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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2 드래곤스 백 & 섹오 비치

빅 웨이브 비치도 함께 가다 

오늘은 2022년 1월 2일, 어제는 침사추이 구역에 있는 로잘리 성당에 가서 신년 미사를 드렸습니다. 규모가 제법 되는 성당이었는데, 대부분의 성도가 동남아 출신의 헬퍼였습니다. 미사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가 어찌나 겸허하고도 진지한지, 제가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모든 절차가 제게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힘들 때마다 자주 찾을 듯합니다. 

 

미국에서 오신 주임신부님은 농담을 잘하시고 매우 긍정적이고 밝으셨습니다. 저렇게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겨웠습니다. 


2022년 1월 3일 일요일에 저는 이제 또 다른 호텔로 이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 짐이야 캐리어 하나면 끝입니다. 그래서 저는 1월 2일에 홍콩시티대학 A와 홍콩중문대 B, 그리고 홍콩대 C와 함께 홍콩의 드래곤스 백 및 빅 웨이브 비치, 그리고 섹오 비치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해변 방문이 아닌 하이킹이 주목적이었습니다. 

샤우케이완 역 A3 출구에서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저와 A는 다소 일찍 도착했습니다. 오늘따라 왜 이리 졸린지, 산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 주변에 <웰컴 마트>가 있는데, 섹오 비치에 가기 전에 먹거리를 구매하고자 한다면 추천드립니다. 

섹오 비치에 가기 위해서는 9번 버스를 타야만 합니다. 3시가 조금 넘어 모든 멤버가 모였으므로, 우리는 9번 버스를 타고 '토테이완'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15-20분이 소요됩니다. 등산하기 매우 좋은 화창한 날씨입니다. 

'토테이완' 정류장에서 내렸으니, 이제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용의 등을 탈 차례입니다. '드래곤스백' 하이킹은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길이 매우 잘 닦여 있고 예쁩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고 올라가면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만, 사진도 찍고 잠시 쉬며 풍경을 보는 시간도 소중하겠지요. 

함께 간 대학원생 A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입을 정도로 추운 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벗어서 허리에 두를 만큼 따뜻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쪽빛에 흐려졌습니다. 

내려다 보이는 저곳은 섹오 비치인 듯합니다. 처음에는 디스커버리 베이라고 생각했지만, 잘못 알았습니다. 사실 이런 형태의 돌이나 바다는 부산에 사는 이들에게는 아주 흔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또 홍콩만의 분위기도 없다고는 할 수 없지요. 

 

섹오 비치를 현지인들은 '셰코 비치'라고 발음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섹오의 정상에 도착해서 눈 아래 펼쳐진 바다와 여러 빌리지의 광경을 즐겼습니다. 다소 강한 바람을 타고 화려한 색깔의 패러글라이더들이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갔습니다. 셀카봉을 들고 촬영 중인 그들은 우리를 스치듯 지나가며 "Happy NewYear!"를 외쳤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섹오 피크를 찍은 뒤에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서 9번 버스를 타고 섹오 비치로 곧장 이동합니다. 유명한 해변에서 맛난 저녁을 먹는 경험을 즐기기 위해서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오늘 제대로 하이킹을 하러 왔기 때문에, 피크에서 내려와 빅 웨이브 비치를 거쳐 섹오 비치까지 계속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섹오 피크에서 빅 웨이브 비치까지는 2km가 넘고 제법 경사가 있는 내리막길을 따라서 가야 하기 때문에, 초행길이라면 가급적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편이 좋습니다.  오후 5시 반이 되자 해가 산허리에 걸칩니다. 산속에서 일몰을 보는 것은 멋진 경험이지만, 동시에 빨리 하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국 부산의 금정산을 연상케 하는 산길을 계속 타고 내려오다가 마침내 빅 웨이브 비치의 불빛을 만났습니다. 

빅 웨이브 비치는 섹오 비치에 비해 그다지 잘 알려진 해변이 아닙니다.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파도가 세서 파도타기를 하는 이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는 해변이라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1월이라 보더들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조그마하고 조용한 해변 마을을 돌아다니다 마침내 빅 웨이브 비치에 다다랐습니다. 

뒤쳐진 대학원생 B와 C를 기다리며 운치 있는 골목에서 포즈를 취해봅니다. 아이폰의 색감이 역시 뛰어납니다. 아직 한 끼도 먹지 못한 C가 걱정이 됩니다. 여성 멤버로서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 있는데, 이러다가 다음번에는 참석을 피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홍콩에는 '드래곤스백'이나 '빅 웨이브 비치' 등의 명칭을 가진 페일 에일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물론 메이드 인 홍콩이지요. 가게에서 사도 한 병에 HKD30(4,500원)이 넘으니, 결코 저렴한 맥주가 아닙니다. 하지만 빅 웨이브 비치에 와서 빅 웨이브 비치 IPA를 마시지 않으면 또 추억이 되지 않을 것 같기에, HKD40을 지불하고 병뚜껑을 땁니다. 딱히 개성이 있는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부드러워 좋습니다.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는 대학원생 B와 C는 해변에 앉아 담소 중입니다. 여기서 하루를 마무리해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종 목적지인 섹오 비치까지는 가야 뭔가 해낼 듯합니다.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30분가량 걸어서 섹오 비치로 향합니다. 더 이상 산행이 아닌 한적한 시골 도로입니다. 보행로가 따로 있지는 않지만, 드물게 지나가는 버스를 여유롭게 피할 정도의 거리는 충분히 확보됩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 홍콩에서 빅 웨이브 비치와 섹오 비치 사이를 걸어서 간다는 기분만큼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이 좋습니다. 


섹오 비치에 접근하자, 벡 웨이브 비치보다는 번화한 거리가 점점 눈에 들어옵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각종 해산물 레스토랑을 스치니, 이미 어두워진 해변에 다다랐습니다. 

저와 대학원생 A는 해변 슈퍼에 가서 필스너 우르켈 2캔을 사서 땄습니다. 은빛 머리카락에 피부가 매우 희고 좋은 홍콩 로컬 주인이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니 제법 높은 파도 소리에 대학원생 B와 C가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C는 바닷바람이 추워서인지,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어 걸쳤습니다. 여기서 우리 4명은 나란히 앉아서 유튜브를 검색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바다 노래도 있었고, 김광석이나 전인권 노래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보기 드문 광경이었습니다. 홍콩에 공부하거나 근무하러 온 4명의 한국인이 어두컴컴한 섹오 비치에 앉아서 한국 가요를 부르고 있다니요. 거센 파도 소리에 유튜브 반주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통기타 없이 해변에서 노래 부르는 경험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아주 좋았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습니다. 일면식이 없던 나머지 3명을 순차적으로 연결시켜 준 제 대학원 후배 B에게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아울러 새로 알게 된 대학원생 C의 다양한 친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 C가 다소 한가 해지는 2월이면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른 저녁에 왔으면 아기자기하기로 유명한 섹오 빌리지를 둘러보았겠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합니다. 이곳은 뭔가 한적한 대천 해수욕장 분위기를 내기도 합니다. 물론 홍콩 특유의 향과 바이브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섹오 피크는 금정산, 섹오 비치는 대천 해수욕장이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겠습니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저는 대천 해수욕장을 아주 사랑하니까요. 저녁이 되면 대천 해수욕장에서 해산물 볶음과 닭갈비가 곳곳에서 등장하듯, 여기에서도 세계 각국 메뉴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블로그들을 둘러보았을 때에는 제법 고가의 레스토랑이 많았는데, 늦은 밤이 되자 제 눈에 띄는 것은 로컬들이 주로 찾는 편한 분위기의 동네 식당들이었습니다. 제가 끔찍이도 선호하는 스타일이지요. 하지만 오늘은 새로운 멤버도 왔고 하니, 센트럴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샤우케이완 역으로 향하는 9번 버스 2층에서 대학원생 C와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2020년 겨울에 홍콩대학교로 유학 온 그녀는 정착 초기에는 많이 돌아다니는 대신 주로 기숙사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케네디 타운 대학원생 기숙사에서 칩거 중인 그녀에게 엉덩이 가벼운 미국과 유럽 친구들이 왜 돌아다니지 않느냐며 옆구리를 쿡쿡 쑤셨던 모양입니다. 그 결과 이제 그녀는 라마 섬에 거주하는 친구를 두고 있으며, 그 외에도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대학원에서 만들었습니다. 아울러 온종일 식사도 하지 않고 거친 남성들과 몇 시간 산행을 하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는 그녀의 원만한 성격이 오늘 돋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빅 웨이브 비치 진입 직전에는 스마트폰 불빛에 의존해서 가야 할 만큼 산길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그녀에게 크게 한 턱 쏘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홍콩대학교에서 '루프탑'이라고 불릴만한 멋진 전경을 지닌 장소를 소개해 준다고 했는데, 그곳에서 맛난 음식을 즐겨볼까 합니다. 


센트럴에 가서부터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습니다. 저 하나를 믿고 란콰이펑으로 진입한 일행은 제가 목표했던 일식, 멕시코식, 태국식 레스토랑이 모두 영업을 끝냄에 따라 주린 배를 움켜쥐고 결국 맥도날드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콩에서는 저녁 10시 이후에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습니다. 특히나 코로나 시국에서는 말입니다. 그래도 맥도날드는 24시간 영업이기에, 오히려 마음 편하게 4명이서 시간 걱정하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대학원생 C로부터 홍콩의 LGBT 사회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 자신은 straight이지만, 홍콩대학교에 다니는 국내외 학생들 사이에는 제 생각보다는 많은 수의 동성연애자들이 있는 듯했습니다. 물론 저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있는 그 자체로 완전하며, 잘못될 것은 존재가 아닌 생각밖에 없으니까요. 동성애 또한 생각이 아닌 기질과 관련된 이슈이기에,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호기심이 많은 저는 동성애자가 자신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들려준 경험이 없기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아마 홍콩을 떠나기 전에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맥도날드에서 앵거스 버거 세트를 해치우고 대화의 꽃을 피우다가 귀가하니, 11시 50분이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출근하면서 체크아웃해야 합니다. 뭐, 어려운 일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더 늦게 자지는 말고 피곤한 이대로 쓰러져 자는 편이 옳겠습니다. 아울러 대학원생 C가 제가 몰랐던 자전거 여행 코스도 알려주었기에, 조만간 도전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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