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20421 홍콩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된 날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420601006&wlog_tag3=naver

2022년 4월 21일은 연초부터 적용되었던 강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완화되는 첫날입니다. 제게 있어 가장 중요한 변동사항은 저녁 6시까지만 운영이 허용되던 식당과 술집 영업시간이 이제 10시까지로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평일이라서 오늘은 길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지는 않겠지요. 내일이 불금이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 특파원을 자임한 이상, 평소처럼 사무실에서 밤 10시 반까지 있다가 퇴근해서 시체처럼 쓰러져 잘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맛이 너무 그리워 신라면에 삼겹살을 넣어서 끓여먹은 뒤, 저녁 7시에 업무를 마치고 해방의 첫날 거리로 나갑니다. 


제가 근무하는 홍콩시티대학에서 조금 걸어나가면 바로 홍콩 구룡반도의 메인 스트리트인 나탄 로드(Nathan Road)가 나옵니다. 나탄 로드를 따라서 침사추이 방향으로 가다 보면 관광객들에게 익숙한 프린스 에드워드 역, 몽콕 역, 야마테 역, 조던 역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제가 묵는 호텔은 조던 역 근처에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면 침사추이가 나오고 구룡반도는 끝나게 되지요. 저는 물론 나탄 로드를 따라 이 모든 역들을 걸어서 지나칠 것입니다만, 한국의 홍대나 건대 입구 분위기를 내는 몽콕과 침사추이가 제 주된 목표입니다. 왜냐하면 몽콕에는 수제 맥주 거리가 있고, 침사추이에는 역시 유럽 분위기를 내는 너츠포드 테라스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 몽콕 수제 맥주 거리에 걸어서 도착하니 저녁 8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수제 맥주 레스토랑인 <트라팔가>가 6시 넘어서 영업하고 있습니다. 가게 안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홍콩의 밤이. 

<그레이스 XXX>라는 수제 맥주 가게가 새로 오픈했습니다. 몇 개월 동안의 강한 압박에 기존의 가게가 버티지 못한 모양이지요. 여기는 처음 봅니다만, 오늘은 제가 둘러볼 곳이 많아서 입장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외에 <매드 하우스>나 <장멘 Zhang men> 등의 펍도 모두 오픈해서 손님을 맞고 있습니다. 역시 목요일이라 그런지 고객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아마 불금에는 터져나가겠지요!

이곳은 몽콕에서 가장 유명한 수제 맥주 펍인 <에일 프로젝트>입니다. 홍콩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기 정확히 이틀 전에 제가 이곳을 방문했더랬습니다. 맥주 맛이 뛰어나며 수제 햄버거도 맛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에 매우 관심이 많은 직원이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에일 프로젝트> 옆에 위치한 타파스 바인 <루나>입니다. 이곳의 음식도 꽤 맛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곳인데, 아직까지는 한산하네요. 사실 홍콩의 밤은 10시나 되어야 본격적으로 시작되더라고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기 이전인 작년에도, 10시 이전에는 별로 손님이 없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유지된다면 5월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욱 완화되겠지요. 


자, 이제 구룡반도의 작은 유럽이라고 불리는 침사추이 <너츠포드 테라스>에 도착했습니다. 저기 아래에서 제가 사진을 찍은 곳까지 걸어서 올라오면, 그 때부터 유명한 맥주 거리의 시작입니다. 제가 침사추이에서 살 때에는, 저기 보이는 빨간 철제의자에 앉아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곤 했습니다. 사실 이 곳은 한국인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바로 전날에도 저는 산책삼아 이 곳을 방문했는데, 저보다도 연령이 높으신 분들이 5명 정도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너츠포드 테라스 거리 초입에 위치한 <블라인드 피그>에 손님들이 앉아 있네요. 사실 이게 좀 애매한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4월 21일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는 "술집"은 여전히 영업을 못하게 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그 <술집>이란 개념이 참으로 애매합니다. 아마 영업신고를 할 때 "술집"으로 등록된 경우만을 지칭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레스토랑은 죄다 오픈했더군요. 결국 술은 팔지만 술집은 아니었던 셈이지요.

제가 한 번 방문했던 <포트>. 이른 시각이지만 시샤를 피우며 대화하는 고객들이 꽤나 보입니다. 

<다운타운>에는 사람이 많군요. 제가 호가든 맥주를 즐기는 편이라 이 가게에 방문했었는데, 뭐 한국이랑 다를 바가 없더군요. 여하튼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가게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시 오픈하니 반갑군요. 

<메이즈>도 떠들썩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 외에 센트럴에도 있는 체인점 <차이나 바> 등이 모두 오픈했습니다만, 밤새도록 밴드 공연이 이루어지는 <올 나잇 롱>이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기 브런치에도 <올 나잇 롱>에 대한 글을 썼었는데요. 너무 아쉽습니다. 아예 폐업한 것인지 아니면 잠시 문을 열지 않은 것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주말에 다시 와서 확인해보아야겠습니다. 적어도 구룡반도 내에는 그만한 라이브 공연 펍이 없습니다. 


너츠포드 테라스까지 왔으니, 이제 침사추이 바다를 구경하지 않을 수 없지요. 10시까지 영업이라 1시간 정도 앉아서 술을 마셔볼까 했는데, 맥주를 마시기에는 현재 배가 너무 부릅니다. 삼겹살을 듬뿍 넣은 신라면에 쌀밥까지 말아 먹었으니 말 다했지요, 뭐. 그래서 침사추이 해변 산책로에 가서 맥주가 아닌 다른 주류를 마셔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마실 수 없는 귀한 <잭 다니엘 위스키 콜라>, 제가 아주 아끼는 친구입니다. 엮인 추억도 많고요. <웰콤>에서 이 친구를 사들고 침사추이 샹그릴라 호텔 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저 스타벅스를 한번쯤 가보고 싶은데, 항상 너무 일찍 문을 닫더군요. 제가 귀국하는 날 전까지는 기회가 생기겠지요. 

샹그릴라 호텔 주변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멋진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많습니다. 여자 친구가 한국에 있는 저로서는 방문할 기회가 생기지를 않습니다. <빌라 26>도 아주 멋진 곳인데 언젠가는 올 일이 생기겠지요. 

항상 서양인들과 시끄러운 클럽음악으로 빵빵 터지던 스포츠바인데, 오늘은 한적합니다. 사실 여기는 자정부터 분위기가 뜨는 곳이라, 이제 겨우 9시인 상황에서는 조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 이제 육교를 건너서 침사추이 바닷가로 넘어가보고자 합니다. 

육교 위에서 내려다본 홍콩, 정말로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동경하는 홍콩의 모습이 이런 것일까요. 

침사추이의 유명한 스타벅스, 그리고 그 앞에서 비바람을 견디며 꿋꿋하게 자세를 취한 이소룡입니다. 원래는 하얀 상의를 입지 않았었는데, 어느샌가 두르고 있더군요. 신기했습니다. 

자, 침사추이 바다가 보이는 멋진 벤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하는 옆자리 연인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앉은 자리에서 좀 더 넓게 화면을 잡아보았습니다. 오늘따라 센트럴 쪽 빌딩들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치어스 Cheers!

그리고 이제 가방 속에 넣어온 <사칠신편>을 꺼내듭니다. 어두운 조명에서 한문 원문을 읽기에는 눈이 아플 것 같아서, 한글 번역본을 챙겨왔습니다. 성호 이익 선생이 35세 때 처음 써서 60대까지 계속 수정을 가했던 중요 저작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성호 이익의 사단칠정론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단을 공적 감정, 칠정을 사적 감정이라 규정하고 논의를 전개합니다. 이는 사단칠정논쟁에 대한 오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호 이익 선생은 500년이 넘는 조선 성리학 역사에서 거의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리고 오늘날에도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진실"을 용감하게 지적합니다. 성호 이익 선생은 "리기호발설"과 "기발리승일도설"을 모두 부정하고,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두 "리발기수"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너무나 여러 주장들이 어지러이 섞여 있어서 이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사단이든 칠정이든 모두 "리발기수"라는 성호 이익의 지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거는 물론이요 현재에도 대부분의 학자는 이 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이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뭐, 오늘 브런치의 주제는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첫날"이니, 더 이상의 논의를 진행하지는 않겠습니다. 잭 다니엘 콜라가 기분좋게 저를 적셔주고, 따뜻한! 바닷바람이 제 볼을 간지럽히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저는 11시 가까이 <사칠신편>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가 11시가 넘어 귀가했습니다. 나스닥 장 초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행복하게 잠들었는데, 밤새 제롬 파월 의장의 폭탄발언으로 미국 증시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군요. 뭐, 다 좋습니다. 인생이란 원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홍콩을 떠나는 그 날까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돌아다니는 부지런한 특파원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20416 센트럴 산책 그리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