거이 열심히 할 터인데, 저는 지금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아웃사이더(이방인)'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영어로는 The Stranger 또는 The Outsider 등 크게 두 단어로 번역됩니다. 어느 쪽이 더 적절한 번역일까요? 본디 outsider가 사람들에게는 stranger로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참으로 미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는 단어가 바로 '이방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저는 신약성경의 탕자(prodigal son) 이야기를 몹시 사랑합니다. 아무리 탕자라도 아버지의 아들은 아들이며, 아버지께서는 언제든지 두 팔 벌려 탕자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지요. 고개를 돌리면 바로 계신 분이 아버지인데, 저는 왜 이렇게 목이 뻣뻣한지 알 수 없습니다. 


미사가 모두 끝나고, 놀랍게도 모든 성도들에게 와인 한 병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저는 오늘 처음 방문했는데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래도 계속 성당에 나오라는 메시지일까요?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기혁 형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함께 미사에 참석한 대학원생과 성당 정문을 나섭니다. 홍콩대학교까지 걸어가서 후난성 스타일 레스토랑에 방문해, 정말로 배가 터질 듯 성찬을 즐깁니다. 예전에 제가 브런치에서 한 번 소개했던 곳입니다. 

https://www.openrice.com/en/hongkong/r-jiangs-hunan-chef-western-district-hunan-r445386

1인당 128불을 내면 요리 2개를 주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2명이니, 총 4개의 요리를 주문할 수 있었지요. 쌀밥은 기본으로 제공되며, 무한 리필입니다. 서비스 차지는 없습니다. 사실 홍콩에서 이런 레스토랑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하튼 우리는 마라향으로 버무려진 육류 요리 및 생선 요리를 주문해서 벨트를 풀고 먹었습니다. 홍콩대학교나 케네디 타운 근처에 오면 필수 방문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식사를 마친 뒤 오후 약속 장소인 센트럴까지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케네디 타운의 바다내음을 만끽하며 걷다가, 스타벅스에 가서 꿀단지 대화를 풀기로 했습니다. 홍콩 스타벅스는 신규 가입자에게는 1+1 쿠폰을 발행합니다. 감사하게도 대학원생께서 홍콩 독거노인과 함께 쿠폰을 쓰는 은사를 내리셨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군대 스토리와 초중고 때 저질렀던 귀여운 말썽 등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스토리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만, 여기에서 잠깐 이야기를 끊고 가야만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11218 홍콩 침사추이 라이브 바 올나잇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