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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6 센트럴 산책 그리고....

4월 19일 현재, 홍콩의 일일 신규 확진자 숫자는 600명 대로 내려앉았습니다. 한 달 전에 7만 명을 넘어섰던 것을 떠올려보면, 놀라울 정도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20418_0001838320&cID=10101&pID=10100

캐리 람 행정장관(대통령)은 오미크론 확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5월 8일에 있을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는데요, 지금 와서 보면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겠습니다. 작년에 제가 처음 홍콩에 도착했을 때, 홍콩은 하루 확진자 수가 0명이었습니다! 그 뒤로 전파력이 "넘사벽"인 오미크론이 유행함에 따라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했지만, 제가 홍콩에 살아보니 지금 상하이 봉쇄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인권탄압 등은 홍콩에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캐리 람 정도면 중국 본토에 비해 소프트하게 대처한 편입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연임에 도전하겠다고 공언했던 그녀는 지금 입맛이 씁쓸하겠지요. 물론 2022년 현재 홍콩의 행정장관은 시진핑 베이징 정부가 "낙점한" 인사가 실질적으로 당선되게 되어 있습니다. 캐리 람의 의중 "따위는" 베이징 정부에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년(2021년) 12월에 있었던 홍콩 총선에서도 드러났지만, 2020년부터 시행된 홍콩보안법에 따라 "중국에 대한 애국심이 부족한" 인물은 처음부터 출마 자격이 박탈됩니다. 처음부터 민주 진영의 인사가 출마를 못하니, 선거 과정이 공정했네 어쩌네 하는 변명은 통하지를 않습니다. 제가 지난 글에도 썼지만, 7월 1일부터는 홍콩의 보안장관 출신으로 지난 몇 년 동안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에 앞장섰던 "존 리"라는 인물이 홍콩의 행정장관으로 취임해서 실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올해 11월에 3연임을 노리는 시진핑 행정부가 상하이를 틀어막는 꼬락서니를 보면, "홍콩의 전두환"이라고 불려도 크게 잘못되지 않은 존 리가 취임하자마자 어떤 조치를 취할지 두렵기도 합니다. 저는 홍콩에서 만난 젊은이가 송강호 주연의 <택시 운전사>를 가족들과 여러 번 보았다는 말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홍콩 젊은이들은 정치적 감수성이 매우 섬세하며,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과 2016년 촛불 혁명에 대한 동경을 지니는 듯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민주화를 향해 점점 더 전진하는 형국이 아니라, 기존에 지니고 있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점차 박탈당하고 있는 홍콩 시민들의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하겠지요. 2022년 현재, 홍콩에서는 광주와 같은 민주화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저는 봅니다. 왜냐하면 일단 대규모 집회 자체가 원천봉쇄되거든요. 그에 따라 유혈사태도 일어날 일이 없겠지요. 아예 집회가 불가능한데 유혈사태가 일어날 리 없지 않겠습니까? 조지 오웰의 <1984> 스타일의 숨죽인 평화가 지속되겠지요. 2022년 홍콩에서는 촛불 혁명 또한 불가능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가능했다고 홍콩 시민들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을 틈타 베이징 정부가 완벽한 통제가 가능하도록 손을 써놓았기 때문에, 이제 행정장관을 실각시키는 일 따위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 홍콩은 처음부터 최고지도자를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지 못했고, 이제 행정장관을 쫓아낼 수도 없고, 혹여 그를 쫓아낸다 하더라도 후임자는 역시 베이징에서 내려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정치적 자유를 잃은 사회를 지배하는 감정의 "우세종"은 바로 "무기력감"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절망감이 능력있는 홍콩 젊은이들을 영국 등의 해외로 몰아냅니다. 한국인들은 흔히 자신이 지지하는 대선 후보가 패배하면 이민을 가겠다고 농담합니다. 물론 실제로 떠나지는 않지요. 하지만 홍콩 젊은이들은 이미 많이 떠났고, 지금도 떠날 준비 중입니다. 그들은 영어에 능통하고, 영국은 그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저는 요즘 홍콩 시내를 걸어다니면서 제가 2019년 도쿄와 교토를 방문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바로 사회 전체에 퍼진 "무기력감"입니다. 일본은 지난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로 사회 전체가 침체된 느낌입니다. 그런 내용을 담은 책들도 이미 많이 출판되었지요. 홍콩 또한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로 하루가 다르게 사회 분위기가 축 처지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베이징 정부가 혹시 홍콩을 경제적으로 고사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까지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놈의 지긋지긋한 "민주주의"를 홍콩에서 쫙 빼내려면, 아예 홍콩 경제를 바닥까지 끌어내려서 서양인들과 서구화된 홍콩인들을 죄다 탈출시키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는 편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 특유의 "인명경시사상"으로 유명하거니와, 홍콩 하나가 완전히 망가진다고 해도 중국 본토나 베이징 정부가 입을 정치적 타격은 거의 없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를 우리네 상식으로 이해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4월 16일 토요일, 저는 변함없이 센트럴의 <커먼 그라운드>로 출근했습니다. 10% 세금이 붙지 않는 합리적인 가격에 편안한 분위기, 제가 홍콩을 떠나는 7월 어느날까지 꾸준히 찾으리라 마음 먹었던 곳입니다.

오늘은 막 무덥지는 않은 날씨라서, 따뜻한 말차라떼를 주문하고 다시 독서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따라 책이 굉장히 잘 읽혔습니다. 바람은 선선하고 집중은 잘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오르는, 그런 보기 드문 날이었습니다. 너무 느낌이 좋아서, 6시 영업 종료 이후에도 계단에 앉아 좀 더 책을 읽다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5시가 조금 넘어, 제 꿈은 산산조각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다수의 홍콩 경찰들이 커피숍과 골목을 메우며 불심검문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주변을 비디오 촬영했으며, 토요일 오후를 기분 좋게 즐기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황급하게 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범죄자를 찾는 일은 아닌지라, 멀쩡하게 잘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뜨는 것까지 막지는 않더군요. 저 또한 들떴던 기분을 망친 채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서 센트럴 역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가는 길목마다 경찰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직 홍콩에 산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불심검문에 익숙하지 않은 제게는 이런 모든 과정들 자체가 매우 모욕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겨우 지난주에 발굴해낸 보석 같은 제 아지트를 당분간 방문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마 홍콩을 뜨는 그날까지 다시는 찾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가게가 싫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 골목에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게 불편함을 야기합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방문 장소를 줄여나가는 사람이 아마 한둘이 아닐 터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겠지요. 경찰인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출동해서 불심검문하는 과정이 어찌 흥겹겠습니까. 다 위에서 까라고 하니까 까는 것이겠지요.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던 인물이 행정장관이 되고 난 뒤 홍콩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점차 경직되어 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집니다. 물론 베이징 정부는 특유의 "그레이존 작전"을 쓰겠지요. 이는 냄비 속에 개구리를 넣고서 점점 물의 온도를 높여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삶겨 죽게 만드는 전술입니다. 홍콩에 거주하는 한인 대부분은 금융인이거나 사업가로서 넉넉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정치적 분위기에 민감한 제가 "과민반응"한다고 평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냄비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 했던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신흥 재벌)들은 이제 해외 재산이 동결되는 꼴을 당했습니다. 올리가리히의 수준에 미치지 못해도 중산층 이상의 넉넉한 부를 축적했던 러시아인들 또한 상당한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그렇다고 해서 푸틴 정부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던가요? 그들은 이미 "삶긴 개구리 신세"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비일관적인 코로나 정책이 자영업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듯이, 정치는 항상 내 삶과 직결됩니다. 센트럴 역에서 지하철을 잡아탄 저는 다시 저만의 조그마한 공간인 "직장"으로 복귀했습니다. 구내 식당은 이미 영업을 끝냈고, 저는 쇼핑몰에서 도시락을 사서 까먹었죠. 그래도 저는 아직까지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짧은 인생에서 무려 1년이나 제게 삶터를 제공했던 소중한 홍콩이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http://www.hdh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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