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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3 홍콩 <비지지 원 Visage One>

홍콩 센트럴 라이브 재즈 바 즐기기

2022년 4월 21일부터 홍콩은 거리두기 완화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저녁 10시까지 가게 영업이 가능합니다. 7월 초순에 홍콩을 떠나게 되는 제게, 거리두기 완화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입니다. 아울러 반드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 여럿 있습니다. 제가 브런치에 몇 번 포스팅했던 <비지지 원 Visage One>입니다. 제가 예전에는 <비사지 원>이라고 표기했었습니다. 여기에는 조금 사연이 있습니다. 원래 영어 발음은 [ˈvɪzɪdʒ]이니, 굳이 표기하라면 '비지지'가 되어야겠죠. 그런데 visage는 본디 프랑스어이고 발음은 [vizaːʒ]입니다. '비자지'에 가깝겠죠? 그런데 이 라이브 바 공연자들은 이곳을 '비사지 원'이라고 발음하더군요. 오늘 공연하는 백인 기타리스트 또한 그렇게 발음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비사지 원>이라고 표기해 왔습니다. 이런 경우는 사실 매우 흔합니다. 태국 방콕의 중심가는 Siam입니다. 그런데 현지 발음은 "싸얌"입니다. 하지만 태국을 제 집 드나들듯 하는 관광객들도 모두 "시암"이라고 표기합니다. 지하철에서 "넥스트 스테이션 이스 싸얌~"이라고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도 말이지요. 제가 구룡반도의 Nathan Road를 어떻게 발음 표기해야 할지 괴로워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겠지요. 여하튼 영어로는 '비지쥐'가 가장 가까운 발음이니, 편의상 <비지지 원>이라고 앞으로는 표기하겠습니다.

변함없이 홍콩 센트럴 역 D2 출구를 나와 <데카트론> 건널목에서 시작합니다. 오늘도 경찰들이 란콰이펑 중심으로 많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인해 폭주하는 서양인들을 잡아서 실적을 올리려는 심산일까요? 토요일에 근무하는 그들이 안쓰럽다는 제 심정을 지난 포스팅에서 토로한 바 있습니다. 여하튼 저는 간땡이가 부었기 때문에, 경찰이 거리에 쫙 깔려 있어도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형형색색의 옷들이 전시된 조그마한 가게들이 오픈하는 것을 보니, 이제 홍콩이 다시 살아나나 봅니다.

저기 보십시요. 제가 한 번도 안 가본 골목입니다만, 이것이 바로 홍콩입니다. 경찰들과 상관없이 골목 구석구석에 있는 웨스턴 바에 서양인들이 잔뜩 모여서 즐기고 있습니다. 제가 계단을 내려가봤더니, 맙소사, 마스크를 하지 않고 저렇게 서서 떠드는 서양인이 50명은 넘게 모였습니다. 언젠가는 저기에서 친구를 만들어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목적지는 저 곳이 아니죠.

<비지지 원>이 있는 골목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이 골목이 요즘 홍콩에서 가장 핫합니다. 골목 주변으로 최근에 뜨는 바들이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워낙 가게 안이 붐비니까, 저렇게 계단에 쏟아져 나와 술을 마시지요. 솔직히 가게 인테리어들이 고급이라서 술값이 비싼 건데, 저렇게 술을 사서 밖에서 마시면 무슨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한국에서 보기 힘든 홍콩만의 야경이지요. 저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주인장에게는 미리 문의전화를 했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매주 토요일 8시 반에 공연한다는군요. 이렇게 반가울 데가! 환하게 불이 번져나오는 <비지지 원> 안을 빨리 들어가보고 싶습니다.

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제가 <비지지 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바로 그 싱어와 그 기타리스트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좋은 예감입니다. 이 싱어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능통한 중국인인데, 옆에 앉은 기타리스트는 홍콩에서 수십 년 동안 음악 교사를 한 뮤지션입니다. 그가 협연하거나 가르친 홍콩 뮤지션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 여성 싱어 또한 그 가운데 하나인 "상류층 자제"입니다. 그녀가 공연할 때면, 그녀의 친구들이 정말로 <비지지 원>을 터져라 가득 메웁니다. 오늘도 객석이 허전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요. 제가 30분 일찍 와서 다행입니다. 공연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자리를 잡았으니까 말이지요. 아래 링크는 제가 <비지지 원>을 처음 방문해서 바로 저 공연자들의 퍼포먼스를 본 기록입니다.

https://brunch.co.kr/@joogangl/341

왜 제가 이 링크를 올렸을까요? 이번에는 제가 무대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솔직히 <비지지 원>은 매우 좁은 공간인데 죄다 마스크를 벗고 와인을 마십니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가장 위배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공연 사진을 찍는다면 아마 함께 하고 계신 청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헀습니다. 그래서 대신 공연장 분위기는 예전 링크로 즐기시라고 올려 두었습니다.


제 예상은 전혀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파티 정장을 입은 그녀의 친구들이 공연장 1층과 2층을 가득 메웠고 결국 바닥까지 차지했습니다. 공연 레퍼토리는 지난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부 공연이 <할렐루야>로 끝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죠. 그렇다고 해서 공연이 부족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매번 새로운 레퍼토리를 듣는 것보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레퍼토리를 매번 다른 감성으로 듣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비틀즈의 모든 곡들을 들어보는 것도 좋지만, <예스터데이>를 여러 버전으로 듣는 편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작년 11월과 다른 감성으로 올해 4월에 들려주는 레퍼토리가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뛰는군요. 게다가 이 사랑스러운 보석과 같은 공간이 약 3개월만에 리오픈되지 않았습니까. 공연자들도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이곳에서 다시 공연하기를 얼마나 소망했는지 몰랐다고 감회를 나타냈습니다.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환호를 질렀지요. 1부 공연이 끝나고 인터미션 시간이 되자,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 술잔을 부딪는 광경이 매우 보기 좋았습니다. 다만 문제는 1부 공연이 끝나자 벌써 9시 반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작년처럼 밤 11시까지 공연을 즐길 생각인가 봅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가게 영업이 밤 10시로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괜히 좀 더 기분을 내려다가 아주 괴로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비 원> 주인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귀가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근처 세븐일레븐에 가서 기네스 흑맥주 한 캔을 산 다음, 저는 <비지지 원>이 소재한 저 골목 계단에 서양인들과 섞여 앉아서 술을 마셨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분위기는 훨씬 흥겹습니다. 사람도 매우 많고요. 제게 다가와서 술잔을 부딪는 사교성 넘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다가갈만큼 외향적인 성격이 못 되어서, 그냥 분위기를 즐기며 맥주를 비웠습니다. 10시가 조금 넘어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찰들이 밀려들기 전에 페리를 타고 침사추이로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IFC몰의 유명한 애플 매장이 아직도 불을 환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었을 때에는 저녁 10시에 페리 운영이 중지되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밤 늦게까지 페리가 운영되는군요. 센트럴에서 침사추이로 넘어가는 페리 야경은 언제 봐도 멋지죠.

페리 안에서 촬영한 센트럴과 선내 풍경입니다. 파도가 멋지게 잡혔군요.

이제 침사추이 피어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일단 침사추이로 넘어오면 그 때부터 마음이 편안합니다. 새벽까지 있더라도 집에 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요.

침사추이의 상징과도 같은 시계탑에서 11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참으로 고풍스러운 영국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저는 옆자리의 여학생들처럼 난간에 걸터앉아 야경을 찍고 회상에 잠겼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충만한 하루를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습니다. 많은 분들 덕분에 이렇게 큰 탈 없이 홍콩에서 평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한동안 명상하다가 귀가하니, 자정이 다 되었습니다.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파이트 클럽>이 넷플릭스 추천으로 떠서 오랜만에 즐겨 보다가, 절반도 시청하지 못한 채 곯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좋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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