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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7 홍콩 라틴 라운지바 무디타(Mudita)

오늘은 2021년 12월 17일 금요일입니다. 홍콩 란콰이펑에 소재한 라운지바나 클럽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다양한 이벤트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저는 그 가운데 홍콩의 유명한 라운지바인 <무디타>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공식 이미지는 다음과 같습니다.(실제로는 더 좋다는게 함정입니다만) 

하지만 저와 같은 이미지에 혹해서 제가 라운지바를 고르지는 않겠죠. 대신 저는 이른바 <무디타 아워>라는 광고에 혹했습니다.  

이건 뭐, 홍콩에서 이만한 분위기를 갖춘 라운지바에서 이렇게 저렴하게 술을 마실 수 있다니, 다소 황당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시간을 보시면, 그냥 (일요일을 제외한) 일주일 내내 오픈하자마자 술을 퍼주겠다는 심산 아니겠습니까? 보통 인기가 없는 바들이 이런 이벤트를 하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적어도 제가 방문한 날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라틴 음악이 흘러넘치는 페스티발이라니, 상상만 해도 신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전예매를 했습니다. HKD120에 수수료가 7불 추가되어 총 127불을 결제했습니다. 


본디 오늘 이른 저녁에는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고, 10시 이후에 <무디타>를 방문해서 기본 제공되는 칵테일 2잔을 마시고 끝을 낼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센터를 함께 쓰는 대학원생이 가벼운 술자리를 제안했고, 저는 미리 사두었던 <옐로우테일>을 창고에서 꺼내었습니다.  

홍콩 <365 슈퍼 마트>에서는 옐로우테일 3병을 HKD99, 그러니까 15,0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 병에 5천 원 꼴이지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입니다. 저는 그다지 고급 취향이 아니라서, 옐로우테일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디타>로 출격하기 전까지 사무실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어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자리를 뜨기 싫을 정도로 좋았습니다만, 그래도 예매를 해놓았으니 어드벤처를 즐기러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제 란콰이펑 방문기에 항상 나오는 데카트론 건널목입니다. 이길을 건너서 쭉 올라가면 바로 란콰이펑이지요. 와인 한 병을 1시간 동안 다 들이켜서 이미 제법 취한 상태였습니다. 사진이 흔들렸네요. 평소 <아이언 페어리>를 가던 방향과는 정반대쪽으로 발길을 돌려 으슥한 골목들을 뚫고 지나가니, 상상도 못할 곳에 <무디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서양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온 사진인데, 평소 이른 시간에는 이런 분위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방문했을 때에는 행사가 시작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따름인데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술에 취해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괜히 시비에 걸릴 위험도 있고 하니 말이죠. 입장하기 전에 소박하게 사진을 찍어 봅니다. 

입장 절차를 마치니, 제 손목에 도장을 찍은 뒤 음료교환쿠폰 2장을 주었습니다. 한국의 클럽 시스템과 동일하여 잠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제가 홍콩의 여러 라운지바 가운데에서 <무디타>를 선택한 까닭은 이곳이 고급진 꼰대 분위기가 아닌, 흥겨운 라틴 분위기를 지니고 있을거라 판단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 촉이 제법 잘 맞습니다. 제법 넓은 공간을 지닌 이 라운지바는 멋지게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로 금세 가득찼는데, 모두 라틴 뮤직에 맞춰 신나게 라틴 댄스를 선보였습니다. 물론 전문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매우 덩실덩실 신나는 분위기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신났습니다. 저는 와인 한 잔과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해서 바에 앉아서 음악을 즐겼는데, 수시로 손을 잡혀 끌려나왔습니다.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을 즐기지 않는 분이라면 방문을 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함께 할 일행을 구하기 어려운 홍콩 독거노인은 이런 시추에이션이 전혀 불쾌하지 않습니다. 저도 기본 스텝을 따라 배운 뒤, 열심히 엉덩이를 흔들어 봅니다. 이 곳은 홍콩 로컬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이언 페어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습니다. <아이언 페어리>는 주로 친숙한 히트 뮤직 위주로 선곡하는 반면에, 이 곳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음악에서부터 최신 라틴 댄스 뮤직까지, 일관되게 라틴 음악으로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한 마디로 모두 일어나 덩실덩실 춤추는 분위기인데,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모 클럽처럼 '부비부비'가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음악에 따라서 클럽의 춤과 분위기가 결정되는데, 부비부비가 가능한 장르는 끈적끈적하고 느리고 은밀한 흑인 음악이지요. 머라이어 캐리가 피처링했던 <I know what you want>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무디타>의 라틴 뮤직은 방방 뜨는 분위기라서, 타인의 궁둥이에 달라붙을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DaNJW_jEBo  

<I know what you want 뮤직비디오>

여기 칵테일은 양도 많거니와, 맛이 기가 막히게 좋네요. 하지만 12시가 넘었습니다. 이제 신데렐라와 같이 홍콩 독거노인은 사라질 채비를 합니다. 준비된 이벤트가 아직 하나도 시작되지 않았을만큼 이른 시간입니다만, 저는 지하철 막차를 타고 귀가하는 습관을 (아직까지는) 지키기로 합니다. 지하철 역 앞 데카트론 건널목을 건너는데, 왜 이렇게 쓸쓸한지 모르겠습니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려고 준비하다 보니, 제 손목에 무디타 도장이 선명합니다. 샤워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 점은 한국의 클럽 도장과 다를 바가 없네요. 

오늘은 술도 많이 마셨으니, 넷플릭스 앱에 손을 뻗치는 대신 취침을 선택합니다. <무디타>에 대한 제대로 된 후기를 쓰려면 새벽 3시까지 있었어야 했는데, 초저녁에 와인을 과음한 탓에 버티지 못했습니다. 지하철 막차 귀가 습관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언 페어리> 못지 않게 이 곳을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홍콩에 거주중이거나 향후 방문할 계획이 있으신 분들 가운데 떠들썩하고 신나는 분위기의 라틴 라운지바를 찾는 분이 있으시다면,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홍콩의 술값이 부담스러운 술꾼들에게도 탁월한 초이스가 될 것입니다. 다음날  <탐자이 삼거>에서 얼큰한 누들로 해장하며 흥겨운 불금 행사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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