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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8 홍콩 침사추이 라이브 바 올나잇롱

침사추이의 올나잇롱 All Night Long을 방문하다 

오늘은 2021년 12월 18일 토요일입니다. 제 공식 휴일이기도 하지요. 어제 <무디타>에 가기 전에 와인 한 병, 그리고 <무디타>에서 와인과 칵테일 각각 한 잔씩을 마셨더니 아침에 타격이 있습니다. 확실히 와인이나 막걸리를 마신 뒤에는 숙취가 따라옵니다. 다시 맥주 또는 진으로 술 종류를 바꾸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물론 미리 구입해 놓은 옐로우테일 와인은 맛있게 비워야죠.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술은 단연코 와인입니다. 아, 제가 한성대입구 역 근처에 살았을 때 12월 중순이면 지하철역 근처 광장에서 세계 크리스마스 음식 축제가 열리곤 했습니다. 시나몬 가루를 섞어 따뜻하게 데운 와인이 아주 기가 막혔지요!('뱅쇼'라고 부릅니다만, 뱅쇼를 만드는 방법도 나라마다 다르더군요.) 말해놓고 보니, 제가 굳이 뱅쇼를 못해먹을 이유가 없군요. 시나몬 가루를 구입한 뒤, 와인을 중탕하면 되니까요. 물론 알콜은 많이 날아가버리겠지만, 꼭 취하려고 먹는 것은 아니니까요. 홍콩 독거노인은 조만간 뱅쇼에 초컬릿 케이크를 곁들여서 멋진 연말을 쓸쓸히...쓸쓸히...혼자서 홍콩에서 보내야겠군요.  


토요일인 오늘은 본디 <비사지 원>을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대충 마무리한 뒤, 저녁 7시 반에 사무실을 나섭니다. 나무 사이로 비죽 솟은 달이 참 예쁩니다. 

그런데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면서, 점점 생각이 바뀝니다. 오늘은 또 다른 곳을 탐험해 볼까?

자, 이제 센트럴 역으로 넘어가는 지하철을 탈 것인가 아니면 구룡반도 내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것인가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학교를 빠져나와 <페스티벌 워크>로 진입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마음먹습니다. 오늘은 침사추이에 있는 라이브 바를 가보자! <올 나잇 롱 All Night Long>이라는, 세간의 평이 좋은 라이브 공연장이 침사추이 너츠포드 테라스에 있습니다. 오늘은 그곳을 방문해서 밤새도록 즐기다가 쓰러져 자볼까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프린스 에드워드 역을 지나 몽콕 역으로 들어섭니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지나다니면서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세온 스타일 Seon Style>이라는 쇼핑몰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올 나잇 롱>에서는 공연이 저녁 9시 45분부터 시작됩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내친김에 <세온 스타일>에 들어섭니다. 

입구에서부터 저를 사로잡은 것은, 그렇습니다. 바로 '한국 닭고기 냉면'입니다.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런 평범한 닭고기국수에 왜 관심을 두느냐고 말이지요. 저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입니다. 유달리 맛집을 찾지도 않지요. 하지만 역시 덜큰하거나 느끼하지 않고 맛이 깔끔한 한국 음식이 제게 가장 잘 맞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일단 저 친구를 마음속에 새겨두고 2층으로 올라갑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이곳에 방문하기 참 잘했습니다. 저는 한국과 일본의 <다이소>와 같은 매장을 찾기를 원했습니다. 홍콩에는 <돈돈 돈키>와 <JDC mall>이 그와 유사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제가 진정 필요로 하는 물품을 한국의 다이소처럼 적재적소에서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세온 스타일이 다이소와 가장 가까운 상품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본 다이소가 한편에 직접 들어와 있기도 합니다. 앞으로 소소한 생활용품이 필요할 시, <세온 스타일>을 꼭 찾기로 합니다.

윈도우 쇼핑을 즐긴 후, 1층에 내려오니 이제 마감 시간이 다 되어 '떨이 제품'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36 홍콩달러 제품의 가격이 29 홍콩달러로 내려갔네요. 한국 비빔밥입니다. 일본쌀을 썼다고는 합니다만, 아, 이건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냉큼 구입해서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내일 점심때 해치우기로 합니다. 이제 비닐 백에 비빔밥을 들고 즐겁게 호텔로 돌아온 뒤, 잠시 숨을 돌리고 침사추이로 출격합니다. 


너츠포드 테라스 거리는 침사추이에 있는 작은 유럽입니다. 홍콩섬에 란콰이펑이 있다면, 구룡반도에는 너츠포드 테라스가 있지요. 물론 규모 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너츠포드 테라스 거리를 직선으로 걸어가면 1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수많은 레스토랑은 각자 개성을 뽐내며 수많은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죠. 

프린스 에드워드 역을 지나 침사추이까지 직선으로 쫙 뻗어내려 가는 대로인 <나단 로드 Nathan Road>를 걸어가다가 왼편에 <미라 플레이스>가 보이면 발길을 돌려 걸어가시면 됩니다. <미라 플레이스>는 일본 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고급 쇼핑몰입니다. 중국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지요. 

<미라 플레이스>와 KFC를 지나쳐서 걷다 보면 이제 너츠포드 테라스로 진입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나옵니다. 한국에도 들어와 있는 <타이거 슈가>가 보이네요. 저 계단에는 자정이 넘으면 많은 젊은이들이 걸터앉아 술과 담배를 즐깁니다. 홍대나 이태원 클럽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클럽에서 놀다가 잠시 숨 돌리러 나오는 놀이터나 공터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제가 10월 내내 침사추이 게스트하우스 남녀 혼숙 도미토리에서 제 덩치의 두 배가 되는 라틴소녀들의 밤새운 수다에 시달리며 괴로움을 겪을 때, 저 계단에 앉아서 <365 슈퍼마트>에서 사온 HKD 16의 다이제스티브 크래커를 씹고 넷플릭스를 시청하며 시름에 잠겼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사실 사진에서 보는 것만큼 그렇게 청결한 장소는 아닙니다. 하지만 젊음이 있고 활기가 있습니다. 화면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계단 곳곳에 플라스틱 의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굳이 계단에 걸터앉을 이유도 없지요. 여하튼 저곳에 앉아서 잔뜩 꾸미고 나온 젊은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아, 역시 힘들었던 시절이 가장 추억이 되는군요. 뜬금없이 조지 오웰의 <버마 시절>이 왜 이리 읽고 싶을까요. 그의 초기 작품이라 많은 이들에게 낯설기는 하지만, 저는 그의 생생한 체험이 담긴 <버마 시절>을 좋아합니다. 이제 홍콩에 있으니, 영어 원서를 대여해서 읽을 수밖에 없겠네요. 강제로 영어 공부하는 괴로운 기쁨을 만끽해야겠습니다. 


  

에스컬레이터 꼭대기에서 너츠포드 테라스를 내려다봅니다. 아직 9시 반밖에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즐길 줄 아는 홍콩인들은 대충 밤 11시가 넘어서야 발동이 걸리더군요. 밤을 새워 노는 문화가 홍콩에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물론 철저한 입국 통제를 통한 코비드19 관리가 뒷받침해주기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좁은 통로들을 따라 여러 레스토랑을 지나치고 나면

이렇게 <올 나잇 롱>이 나옵니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일을 겪습니다. 제가 9월 초에 이 앞을 지나면서, 나이가 지긋한 라틴계 여성 스태프에게 여기 영업시간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는 이 뮤직 바를 방문하지도 않았지요. 그런데 그 여성 스태프가 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환하게 맞아주었던 것입니다. 가게 영업을 하는 분들 중에 정말로 한 번 본 고객을 절대 잊지 않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전혀 다른 복장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도, 그때 저의 복장과 저를 보았던 시간 대까지 그대로 읊는 것이었습니다. 3달 전이었고 가게에 들어가지도 않았었는데. 여하튼 그녀의 따뜻한 환대 속에 <올 나잇 롱>에 입장했습니다.  

공연이 9시 45분에 시작되는데, 35분이 되어도 아직까지 밴드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입장하는 시간인 11시가 되지 않아, 다소 한적한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홍콩 독거노인이 '명당'을 잡기에는 아주 좋은 때입니다. 스테이지가 가장 잘 보이는 명당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이 자리는 비싼 와인 세트를 시킨 모임이 주로 차지하는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천재적인 기억력을 지닌 선임 매니저의 배려로 저는 명당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기네스 흑맥주 캔을 주문하고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앉습니다. <올 나잇 롱>에서는 HKD100 미만은 현금 결제입니다. 90불에 서비스 차지 10%를 해서 99불이었는데, 과연 종업원들은 1불을 거슬러주지는 않았습니다. 공연료나 입장료는 따로 지불하지 않습니다. 사실 라이브 공연을 즐기는 입장에서는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더 저렴한 듯합니다. 

제 뒤에 앉아 있던 청년들이 꿈틀꿈틀 일어나더니, 무대로 나갑니다. 알고 보니, 그들이 바로 오늘의 무대를 장식한 스타들이었습니다. 몇 번 합을 맞춰본 뒤 밴드는 곧바로 연주를 시작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공연장 앞쪽이 투명 유리로 막혀 있습니다. 코비드19 대비 차원이겠지요. 이야, 저는 이 밴드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우선 여자 보컬이 정말 노래를 잘합니다. 비록 체구는 자그마하지만, 엄청난 성량을 지니고 있으며, 비욘세나 머라이어 캐리 등의 고음 노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히 소화해냅니다. 한편 오른편에 청바지에 흰 운동화를 신고 있는 남성 보컬은 목소리가 정말 좋습니다. 성시경 스타일로 달콤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카랑카랑하고 세련된 보이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대 매너 또한 화려하고, 정말 노래를 잘합니다. 뒤의 밴드 또한 음악의 성격에 맞게 무난하게 연주를 해내고 있습니다. 매우 많은 무대 경험을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드 시런이나 마룬5 등 가장 유명한 곡들을 자기 스타일로 연주하고 노래하는데, 저는 아주 좋았습니다. 이 밴드로 밤새울 줄 알았는데, 1시간의 떠들썩한 공연을 마치고 황급히 퇴청합니다. 


15분 동안의 인터미션을 마친 뒤, 이번에는 남성 보컬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교체된 새로운 무대가 준비됩니다. 

이 밴드에도 저는 반해버렸습니다. 뒤에 노란 티셔츠를 입고 있는 베이스 연주자는 나중에 락 음악을 연주하며 구슬피 노래했는데, 제가 홍콩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그런 음악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1980년대와 90년대 음악에도 익숙한 사람인지라, 본 조비나 메탈리카 풍의 음악을 라이브로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클럽 신에서 접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지요. 이 나이 지긋한 베이시스트가 제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 여성 보컬은 굉장히 파워풀한 안무를 소화해내면서도 질러대는 목청이 엄청났습니다. 레퍼토리는 역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곡들이었습니다만, 이들 또한 자기 스타일로 소화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점점 덩실덩실 춤을 추는 클러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진의 시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미 11시가 훌쩍 넘었지요. 


12시가 조금 못 되어 이번 밴드의 공연도 종료되고, 다시 인터미션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선수들의 입장이 이어지며 <올 나잇 롱>은 점점 붐비기 시작합니다. 아, 인터미션 시간에는 DJ가 음악을 틉니다. 그래서 클럽 분위기가 이어지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저는 계속된 밴드 공연을 기대했었는데, 아쉽게도 <올 나잇 롱>에서는 12시까지 2개의 밴드 공연만 있고, 그 이후에는 계속 클럽으로 운영되는 듯합니다. 적어도 제가 방문한 토요일에는 그러했습니다. 저는 그만 김이 새어버립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이는 홍콩 독거노인에게 너무 늦게 놀지 말고 귀가하라는 신의 계시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 옆에서 와인 병을 쌓아놓고 키스하고 있는 숱한 20대 커플들을 뒤로하고 저는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외모에서부터 머리 스타일까지 똑같아서 제 소름을 돋게 했던 고객께서 제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듭니다. 40대 전후로 보이는 그녀는 직장 동료로 보이는 다른 여성들과 함께 자리했습니다. 여기는 라이브 공연장이자 라운지바이기 때문에,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서 놉니다. 머리가 하얗게 새었지만 멋지게 차려입은 분께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제 저는 퇴청 타임입니다. 

가게를 떠나기 전에 들른 화장실 입구 그림입니다. 이런 디테일에 매우 강한 뮤직바 같습니다. 이제 <올 나잇롱>을 빠져나오면서 너츠포드 테라스의 레스토랑들을 하나하나 훑어봅니다. 먼저 <메이즈>입니다. 

그 옆에는 <다운타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분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던 <어셈블리>입니다. 

<어터 테라스>에는 아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너츠포드 테라스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페이스 X>입니다. 오늘도 시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너츠포드 테라스 거리 입구에 자리한 <포트>입니다. 예전에 여기서 와인 한 잔 했더랬습니다. 

<원 너츠포드>라는 빌딩인데, 전체가 엔터테인먼트 공간인 듯합니다. 젊은이들이 이 빌딩으로 항상 쏟아져 들어가는데,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너츠포드 테라스의 초입에 있는 <눈 먼 돼지>입니다. 눈 먼 돼지처럼 술을 퍼마시라는 뜻일까요?

이렇게 해서 오늘 홍콩 침사추이 너츠포드 테라스 <올 나잇 롱> 모험이 모두 끝이 났습니다. 조던 역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24시간 영업하는 <돈돈 돈키>가 환히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고독한 미식가' 스타일로 주로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음악 공연이 없는 라운지 바 등에 앉아 있기에는 다소 적적합니다. 그래서 공연장을 찾아다니기를 즐깁니다. 아쉽게도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많은 라이브 공연장이 문을 닫았습니다. 가령 제가 가장 방문하고 싶었던 공연장인 <완치 The Wanch>도 임시휴업 중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공연장을 새로운 장소로 옮겨서 내년 2월에 오픈한다고 합니다. 제가 홍콩을 뜨기 전에 홍콩의 전설적인 공연장이 부활하게 되어 매우 다행입니다. 락앤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https://www.thewanch.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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